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글쓰기 조교가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올리는 상소문
나는 대략 2015년 정도부터 여러 과목의 조교로서 학부수업의 시험이나 글쓰기 과제를 채점해 왔다. 그리고 지금도 채점 중이다. 나는 지금 한 학기에 총 4개 수업에서 한 학기에 대략 1000편이 넘는 글쓰기를 채점한다. 천여 편이라니, 뻥 같지요? 아닙니다. 실화입니다.
이 글은 영원한 채점지옥에서 허우적대다가 쓴다. 거의 좀 소리를 지르고 싶은 심정으로 쓰는 것이다. 많은 조교와 강사들은 공감할 텐데, 특히 글쓰기 과제나 답안을 채점하다 보면, 형식조차도 놀라울 정도로 못 갖춘 글들을 생각보다 많이 발견하게 된다. 끝나지 않는 채점을 하면서 나는 점점 속으로 이렇게 외치고 있는 것이다. '제발 맞춤법 검사라도 돌리고 제출해라!!!!!!'
솔직히, 우리 나라 학부생의 글쓰기 평균 수준은 썩 좋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것을 학부생들 개개인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일단 고등교육 차원에서 글쓰기가 제대로 훈련되지 못하고 있을 것이고, 더 중요하게는 적절하고 충실한 글쓰기 교육을 제공하는 대학도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글쓰기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려면 거의 일대일로 조교나 강사가 붙어서 글쓰기에 대한 충분한 교정을 해주어야 하는데, 교강사들이 일주일에 3시간 일하는 만큼의 강의료를 받으면서 40~50명에 달하는 학생들의 글을 모두 일대일로 기꺼이 교정하고 첨삭해주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선생님이라면 그래야 하는 것 아니냐고? 강사들의 일반적인 시급을 5만원이라고 했을 때, 월 60만원을 받고 40명의 글을 일대일로 붙어서 첨삭하는 것이 강사가 마땅히 해야 하는 노동이라고 생각되는가? 감이 안 오면 입시 논술학원이 학원비를 얼마나 받는가와 비교해보면 될 것이다.
'잘 쓴 글'에 대한 이상한 통념
글쓰기를 제대로 교육받기 힘든 환경 때문에, 학생들은 과제물이나 시험에서 요구하는 '학술적 글쓰기'를 매우 낯설어하는 것 같다. 인터넷 게시판에서는 빛나는 필력을 자랑하더라도, 막상 논증문이나 비평문을 쓰라고 하면 무엇을 써야 할지 몰라 당황하는 학생들이 많다. 그리고 수년차 글쓰기 조교이자 글쓰기 강사로서 나는 학생들이 글쓰기 자체에 대해 갖는 불신이 분명히 있다고 느낀다. 글이라는 것은 대충 멋드러진 단어들을 연결해서 그럴싸하게 쓰면 되는 것이며, 결국 내용의 문제가 아니라 수사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 그리고 좋은 글과 나쁜 글의 구분은 단순히 취향과 선호의 문제라는 것. 사실 이런 생각은 학부생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전반이 공유하고 있는 정서이다. '잘 쓴 글'이란 이른바 '필력이 쩌는 글', 즉 무릎을 탁 치게 하고, 참신한 비유를 사용하며, 멋드러진 단어를 사용하여 가슴을 울리는 그런 글이라는 생각은 아주 일반적으로 퍼져 있다. 다들 그런 글들을 '좋은 글'이라고 하는데, 갑자기 논증문이나 비평문 같은 걸 내라고 하니까 당황하는 것은 당연하다.
학생들이 더 당황스러운 때는, 열심히 글을 어찌어찌 써서 냈는데 만족스럽지 않은 성적이 돌아왔을 경우일 것이다. 글쓰기 과제의 성적에 승복하지 못하는 학생들은 생각보다 아주 많다. 흔히 글쓰기 과제물에 대한 평가는 공정할 수 없다고 여겨지곤 한다. 글쓰기 평가에 대한 이러한 불신은 앞서 말한 '좋은 글'에 대한 통념, 글이라는 것은 자유로운 표현이라는 생각, 글은 결국 내용이 아니라 수사의 문제라는 생각들 때문에 나타나는 것 같다.
글쓰기 과제를 하는 학생들이 가지는 두 가지 편견
특히 대학에서 글쓰기를 통해 평가를 받는 학생들이 일반적으로 갖는 생각(이자 편견)은 크게 다음의 두 가지 정도인 것 같다. 첫 번째, 글을 열심히 쓰면 좋은 성적을 받는다는 것이다. 두 번째, 교수 입맛에 맞는 글이 점수를 잘 받는다는 것이다.
첫 번째 편견에 관해서 이야기해보자. 글쓰기 과제의 성적에 대해서 가장 일반적으로 들어오는 클레임은 바로 이것이다. "저는 정말 열심히 썼는데 점수가 왜 이렇죠?" 물론 요즘 학생들은 대부분 예의바르고 조심스럽기 때문에 이렇게 대놓고 물어보지는 않는다. 그렇다 하더라도 기나긴 클레임 메일 속에서 학생들이 결국 묻고 있는 것은 저 질문이다. 썩 잘 쓰지 못한 비평문에 고만고만한 점수를 주었더니, 자신은 그 비평문을 쓰기 위해 일주일 동안 작품이 전시된 곳에 가서 심혈을 기울여 작품을 감상하고 오랫동안 조사하고 고민했다며, 그렇기 때문에 점수가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클레임을 하는 학생도 있었다.
두 번째 편견에 관해서 이야기해보자. 학부생들은 "교수 입맛에 맞는 답안"이 점수를 잘 받는다는 이야기를 종종 하곤 하는데, 이 이야기를 인터넷 댓글 같은 곳에서 볼 때마다 나는 좀 속이 상한다. 왜냐하면 글쓰기 평가는 '입맛'대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정말로 성의가 없는 교수자는 '입맛'대로 평가하는 일도 있기는 하겠지만.. 내 말은, '제대로 된' 글쓰기 평가는 학생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느낌적인 느낌을 기준으로 하지 않으며 나름대로의 기준으로 공정하게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나는 다음에 쓸 글에서 이 두 가지 편견에 대해서 더 자세히 이야기하고, 글쓰기 과제와 서술형 평가 답안을 쓸 때 제발(!) 지켜주었으면 하는 내용들에 대해 살펴보려고 한다. 당연히 이 두 가지 생각에 대해서 모두 "아니거든요!!!"라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다년간의 조교 경험으로 체득한 글쓰기 평가 기준의 비법을 밝힐 것이다. 아니, 사실 채점기준의 비법이 아니라 나에게 글을 제출하는 모든 학생들에게 정말로 정말로 솔직하게 하소연하고 싶은 내용들이다. 본래는 이 글에서 모두 이야기할 예정이었지만... 오랜 조교 생활로 쌓인 억하심정이 글 한 편으로는 모두 풀리지 않는 것 같다. 내가 글을 좀 쓰는 것 같고 필력이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교양과목 글쓰기 과제를 하면 점수가 만족스럽지 않다, 하는 생각을 하는 학생이라면 다음 글을 꼭 기대해 주기를 바란다.
다음 편: "열심히 썼는데 니 점수가 왜 그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