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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언제 즈음 회사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아무도 답을 알려줄 수 없는, 나조차도 답을 찾을 수 없는 질문

by 달하달하

초반 상담의 시작과 끝은 언제나 이 질문이었다.

“그래서 저는 언제 즈음 다시 일을 할 수 있을까요?”

그럴 때마다 사이먼은

“그건 전혀 중요하지 않아요. 지금은 에너지를 찾는 것이 더 중요해요. 그리고 언젠가 때가 오면, 자연스럽게 스스로 답을 찾게 될 거예요. “

라고 답했다.


지금은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에 내 몸과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 나는 연이어 이 상담의 끝은 언제인지 물어보는데, 그것 또한 사이먼은 알 수가 없다고 했다. 몸이 아픈 것은 낫는 것이 눈에 보이지만, 마음이 아픈 것은 눈에 보이지 않으니, 당최 언제까지 이 치료를 계속해 나가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십수 년 컨설턴트로 일해온 나로서는, 목표와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차곡차곡 해결해 나가는 것이 익숙한데, 번아웃이라는 녀석은 나의 방식대로 해치울 수 있는 놈이 아니었다. 매번 답답해하며 똑같은 질문을 가져오는 내게, 사이먼이 묘안을 하나 꺼냈다.


“그럼 우리 이번에는 정량적으로 접근해 보는 게 어떨까요? 오늘 은지 씨의 에너지 레벨은 얼마인가요? 0에서 10으로 나눈다면요?”

“음… 오늘은 5 정도라고 할까요? 가끔 7일 때도 있는 것 같아요.”


아무렇지 않게 대답을 하고 보니, 생각보다 높은 숫자라는 생각에 조금 놀랐다. 처음 일을 쉬기 시작했을 때는 우울감도 있고 스스로 자책하는 마음도 있어 2-3 정도에 머물렀다고 하면, 지난 한 두 달 머리를 비우고 운동으로 시간을 채워나가다 보니 자연스레 마음의 에너지 또한 올라갔던 것 같다. 다만, 이것이 매일매일 5-7을 오가지는 않았다. 아주 뜬금없이 화가 치밀어 오르기도 하고, 한 없이 마음이 가라앉아 몸을 일으키기 힘든 날도 있었다. 덕분에 별거 아닌 일로 남편과 말다툼을 하거나 아이들에게 빈번히 화를 내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전보다 나아진 것은 분명했다. 신기하게 내 에너지를 숫자로 표현해 보는 것만으로도 지금 내가 제대로 치료를 하고 있는 건지 아닌지 감이 오기 시작했다.




외출을 하기 위해 차에 오르면, 내비게이션은 어김없이 회사로 가는 길을 제일 먼저 안내해 줬다. 경로를 취소할 때마다 마음이 이상했다. 하루는 운전석에 앉아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번아웃 이전의 내 하루 일정은 빈칸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30분, 가끔은 15분 단위까지 쪼개어 빽빽이 채워져 있었다. 집에서도 회사에서도 언제나 종종걸음이었지만, 묘하게도 그 안에서 느껴지는 안정감이 있었다. 빡빡한 일정을 하나하나 지워나가는 희열감이라고 해야 할까. 한 시간 정도 걸리는 출근과 퇴근길 차 안에서 고요히 혼자 앉아 있는 것이 행복했다. 바쁜 틈에 시간이 생겨 꽤나 근사한 점심을 먹는 날에는 ‘이 맛에 살지’ 싶기도 했고, 어쩌다 저녁 시간이 비어 욕조에 몸이라도 담그는 날이면 세상이 다 내 것 같이 행복했다.


우습게도 시간이 많아지고 나니 오히려 행복이 줄었다. 시간이 많아 매일매일 따끈한 욕조에 몸을 담그고 넷플릭스를 끊임없이 보는데도 즐겁지가 않다. 넉넉한 점심시간에 더 맛있는 걸 해 먹는데도 신나지가 않는다. 하루에 해야 할 일이 한두 개 밖에 되지 않는데,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예전이었으면 후다닥 끝냈을 일들에도 능률이 오르지 않는다. 입버릇처럼 얼른 회사로 돌아가야겠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무섭다. ‘내가 정말 돌아갈 수 있을까? 예전처럼 살 수 있을까?‘ 누군가에게 답을 찾아달라고 묻고 있지만, 사실 나 스스로 답을 알고 있는 질문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 선명해지는 답은 하나,

“더 이상 돌아갈 수 없구나. 내가 있던 그 견고한 쳇바퀴 속으로 다시 뛰어들 자신이 없구나. “

그렇게 바쁘게 살면 힘들지 않냐고, 애들도 키우면서 일을 그렇게 하면 몸이 남아나냐고 걱정하던 사람들의 말을 가볍게 들으며, 나는 다를 거라 생각했다. 오랫동안 해 왔고, 그 안에 있으며 행복했으니까. 그때 내가 몰랐던 것은, 내 안의 에너지가 무한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언제가, 어느 때, 어떠한 이유로 에너지가 고갈될 수 있고, 그 후에는 다시 돌아가기가 힘들다는 것을 몰랐다.


스스로 돌어갈 수 없다는 답을 내리고 나서, 꽤나 오랜 시간 동안 마음이 힘들었다. 정말 어렵게, 긴 시간이 걸려, 아주 운이 좋게 여기까지 왔기에, 이 것을 스스로 놓아버리기가 쉽지 않았다. 어쩌면 지금까지도 나는 예전의 나와 작별인사를 하지 못하고 있다. 꼭 헤어진 연인을 못 잊는 것처럼, 다시 이루어지지 않을 걸 알지만, 그때의 추억에 젖어 살고 있다. 여태껏 경제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조금 더 나아지는 삶을 살아왔는데, 그 법칙이 하루아침에 깨져버렸다는 것에 절망감이 느껴졌다.

'그럼 나는 이제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지?'

열심히 트랙을 달리고 있던 나를, 누군가가 다시 원점으로 데려다 놓은 기분이 들었다.

'결국 이럴 거면, 나는 왜 그렇게 아등바등 열심히 산 걸까?'

이제까지 내가 해왔던 모든 일들이 실패로 돌아간 것 같아 허무했다.

그렇게 나는 매일매일 실패자가 되었다는 생각에 괴로워했다.




독일 가족들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 차 안, 뒷자리에 있던 아이들이 곤히 잠이 들고, 남편과 나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번아웃이 오고 집에서는 대화가 현저히 줄어든 차였다. 내 우울함이 남편에게까지 번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과 함께, 나도 내 마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었기에 할 말이 점차 없어졌었다. 요즘 상담사와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 물어보는 남편에게,

“내가 실패한 것 같다고 했어. 이제껏 조금씩 성장하는 삶을 살았는데, 처음으로 바닥까지 떨어져 버린 느낌이 든다고. “

남편이 흠칫 놀라며 말했다.

“왜 실패했다고 생각해? 넌 이미 네가 상상하지도 못한 성공을 이뤘잖아. 이렇게 잘 크고 있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될 줄도 몰랐고, 일 년도 채 못 채울 거란 마음으로 들어간 회사에서 승진까지 했잖아. 그건 이미 네가 이룬 거고 사라지지 않아. 너는 실패한 것이 아니라, 더 이상 그곳에 있을 에너지가 없어 다른 길을 찾는 것뿐이야."

또르륵 눈물이 흘렀다. 다른 누군가의 말보다, 가장 가까이서 나의 모든 것을 봐온 남편이 이런 말을 해 준다는 것이 나에게는 큰 의미로 다가왔다. 남편에게 같은 일이 일어났어도, 나 또한 그렇게 말해 줄 것 같았다. 수고했다고, 이제는 조금은 힘을 빼고 쉬어가도 된다고. 우습게도 나 자신에게는 왜 그런 따뜻한 말을 해주기 어려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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