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go to Taekwondo!』, Aram Kim
독일인 아빠와 한국인 엄마 사이에서 태어나, 인생의 대부분을 벨기에에서 보낸 이든이와 이나. 비록 외국에서 나고 자라고 있지만, 나는 이 아이들이 한국이라는 뿌리를 잊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한국말로 대화를 나누고, 일주일에 절반은 한국음식을 먹고, 한글학교며 태권도장을 데리고 다니며 한국과 가까워질 수 있게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아이들이 크면서 이것이 엄마의 노력으로만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님을 깨닫는 순간들을 맞이한다.
어느 날 이든이가 말했다.
"엄마, 태권도 이제 그만 배울래요."
"왜? 태권도를 배우면 몸도 마음도 튼튼해져. 조금만 더 해보는 게 어때?"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은 한국과 연결되는 고리를 놓고 싶지 않은 엄마의 욕심에 이든이가 태권도를 계속했으면 싶었다.
"별로 재미가 없어요."
"그래도 한 달만 더 해보자, 응? 원래 새로운 것을 배우고 재미를 느끼는 데에는 시간이 걸려.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으니 조금만 더 해보고 그래도 싫으면 그만하자."
엄마말 잘 듣는 이든이는 그렇게 반년 이상 태권도를 배우며 두 개의 허리띠를 얻었고, 나는 이든이가 쉽게 태권도를 통해 '포기하지 않는 법'을 배운 것 같아 뿌듯했다.
『Let's go to Taekwondo! (태권도하러 가자!)』는 김아람이라는 재미교포 작가가 쓴 동화책이다. 여기에는 이든이처럼 태권도를 배우는 유미라는 이름의 고양이가 나온다. 유미는 신나게 태권도를 배우기 시작했지만, 송판 깨기를 연습하며 두려움을 느낀다. 커다란 송판이 꿈에 나올 만큼 두려움이 커진 유미는, 태권도장에 가지 않으려 할머니께 온갖 핑계를 댄다. 결국 할머니께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은 유미. 그런데 알고 보니 할머니도 컴퓨터로 한국에 있는 동생에게 영상통화를 걸려고 하는데 잘 되지 않아 속상해하는 중이었던 것.
"I'm quitting taekwondo!!! (나 태권도 그만둘래!!!)"
"And I'm quitting this computer!!! (나도 컴퓨터 그만둘 거야!!!)"
둘은 폭발하듯 포기선언을 내뱉는다. 하지만 유미는 살며시 할머니께 다시 한번 도전해 보시기를 권하고, 결국 할머니는 동생에게 영상통화 거는 데 성공한다. 그 모습을 본 유미 또한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연습을 시작한 끝에, 결국 송판 깨기를 성공해 내고 만다.
독일로 이사오며, 나는 이든이의 태권도장부터 검색을 했다. 이든이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이든이의 태권도 여정이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나의 욕심 때문이었다.
"이든아, 엄마가 집 근처에 태권도장 찾았어. 우리 다음 주에 가 볼까?"
"아니."
"왜? 이든이 승급시험도 두 번이나 합격하고 태권도도 잘했잖아."
"그런데 재미없어. 안 하고 싶어."
"태권도는 한국의 운동이잖아. 이든이는 한국사람이고. 태권도를 열심히 잘하면 이든이가 더 큰 형아가 됐을 때 뿌듯하지 않을까?"
"아니."
흠.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이전에도 싫다고 했지만, 그럼에도 이든이는 열심히 태권도를 배웠고, 승급시험도 치러냈다. 그런데도 흥미가 없다면, 나도 더 이상 이 아이를 설득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 그럼. 그만 다니자."
그렇게 나는 포기를 선언했다.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포기하지 않는 법'을 배운다. 끊임없이 넘어져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나 걸음마를 배우고, 그 작은 입술을 꼬물꼬물 움직여 같은 단어를 수백 번 반복하며 말도 배운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귀찮고 하기 싫은 일들도 포기하지 않고 끈기 있게 해 나가는 법을 배워나간다. 나도 그랬던 것 같다. 안 되면 될 때까지, 하기 싫어도 끝까지, 왠지 '포기'는 나약하고 나쁜 말인 것만 같아 무엇이든 이를 악물고 끝까지 해내려고 노력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포기가 필요한 순간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최근 번아웃 진단을 받고 난 뒤 나의 이런 생각은 더욱 공고해졌다. 이미 오래전부터 힘에 부치는 것을 느껴왔음에도 나는 왜 포기하지 못했을까. 나에게 맞지 않는 자리임을 알면서도 왜 떠나지 못했을까. 내가 '포기할 줄 아는 법'을 배웠다면, 조금 더 일찍 나를 자유롭게 놓아줄 수 있지 않았을까.
"엄마, 나 태권도 다시 할래요."
태권도를 그만두겠다 선언한 지 채 한 달이 지나지 않아, 이든이가 다시 내게 태권도장을 찾아달라며 찾아왔다.
"어? 왜 다시 하고 싶어 졌어?"
"그냥. 지금 생각하니 꽤 재밌었던 것 같아. 다시 하고 싶어 졌어."
고마웠다. 태권도를 다시 다니겠다는 이유가 엄마 때문도, 한국 때문도 아니었지만, 그렇게 다시 시작하겠다고 말해주는 것이 마냥 고마웠다. 내가 이전에 포기하지 않고 이든이를 설득했다면, 이 아이는 아마 태권도 이야기에 질려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오히려 마음을 놓고 잊어버리고 나니, 이런 생각지도 못한 전개가 이어진 것이다. 이 아이가 커가는 동안 나는 이런 순간들을 더 많이 맞이하게 될 것이다. 엄마의 욕심으로 무언가를 밀어붙이려 하고, 그럼에도 아이가 마음이 동하지 않아 포기하고, 결국에는 아이가 원하는 무언가를 스스로 찾게 되는 그런 과정말이다.
'포기하지 않는 법'도 '포기할 줄 아는 법'도 인생에 반드시 필요한 지혜다. 뭐가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함이 없이, 이 둘을 모두 잘 다룰 줄 아는 삶이야말로 진정 건강한 삶일 것이다. 그런데 이 둘을 배우기 위해서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포기'가 부정적인 말이 아님을 깨닫는 것이다. 인생을 살다 보면 언젠가 포기할 수밖에 없거나, 포기해야만 하는 순간이 온다. 나는 내 아이들이 그런 순간에 깔끔하고 산뜻하게 '포기'를 외칠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한다. 그리고 그런 용기를 내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멋진 일인지 꼭 알았으면 한다. 쉽게 포기하지 않고 본인의 최선을 다하되, 더 이상 나아갈 힘이 없다고 판단되면, 망설임 없이 그것을 놓아줄 줄 아는 용기. 그 용기로 인해 마음의 평화를 찾고, 새로운 내일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다면, 이 아이들의 삶이 한 겹 정도는 더 가볍고, 한 뼘 정도는 더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