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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분석미학 탐방기

분석미학이란 무엇인가...?


한국에서 분석미학을 전공하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영화 이론이나 무용 이론 같은 것을 연구하다 보니 분석미학의 텍스트를 참조하게 된 연구자들(이런 사람들은 의외로 적지 않다!)을 제외하고, 스스로 분석미학을 공부한다는 의식을 가지는 한국인들만을 모아 본다면, CGV 상영관 하나 정도만 빌려도 거뜬히 다 앉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 상영관을 폭파한다면 한국에서 분석미학을 공부하는 사람은 멸종하겠지… 이런 사정은 인문학의 어느 세부 분야건 비슷하겠지만 말이다. 


이따금씩 분석미학이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해야 하는 상황이 극히 드물게 찾아온다. 물론 보통은 그 전에 미학이 무엇인지 설명해야 하는 경우가 더 많기는 하고, 미학이 뭐냐고 묻는 사람들의 99%는 사실 나의 대답이 별로 안 궁금한 사람들이다. 요는, 분석미학을 공부하는 사람도 아주 적고 그게 뭔지 궁금해 하는 사람은 더 적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희박한 확률을 뚫고 분석미학이 무엇인지 진정으로 궁금해 하는 사람이 아예 없지는 않다. 그런 사람들을 예상 독자로 삼아서 나의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분석미학에 대한 생각과 경험을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적어도 나는 학부 때, 대학원에 오기로 결정했을 때 분석미학을 공부하는 선배들의 그러한 주관적인 답변이 필요했던 것 같기 때문이다. 그리고 박사과정을 수료할 때쯤 되니 ‘라떼는 말이야’라며 나의 경험담을 누군가에게 쏟아놓고 싶어진 것도 없지 않아 있다.




분석미학이란 무엇인가? 분석미학이 어떤 학문 영역인지 설명하는 많은 텍스트들은 분석미학의 역사적 동기로부터 출발한다. 태초의 분석철학자들은 기존 철학의 ‘관념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성격에 불만을 품었고, 철학이 세계 그 자체의 궁극적 구조를 밝혀낼 수 있다고 생각지 않았다. 따라서 분석철학자들의 관심은 세계 자체가 아니라 세계를 바라보고 표현하는 우리의 개념적 도식이나 언어로 향했고, 분석미학자들도 이러한 동기를 공유했다. 그래서 분석미학의 초기 형태는 ‘비평철학’이었다. 분석미학자들은 예술 그 자체의 궁극적인 본질(예술이란 무엇인가?)을 미학 이론을 통해 밝혀낼 수 있다고 생각지 않았기 때문에, 한 발 물러나 예술에 대한 언어, 즉 비평을 탐구하는 것을 과업으로 삼았다―이것이 보통 학부 수업에서 배우고 가르치는 분석미학의 탄생비화이다. 이렇게 보면, 분석철학과 분석미학은 애초에 부정과 불만으로부터 출발한 셈이다. 그게 오늘날 분석미학 특유의 ‘스웩’에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닌가 의심해 본다.


그러나 비평철학의 형식을 띤 분석미학은, 이를테면 분석미학의 프로토타입 정도로 생각할 수 있다. 오늘날 분석미학은 스스로를 비평철학에 가두지 않기 때문이다. 예술과 미는 오늘날 분석미학에서도 당연히 중요한 주제이고, 분석미학자들은 이 주제에 대해서 활발하게 논의하고 있다. 그러나 신비스러운 궁극적 실재에 대한 반감, 평이하고 명료한 진술과 상식적 주장에 대한 옹호는 태초부터 지금까지도 분석미학의 중요한 성향이다. 분석미학의 거장 조지 디키는 미학에 만연한 지적 문제를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겉치레 가득한 언어,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용어 사용, 불분명함, 그리고 불필요한 신비주의와 복잡함.” 나는 나를 포함해서 분석미학을 공부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선호와 경계심을 공유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분석미학에서 논변의 중요한 결함으로 지적되곤 하는 것이 바로 ‘반직관성’이다. 그 자체로 정합적인 주장이더라도 그것이 우리의 ‘상식적 직관’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일상적인 언어로 상식에 부합하는 주장을 할 것. 나는 이것이 분석미학의 중요한 특징이라고 생각한다. 분석미학은 ‘분석’이라는 형용으로 다른 미학 분과와 구별되기는 하지만, 많은 이들이 동의하듯 분석미학뿐만 아니라 모든 철학과 미학은 분석적이어야 한다. 여기서 나는 ‘분석적’을 ‘선언적’이라는 말의 반의어로 사용한다. 즉, 모든 철학과 미학은 그것이 학문인 이상 선언에 그치면 안 되고 논증(argument)을 포함해야 한다는 것이다. 논증이란 전제와 결론을 언어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분석미학의 구별적 특징은 이 분석이, 즉 전제와 결론의 전개가 평이한 언어로 진행되며, 전제와 결론 사이의 논리적 타당성이 매우 강조되고, 그러한 논변의 구성이 상식적 직관에 최대한 부합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상식에 부합하는 주장을 하는 미학이 우리에게 어떻게 새로운 앎을 줄 수 있는가가 의심스러울 수도 있다. 그렇지만 상식에 부합한다고 해서 아무런 통찰을 주지 않는 것은 아니다. 분석미학이 건드리는 상식의 영역은 우리가 명시적으로 드러내어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 암묵적으로 또는 산발적으로만 가지고 있었던 생각들이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들을 섬세하게‘분석’해서 드러내고 그것을 이론적 설명으로 묶을 때, 분석미학자들이 그토록 강조하는 ‘타당성’과 ‘엄밀성’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결국 분석미학은 분석이라는 방법론, 그리고 그 방법을 실행함에 있어서 타당성, 엄밀성을 의식적으로 추구하는 조류가 된다.


이러한 특징은 분석미학자들이 다른 철학자들의 이론이나 원전을 주해하기보다는, 아무리 사소하더라도 자신의 독립적인 논변을 구성하려 하는 경향과도 맞물린다. 대륙미학과 분석미학의 차이에 대해서 어느 선생님은 “대륙미학은 1명이 100걸음을 간다면 분석미학은 100명이 1걸음씩 간다.”고 말한 바 있는데, 나는 이 비유가 매우 적확하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분석미학자들이 평이한 언어를 사용하여 각자의 주장을 하고 있기 때문에 원전 독해 자체가 독립적인 학문적 결과물로서 갖는 의미는 크지 않다. 분석미학의 ‘원전’들은 대부분 해석의 여지가 열려 있거나 전문가의 주해가 필요할 만큼 난해한 텍스트들은 아니기 때문이다(물론 그렇다고 분석미학의 텍스트들이 쉽다는 것은 아니다). 한편으로 분석미학자들은 웬만하면 상식선에서 받아들여지는 주장을 하고자 하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정합적이지만 일상적 관념과는 다소 괴리되어 있는 거대 이론 체계를 세우려는 시도도 별로 하지 않는다. 분석미학의 영역에서 더 중요한 것은 “1명”의 원전이 어떤 말을 하고 있느냐가 아니라, 그것을 사용해서 “100명”의 미학자가 각기 어떤 주장을 더 낫게 할 수 있느냐의 문제이고, 그렇게 제기된 100개의 주장들을 어떤 지형도로 엮어낼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분석미학의 논증의 세계에서는 교수든 학생이든 설득력 있고 타당한 주장을 하는 것만이 요구된다. 이것은 분석미학의 100명은 대체로 평등하게 주장을 펼칠 수 있다는 말이다. 물론 분석미학계에도 ‘빅 가이’가 있고 그들의 주장에 권위가 실리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은 대부분 그 주장들이 대체로 크게 설득력을 가지기 때문이다… 그냥 그 사람들이 남들보다 설득력 있고 타당한 사람들인 것이다. 당신의 주장이 그보다 더 큰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면? 야 너두 할 수 있어! 분석미학계의 빅 가이. 단 영어를 잘 해야 한다. 


분석미학의 어두운 점에 대해 말할 필요가 있겠다. ‘상식에 부합함’이라는 특징은 결국 분석미학의 반(反)정치성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예술과 도덕의 관계는 분석미학의 오랜 주제이지만, 분석미학이 생각하는 ‘도덕’과 ‘비도덕’은 놀라울 정도로 비정치적인 개념이다. 분석미학에서 비도덕적 예술작품의 대표주자로서 전통적으로 언급되어 온 것은 나치 프로파간다 영화인 <의지의 승리> 정도라는 사실에서 분석미학의 비정치성을 엿볼 수 있다―즉, 나치 수준으로 누가 봐도 나쁜 것만을 안전하게 사례로 삼는 것이다. 결국 분석미학의 주장은 ‘누구의’ 상식에 부합하는가? 분석미학은 이러한 물음은 별로 묻지 않는다. 그러나 분석미학이 분석적이기 위해서 정치성을 배제하고 차단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만 할 필요는 없다. 최근의 분석미학 탑 저널들은 저자들의 ‘다양성’을 의식적으로 확보하려고 하는 듯 하며, 현대 분석미학자들 중에서도 예술과 사회의 관계, 예술의 정치성에 대해 충분히 의식하고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아무리 봐도 절대 없어 보인다면, 당신이 하면 된다. 분석미학-예술-정치의 연관은 블루오션이다. 츄라이 츄라이.



내가 분석미학에 잘 맞는지 아닌지에 대한 자체 간단 테스트.


(1) 나는 미학을 공부할 계획이 있다.

(2) 나는 영어를 읽을 줄 안다. 

(3) 나는 존경하거나 동경하는 철학자가 특별히 없다.

(4) 나는 나만의 주장을 제기하는 것이 중요하다.

(5) 나는 역사 공부나 원전 독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6) 나는 주술호응이 잘 맞고 읽기 쉬운 문장을 좋아한다.

(7) 나는 철학 텍스트를 읽으면서 특별히 가슴이 뜨거워지거나 감동하지는 않는다.


위 선택지 중 4개 이상에 해당하는 사람이라면 분석미학을 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제목에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를 한참 했는데, 내가 분석미학을 선택한 개인적인 이유를 간단하게 밝히고 글을 마무리하기로 하자. 크게 세 가지 이유가 있었던 것 같다. 첫 번째, 내가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학부를 분석미학적 학풍이 강한 곳에서 시작했다. 미국에서 유학한 교수님들이 많이 계셨기 때문에, 특별히 의식하지는 못했으나 학부 기초과목의 내용에는 분석미학의 논의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래서 남들에 비해 비교적 분석미학에 친숙했을 것이다. 두 번째, 어찌어찌 학부 졸업논문을 썼는데, 그 논문에 대해서 모두 회의적이고 부정적인 코멘트(무슨 개소리야?)를 하던 와중에 유일하게 ‘무슨 말을 하려는지는 알겠다’고 말해준 사람이 지금의 분석미학 분과 지도교수님이다. 나는 지도교수님이 나에게 충분히 합리적인 코멘트와 지도를 해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지도교수님은 그 때의 한마디 실수로 인해 나의 석사과정뿐 아니라 박사과정까지도 지도해야 하는 십년간의 업보를 짊어지고 만 것이다…

세 번째, 나는 사진을 가지고 학부 졸업논문을 썼었는데, 그 때는 영어 논문을 찾는 법도 읽는 법도 몰랐다. 그래서 도서관에서 ‘사진’을 검색해서 나오는 책들을 볼 수밖에 없었는데, 국내의 사진이론들은 유럽 계열의 철학이 잠식하고 있었다. 대표적으로 바르트, 수전 손택, 필립 뒤부아, 벤야민… 그런 문헌들은 재미는 있었지만 읽고 나면 내가 뭘 읽었는지 잘 이해하기 어려웠다. 석사과정에 진학해서야 분석미학에서 사진에 관한 논의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켄달 월튼의 “Transparent Pictures: On the Nature of Photographic Realism”을 처음 읽었을 때의 충격을 기억한다. 푼크툼이나 스투디움 같은 개념을 쓰지 않고도, 바르트나 벤야민을 인용하지 않고도 이렇게 사진에 대해서 명료하게 주장할 수 있다니! 주변 사람들을 붙잡고 이게 내가 하고 싶던 거였어! 왜 아무도 이 논문을 나한테 알려주지 않은 거야! 라고 소리라도 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 논문으로부터 출발해서 내가 너무나 즐겁게 읽었던 사진에 관한 분석미학 논문들이 줄줄이 엮여 올라왔다. 그런 것을 읽고 조직하고 내가 그것에 대해 말하는 것이 즐거웠고, 사소하더라도 무언가를 분명하게는 알게 되었다는 충족감이 들었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다름 아닌 분석미학을 선택하게 되는 계기는 결국에는 기질이나 성격에 달려 있는 것 같다. 그러니 만일 자신이 분석미학에 잘 맞는지 아닌지 궁금하다면 분석미학 논문을 몇 편 읽어보면 금방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 첨언

조심스레 밝히자면 나는 분석미학에 대해 절대로 다 안다고 말할 수 없는 입장이다. 이 글은 한국에서 분석미학을 공부하고 있는 학생으로서 주관적으로 느낀 것만을 쓴 것이다. 분석미학에 대한 더 적절하고 전문적인 설명은 <미학>지에 실린 이해완 외(2018), “분석 미학, 무엇을, 어떻게”를 참조하기 바란다.  


(윤주한, 이해완, 신현주, 최근홍, 강선아. (2018). 분석 미학: 무엇을, 어떻게. 미학, 84(4), 91-155.)



* 첨언2

당연히 이 글만으로 분석미학의 윤곽을 다 드러낼 수는 없을 것이다. 한국 분석미학의 '분위기' 이상으로, 분석미학이 다루는 학문적 주제와 방법론이 궁금한 분들은 위 논문에 더하여 다음을 참조할 수 있다. 

임수영, "분석미학에 대한 간략한 소개 (1): 예술과 관련된 주제들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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