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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현 작가 Jan 31. 2023

체코 플젠에서 길을 잃다.

필스너 맥주 공장을 갈 수 있을까?


카를로비바리가 카를왕의 온천이라고 불리게 된 것은

사냥이 취미인 카를4세가 우연히 이 마을을 들어오게 되었는데,

사슴인가 하는 어떤 동물이 몸을 다쳐 상처가 났단다.

흐르는 온천수에 상처 난 부위를 가져다 대니 씻은 듯이 금방 나았단다.

이것을 목격한 카를 4세가 이 곳을 '카를로 비바리'로 지정하면서, 소문이 나기 시작했단다.

전설따라 삼천리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가이드의 이야기가 참 인지 거짓인지 보다는

그 당시 카를4세 왕권의 대단함이 마을 이름에 까지 퍼지다니...

온천수가 흐르는 냇가의 다리를 건너면서 카를로비바리 마을 오전 투어가 시작됐다.


물줄기를 따라가면 본류의 뜨거운 온천수가 콸콸콸 쏟아지는 광경을 볼 수 있다.


온천수가 약수처럼 사용되는 곳으로 유명하다 보니,

약수를 떠 마시는 잔과 주전자를 파는 소품샵이 곳곳에 즐비해 있다.

겨울 날씨가 을씨년스러운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산속 마을 깊숙히 들어오게 되니,

온천수의 열기와 기운에 습도가 높아진데다,

새벽부터 비가 올듯 말듯 안개 구름 끼인 하늘이라서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것 같은 기운이 마을 전체를 감싸고 있다.

여행에서 비가 와도 비를 그냥 맞는 유럽 사람들이 대다수이고,

정말 우기가 아닌 이상 하늘에서 추적추적 내리는 비는 맞아도 괜찮다는 가이드의 말과

자신도 개의치 않고 비를 맞으며 다닌다는 말이 크게 거슬리지 않았다.

 (나도 비가 오면 비를 맞을 생각이었다. 언제 맞아 보겠는가?)

우산이 가방에 있었지만,

차에서 내릴 때는 거추장해 따로 챙기지 않았다.

다행히 비는 결코 내리지 않았다.




세월을 거듭하면서 온천수 유명 관공명소가 된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마을의 하루는 온천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듯 하다.

유난히 동유럽 쪽 물은 석회수가 많이 들어 있어서 그런지, 마시는게 꺼림직하고

석회수 섞인 듯한 깔깔한 맛이 올라올 것 같은 괴이한 느낌인데도

치유의 물이라고 하니, 여행객들은 이런 기회가 언제 있으랴 하는 생각에  

죄다 온천수 터에 머물러서 한 모금이라도 마실 기회를 노리며, 컵을 들고 줄을 서있다.


일종의 호기심이겠지!


어떤이는 물 맛이 쇳물 맛이라고 하기도 하고,

누구는 맥반석 계란 맛 혹은 이끼낀 돌냄새 심한 역한 맛이라고도 한다.

주변 사람들의 물 맛  체험을 옆에서 구경하기 만 했다.


누구나 시음할 수 있는 온천수 시음대


점심은 카를로 비바리 마을 레스토랑에서 체코 전통 모듬요리를 먹었다.

오후 일정은 카를로비바리에서 1시간 20분 쯤 차로 이동해서 '플젠'으로 향했다.  

그 곳에서 성 바르톨로메오 대성당을 둘러본 후,

오후 3시 쯤 라거맥주의 본산지인 필스너 맥주공장을 방문하기로 했다.


플젠 도시 중심부에 위치한 성 바르톨로메오 대성당 근처에 차가 멈췄고,

우리는 그 광장 앞에서 모두 내렸다.


성 바르톨메오 성당 앞 광장 - 우리를 태운 버스기사는 여기서 경찰에게 주차위반 딱지를 뗐지




성바르톨로메오 성당에서 필스너 맥주공장과의 거리. 걸어서 10분도 채 되지 않는다. 이렇게 가까울줄이야!


플젠 대성당 내부를 투어한 후, 오후 세시 버스를 타고

맥주 공장 시음회 투어 만 남아있다.

광장의 시계가 오후 세시를 가리키고 있다.

우리 일행은 성 바르톨로메오 대성당 광장 앞에서 필스너 우르켈 맥주공장을 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나중에 알고보니, 우리가 그렇게 헤맸던 성당 광장에서 맥주공장은 걸어서 10분이요, 버스로는 30분이란다. 동네를 모르니, 헤매는 것은 당연한거다. )


버스가 오기로 한 시간이 10분 쯤 지났지만, 버스는 광장에 오지 않았다.

기다리던 버스가 오지 않자, 가이드는 뭔가 결정을 한 듯 어딘가로 걷기 시작했다.

우리도 덩달아 따라가기 시작했다.



15분쯤  걸었을까? 가이드가 순찰 중인 경찰에게 다가가버스 기사와의 통화한 전화기를 바꿔주면서

심각한 통화를 계속 이어가고 있다.

전화를 끊고도 뭔가 해결이 안된듯, 경찰과 잠깐 대화를 이어갔다. 어떤 결론도 나온 것은 없었고,

멀리 있는 우리에게는 정확한 사인은 없다.

가이드를 따라, 다시 15분 정도를 걸었다.

플젠 시내 어딘가의 버스 정류장에 걸음을 멈췄다. 다들 지친 기색이다.

가이드는 이제 우리 모두를 이곳 정류장에 두고, 혼자서 광장 쪽으로 다시 걸어가는 듯 했다.

버스 기사가 길을 잃었다고 한다.


다들 황당한 표정이다.


서울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여기는 여행지이기도 하고, 우리를 태웠던 버스기사는 오늘 우리와

처음 만났고, 플젠 시내 지리를 잘 모르는 헝가리 여행사 기사인 모양이다.

말이 안된 이야기지만, 우리는 그런 말도 안되는 상황에 놓였다.

토끼눈을 하고 서로에게 말도 제대로 못한 채, 처지가 같음을 일순간 알아버렸다.


다시 10분쯤 지났을까?


버스정류장에서 기약없이 기다리고 있는 우리들.

카카오 보이스톡으로 내게 가이드가 연락을 해왔다.  

거의 교신에 가까운 연락이었다.


 휴대폰 밧데리 2%를 가리키고 있었다.

행여 끊기지 않을까 노심초사 하면서 전화를 받았다.

기사가 우리를 내려줬던 곳이 내려주면 안 되는 곳이어서, 경찰에게 딱지를 떼였고,

그 이후 길을 잘못 들어서면서 길을 잃고 멘붕상태가 되었단다.

일단, 길을 찾아 대성당 쪽으로 오고 있는 중이긴 한데,

트래픽 상태여서 좀 시간이 걸릴 것 같다고 한다.


아무튼 기다리란다.

우리를 인도하는 가이드는 우리와 떨어져 있었고,

유일하게 내게 교신처럼 연락 온 보이스톡으로는 일행을 안정시키고 기다려 달라고 한다.

우리가 서 있는 정류장으로 버스기사가 오기로 했다고 하니, 무조건 어디 가지 말고 기다리라고 한다.

나는 가이드의 말을 일행 모두에게 전했고, 조금만 기다리자고 전했다.

다들 불안한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면서, 이제 맥주공장 시음 일정은 틀렸다는 눈치다.


맥주공장 시음을 못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어쩌면, 이국에서 길을 잃은 채 하루를 보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두려움으로 휩싸이는 순간이다.

맥주 시음장 약속은 오후4시였는데, 그 시간은 지나버렸다.

이심전심...여행객 모두의 흔들리는 눈빛에  두려움과 불안이 도사리고 있는 건 당연했다.

다시 가이드의 보이스톡이 내게 왔다.


버스기사가 이 곳 정류장 지리를 잘 몰라서,

원래 버스 기사가 우리를 내려주었던 성당 광장으로 오라는 가이드의 메세지였다.


"가이드 연락받았는데, 저희가 저쪽 광장으로 움직여야 해요"

내가 가이드라니...라니...

간단한 상황설명과 함께 나는 우리 일행을 이끌고, 7분짜리 가이드 역할을 맡게 됐다.


발걸음은 잰걸음으로 빨리 가이드와 버스기사를 만나야 만 나의 가이드 임무는 끝나는 것이지.

유랑자처럼 방황할 수 없으니, 오로지 광장을 향해서 달려갈 뿐이다.

골목길을 따라 곧 바로 나가니, 드디어 아까왔던 광장이 보였고, 우리는 가이드와 버스기사를 상봉할 수 있었다.



짧았던 7분은 금새 지났고,

길을 잃었던 시간은 버스에 오르자 마자, 안도의 한숨과 긴장의 살얼음은 눈 녹듯 녹았다.

다행히도 필스너 맥주공장 측에서 오후 5시까지 오면, 현장 가이드를 통한 맥주공장 투어와 시음을 할 수 있게 배려해 주었다.

버스 기사의 실수와 가이드가 우리를 놓고 간 소동.

그래서, 순식간에 타국에서 길 잃은 자들이 될 뻔한 시간들을 거쳐서 맥주공장에 들어서게 됐다.

시원한 맥주를 시음하면서, 그 어느때 보다도 더 밝고 행복한 웃음으로 즐기는 여행자들의 행복한

모습에 맥주 맛이 달디 달았나 보다.







라거맥주라 불리는 오크통 맥주. 맥주효모의 발효과정 시찰



길을 잃고 헤매이는 자들의 유랑처럼 플젠 도시를 헤매였던 시간이 지나고,

맥주 한잔으로 하루를 시원하고 상쾌하게 보내다.   

그날의 스릴 넘치는 짜릿한 경험이 예기치 않은 인생과 같으리라 생각하며, 가슴을 쓸어 내린다.


 

 동유럽 여행 -  체코 플젠에서 (2023.01. 10.) - 길을 잃어보면, 보이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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