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대학원생의 충격 고백
인문학 전공 대학원생이 된다는 것은
요즘 같은 시대에 '인문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이 된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선택이다. 아니다. 잘못 말했다. '요즘 같은 시대'에만 그런 것이 아니다. 유사 이래 항상 그래 왔다.
그 이유는 너무나 당연한데, 인문학은 밥을 먹여 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인문학을 멸시하거나 평가절하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사실을 말하는 것이다. 나는 철학이 삶의 무기가 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지난 번 글에서 이미 이야기했었고, 인문학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아마 대부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인문학 대학원에 재학하고 있는 학생들뿐만 아니라 이미 대학원과 학계에서 안정적으로 자리잡고 있는 사람들조차도, 신입생이 되고 싶다는 사람을 일단 말리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말린다고 말려지는 것이 아닌 것도 인문학 대학원 진학의 길이다. 인문학 대학원 어때요? 라고 상담을 청해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미 답정너이다.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인문학 대학원에 진학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철학 연구를 도저히 그만둘 수 없다"고 생각한다. 사실 나도 그랬다. 나는 다니던 직장을 2년도 안 되어 때려치고, 뒤도 안 돌아보고 대학원에 진학해서 마치 고속도로를 달리듯 박사과정까지 직진해버렸다. 당시 다니던 직장을 약 3개월만 더 다녔더라면 퇴직금을 2배로 받고 나올 수 있었는데, 나는 그 3개월을 참지 못했다. 너무 대학원에 가고 싶어서(그리고 빨리 퇴사하고 싶어서). 물론 주변 사람들에게 상담도 했다. 대학원 갈까? 돈 더 모아서 갈까? 가지 말까?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해준 조언 중 결국 내 귀에 걸리는 대답들은 내가 듣고 싶은 말들(당장 가!)뿐이었다...
이 글은 그 때의 나와 같은 사람들을 위해서 쓴다. 일단 인문학 대학원에 진학하기로 결심을 한 사람들이라면, 그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 인문학 공부가 얼마나 힘들고 연구자의 길이 얼마나 쓸쓸한지를 설명하는 것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왜냐하면 인문학 공부의 매력은 또 그게 되게 힘들고 쓸쓸한 작업이라는 데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다만 실제로 대학원에 실제로 진학을 했을 때, 내가 꿈꾸는 그런 상황이 강의실 안에서 펼쳐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은 분명히 미리 알아두어야 한다. 대학원의 길은 쓸쓸하고 힘들지만 그래도 나를 성장시켜주고 나를 현자로 만들어주는 그런 길은 아니다. 대학원에 진학한다고 해서 자동으로 내가 공부를 하게 되거나 더 똑똑해지는 것도 아니다. 나는 과거의 나를 반성하는 차원에서, 그리고 이미 인문학 대학원에 진학하기로 마음먹은 사람들을 위해서 몇 가지 주의사항들을 써 보겠다.
먼저 유의할 점은, 대학원의 분위기는 학교뿐만 아니라 과와 전공마다, 그리고 지도교수마다 매우 다르다는 것이다. 내가 쓰는 이야기도 내가 겪어 본 대학원의 아주 일부만을 반영하고 있다. 따라서 진지하게 대학원에 진학하고 싶다면 나의 이 글은 재미로만 읽고, 다음과 같은 작업을 하기를 권한다.
먼저 그 대학원에서 가르치고 있는 교수들이 어떤 논문들을 출판하고 있는지 찾아보고, 지도교수로 삼을 만한 교수가 있다고 판단된다면 그 사람에게 메일 등으로 컨택을 해 보자. 학교마다, 전공마다 대학원생에게 요구하는 것이 다르므로, 미리 컨택해서 나와 합이 잘 맞을지를 보는 일은 필수적이다. 지난 2개 학기 정도의 대학원 세미나 강의계획서 등을 구해서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1. 공부가 이루어지는 방법
물론 학교마다, 전공마다 다르겠지만, 대학원의 수업은 교수자의 '강의'로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아니, 교수가 강의를 안 하면 수업은 어떻게 굴러가는가? '발제'로 굴러간다. 보통 대학원의 수업은 하나의 주제를 두고 여러 논문이나 철학 저서들을 한 학기 동안 읽어 나가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대학원 수업이 이렇게 진행되는 이유는, 대학원의 목표는 똑똑한 학생을 길러내는 것이 아니라 연구자를 길러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거꾸로 생각해 보면, 내가 인문학 대학원에 간다는 것은 내가 미래에 인문학 연구를 업으로 삼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내가 인문학 연구자라면 논문과 학술서적을 스스로 읽어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이 능력을 대학원의 코스웍을 밟으면서 기르는 것이다. 따라서 대학원에서는 교수가 일방적으로 강의를 해 주는 수업이 오히려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발제란 무엇인가? 간단하게 말하면 해당 주에 정해진 논문을 요약정리해서 발표하는 것이다. 때로 여기에, 발제자의 비판적인 논평이 포함되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거칠게 말하면 발제의 골자는, "이 논문은 이러저러한 내용인데, 제 생각에는 이러저러한 게 한계입니다." 정도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물론 이렇게 한 문장으로 퉁쳐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대학원을 다니면서 이 발제의 취지를 '숙제'로 잘못 이해하는 학생들을 많이 보았다. 보통 발제는 과제의 형태로 부여되기는 하지만, 그것을 선생님이 나에게 준 숙제로 대해서는 안 된다. 발제자는 숙제 검사를 받는 사람이 아니라, 해당 논문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그 논문의 취지와 내러티브를 그 수업의 수강생 모두가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할 책임을 지는 사람이다. 발제자가 발제를 제대로 해오지 않으면 교강사가 해당 논문에 대해 다시 일일이 설명해야 하게 되며, 따라서 그 날의 수업 퀄리티는 썩 좋지 않게 되고, 이것은 결국 다른 수강생들에게까지 피해를 주는 일이 된다.
발제를 해오라고 하면 통째로 번역을 해 오는 경우도 있다. 물론 어떤 교수님들은 학생들의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서 논문을 통째로 번역해오기를 요구하는 때도 있다.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번역보다는 요약정리를 권한다. 발제를 해오라고 했는데 번역을 해왔다면 그것은 "나는 이 논문의 요지와 주장을 요약할 능력이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논문을 읽어도 정 이해가 안 된다면야 최선을 다해 번역이라도 해 가야 하겠지만.
사실 논문이 이해가 안 되면 그걸 번역을 해가는 것도 크게 의미는 없다. 차라리 구글 번역기에 돌리는 편이 더 나은 번역을 얻을 수도 있다... 나는 회화의 평면, 혹은 표면을 뜻하는 'picture plane'을 '비행기'로 번역한 경우도 본 적이 있다(실화임). 해당 논문에 대한 국내 연구들을 뒤져 최대한 이해를 하려고 시도해 보도록 하자. 그래도 뭔 소리인지 모르겠다면, 적어도 내가 정확히 "어느 부분"을 "어떻게" 모르는지 정도를 정리해 보도록 하자.
이 '발제'는 학술활동의 가장 기초적인 단계로, 당신이 인문학 연구자로 자리잡게 된다면 발제는 정말 지겹도록 하게 될 것이다. 모든 인문학 연구의 첫걸음은 선행연구 분석이니까. 기존의 논문들을 읽고 논의의 지형을 그리고, 이 사람들이 무슨 이야기를 왜 하고 있는지 자신의 말로 다시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은 연구자로서 갖추어야 하는 기본 역량이다. 이 기본 역량을 키우기 위한 과정이 바로 '발제'이며, 그렇기 때문에 대학원 수업은 '발제'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 '발제'로 한 학기가 지나간 후에는 보통 '기말 페이퍼'를 제출하게 된다. 소논문이라거나 페이퍼라거나, 부르는 말은 제각각이지만, 결국은 한 학기 동안 수업에서 읽고 생각한 것을 바탕으로 자신의 주장을 소규모의 논문으로 만들어서 제출하라는 것이다. 이 기말 페이퍼를 쓰는 것 역시 미래의 학술 활동의 연습이다. 연구자가 된다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논문을 (많이) 써야 한다. 소논문 쓰는 게 너무 싫고 힘들다면 당신은 연구자가 적성에 맞지 않는 것이다. 간혹 '나는 심화된 공부만 하고 싶고 내 주장을 하고 싶지는 않다'라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 사람들은 연구자가 된다면 그리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
학술적 장에서 자신의 주장을 새롭게 내세우고 이론적으로 정당화할 수 있는 능력, 이것이 인문학 전공 대학원생에게 가장 크게 요구되는 능력이다. 인문학 학부를 다니면서 공부가 재밌다고 느꼈다고 해서 내가 인문학 연구자로서 대성할 인재라고 섣불리 판단해서는 안 된다. 학부에서의 수업은 보통 교강사가 일방적으로 강의함으로써 이루어지고, 조금 더 성실하고 열의 있는 교강사라면 심지어 '재미있게' 지식을 전수해 줄 수도 있다. 지식을 전수받는 과정이 재미있었다는 사실은 당신이 연구자로서의 적성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주지 못한다. 어쩌면 그냥 그 교수님이 강의를 되게 잘 하는 사람이었을 수도 있다. 나도 고3시절 국사 일타강사 강X성 선생의 국사 인강을 듣고 내가 국사학도의 적성을 타고났다고 착각했던 시절이 있다. 중요한 것은 나에게 지식이 재미있게 입력이 되느냐가 아니라, 내가 그만한 수준의 지식을 출력해낼 자신, 자신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런 욕심이 있느냐 하는 것이다.
2. 영어 공부를 할 것
영어가 싫어서 일부러 해외 대학 대신 국내 대학을 선택하는 학생들도 종종 보았다. 만일 그러한 동기로 국내 인문학 대학원에 진학하게 된다면 뒤통수를 맞게 될 수도 있다. 국문학이나 국사학, 동양사학 등을 제외하면, 인문학에 속하는 영역 대부분의 중심은 영미권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학계의 흐름에서 중요한 논문과 저술들은 영어로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는 국내 저널에 한국인이 논문을 실으면서도 영어로 써서 싣는 경우도 왕왕 있다. 아마 인문학 대학원에 진학한다면 당신은 당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이, 영어로 된 글을 읽어야 할 것이다. 가능하다면 영어 논문을 읽는 훈련을 미리 하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마음의 준비를 하기 바란다. 나는 영어가 죽어도 싫다면, 진지하게, 인문학 대학원에 진학하는 것을 재고하길 권한다. 영어를 사용하지 않으면 학계에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3. 돈을 버는 방법
장학금이나 조교 자리를 얻으면 대학원에서 대충 생계 유지가 된다는 꼬임에 쉽게 넘어가서는 안 된다. 장학금이나 조교 급여 같은 것은 학과의 내부 사정이어서 내가 모든 인문학 대학원 학과들의 상황을 알지는 못하지만, 장학금이나 조교 급여만으로 학비와 생활비가 넉넉하게 충당되는 그런 인문학 대학원은 거의 유니콘과 같다. 왜냐하면, 인문학 대학원에는 대부분 수익모델이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인문학 대학원을 떠받치는 자금줄은 등록금과 정부지원이다. 따라서 당신이 노동을 제공한다고 해도 그 노동을 제대로 값으로 쳐 줄 만한 그런 메커니즘이 인문학 대학원에는 없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생계를 유지할 만큼의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어느 정도 고민을 하고, 생계 유지를 위해 따로 시간을 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공부만 하는 삶'에 대한 희망은 나도 아주 강하게 갖고 있는 바이고, 인문학 대학원의 사정이 더 나아져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런 희망적인 상황이 근미래에 실현될 것 같지는 않다. 아마 인문학 대학원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람들이라면, 인문학 대학원에서 돈 벌기가 얼마나 힘든지에 대해서 이미 여기저기서 귀띔 받았을 가능성이 클 것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장학금이나 조교 월급으로는 생계가 유지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참고로 인문학 대학원생이 주로 돈을 버는 방법은 사교육(과외, 논술, 모의고사 지문 출제)이다.
4. 언젠가 교육자가 된다는 것을 기억하라
이건 내가 제일 뒤통수 맞은 기분이 드는 부분이다. 인문학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나는 내가 언젠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쳐야 한다는 사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고, 아무도 그런 사실을 알려 주지도 않았다(아마 너무 당연해서 안 알려준 것일 게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께 다시 강조한다. 인문학 대학원에 나와서 학계에 자리잡는다는 것은, 당신이 언젠가 교육자가 된다는 것이다. 나는 밖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싫고 매우 내향적인 성향이라 대학원에 진학해서 연구자가 되면 평생 책상에만 앉아 있어도 될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진학하고 나서, 심지어 석사학위를 받고 나서야 깨달았다. 아, 평생 책상에만 앉아 있어도 되는 연구자는 없구나. 그런 연구자가 있더라도 그게 나는 아니구나. 연구자도 밥벌이를 해야 하며, 연구자의 밥벌이는 보통 강의이다. 그리고 앞서 대학 생활자의 경제활동에 대해 이야기했듯이, 강의를 한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전임교수로 자리잡기 전까지의 불확실성을 견뎌야 한다는 것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특히 나와 같은 내향적인 사람은, 강의라는 것은 결국 공적인 말하기라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매주 세 시간씩(혹은 그보다 더) 많으면 백 명을 앞에 놓고 끊임없이 말을 해야 하는 것이다. 처음으로 강사 일을 시작했을 때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내가 말하지 않으면 이 강의가 진행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나만 쳐다보고 있는 백 명을 끌고 일주일에 세 시간의 설명을 해야 한다. 그리고 때로 그 백 명 중에는 나를 대충 '참스승' 같은 것으로 잘못 착각하고 개인적인 고민을 상담하거나 취업에 대한 조언을 구해오는 학생도 있고, 나에 대한 악플을 익명 게시판에 다는 학생도 있다. 대학원에서는 연구하는 법만 가르칠 뿐이지, 학생들을 교육하는 방법은 가르쳐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원생은 커서 교육자가 된다. 따라서 인문대 대학원생이 된다면 당신은 학생들을 교육하는 방법을 몸으로 부딪혀 가며 배워야 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책상 앞에 앉아서 공부할 준비가 된 나의 머릿속에 스스로 뭔가를 집어넣는 일과, '이거 왜 알아야 해요'라는 불만으로 가득 찬 학생들의 머릿속에 무언가를 집어넣는 일은 매우 다른 일이다.
5. 인문학은 인성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인문학이 비판적 사고를 훈련하게 해 주고 좋은 시민으로서의 소양을 길러준다고 생각하지만, 인문학을 공부하면 누구나 자동으로 '인성'을 갖춘, '사람다운 사람'이 된다는 생각에는 절대로 동의할 수 없다. 더 나아가서, 자신이 인문학 서적을 읽곤 한다는 사실이 자신의 고매한 인성을 증명해준다고 생각한다면 대단한 오산이다. 인문학에 관한 세간의 환상을 그대로 믿고 인문학 대학원에 진학해서는 안 된다. 교양 차원에서 인문학은 우리의 정신을 깨우쳐 주고 우리를 더 나은 인간으로 만들어 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대학원에 진학한다는 것은 프로 연구자를 지망한다는 의미이며, 인문학을 연구해서 먹고 살아야 하는 연구자는 인문학을 그렇게 낭만적으로만 대할 수는 없다. 게다가 인문학을 한다고 사람다운 사람이 된다면 학계에서 그 많은 미투와 대학원생 착취와 갑질 등등의 사건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나는 예술의 도덕적 의미에 대해 아주 중요한 논문을 쓴 저명한 학자가 여학생들을 보고 도덕적으로 아주 부적절한 농담을 한 일에 대해서 들은 적도 있다. 좋은 연구자, 훌륭한 인문학자라고 해서 인성을 다 갖추고 있는 것은 아니다. 대학원 레벨에서는 더욱 그렇다. 대학원도 사람 사는 곳이고 사람들이 일하는 곳이므로 또라이 보존의 법칙이 성립한다. 사회의 풍파에 질려서 '인간을 인간답게 해 주는 학문'을 하는 곳, 빛나는 이름 ~ 인문학 대학원 ~ 으로 도피하고자 하는 사람들이라면, 그곳도 결코 피난처가 될 수는 없다고 말해주고 싶다.
6. 영원히 불확실한 삶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냉정하게 말해서, 당신이 인문학 대학원에 진학해서 무사히 석사, 박사학위를 받고 학계에 나온다 하더라도, 그것이 곧 당신의 교수직을 보장해주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러니까 인문학 대학원에 다니는 사람한테 "그럼 언제 교수 되니?"라고 제발 묻지 말자. 그건 신입사원에게 "언제 사장 되니?"라고 묻는 것과 비슷하다.) 인문학 박사 학위가 있어도 절대로 교수가 될 수 없을 수도 있다. 오히려 교수가 될 수 없을 가능성이 더 크다. 이것은 무슨 말이냐면, 당신이 인문대 대학원에 진학하는 순간, 당신은 평생 불안한 경제활동을 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학령인구는 줄고 있고, 대학에서 인문학의 입지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내가 내 전공에서 날고 기는 천재여도 그 전공이 개설된 학교가 없으면 나는 교수가 될 수 없거나, 울며 겨자먹기로 내 전공이 아니지만 대충 비슷하게 퉁쳐지는 과목들을 가르쳐야 하게 될 수도 있다. 그나마도 안정된 월급이 나오는 자리를 얻지 못한다면 시간강사나 사교육 등으로 생계를 유지해야 한다(이렇게 먹고 사는 사람들이 교수가 된 사람들보다 훨씬 많다).
더 나쁜 소식은, 당신이 교수가 될 수 있을지 없을지는 정말로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보통 학계에서 교수가 되는 일은 '주차'에 비유된다. 자리가 비는 순간 그 앞에 서 있는 차가 주차 자리를 차지하듯이, 교수로 취직하는 일도 누군가 한 명이 비켜주어야만 하는 일이고, 비켜주었을 때 내가 그 자리에 딱 맞는 전공과 경력과 실적과 나이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 교수를 뽑을 때에는 학내 전임교원 중 자교 출신을 몇 퍼센트 이하로 유지해야 한다거나 하는 조건들이 붙기도 한다. 10년만에 자리가 났는데 그런 조건 때문에 지원조차 못 할 수 있다는 것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만 한다. 이쯤되면 정말로 교수직은 팔자소관이다.
그래도 일단 열심히 하면 교수 될 수 있지 않을까요? 나도 사실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한다. 왜냐하면 나도 인문학 전공 대학원생으로서 안정된 직장을 갖고 싶고, 교수가 되고 싶기 때문에,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희망고문을 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래도 열심히 하면 어떻게든 될 것이라고. 그리고 "철학 공부를 도저히 그만두지 못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런 불안감을 견디면서도 그래도 이 공부가 좋고, 더 나아가서 이것밖에는 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아니면 먹고 살 길이 이미 마련되어 있거나.)
7. 대학원생의 장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문학 대학원생의 장점이 있다면, 출퇴근이 없다는 것이다. 나는 정말로 이게 인문대 대학원생의 최고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보통 이공계열 대학원은 '랩실'이나 '연구실' 단위로 프로젝트가 돌아가지만, 인문학 대학원은 철저하게 개인이 알아서 연구를 한다. 일단 인문학 대학원에는 팀 단위로 해야 하는 프로젝트 같은 것이 거의 주어지지 않는다... 인문학 대학원에 들어갔다면 당신은 이제 당신의 공부를 알아서 챙겨야 하는 몸이 된 것이다-즉, 인문대 대학원생은 일종의 프리랜서이다. 독립적인 성향의 사람이라면 이런 분위기가 매우 잘 맞을 것이다. 내가 나의 공부 흐름을 알아서 짜고, 내가 나의 마감을 정하는 것을 좋아하고, 출퇴근을 싫어하며, 일이 없는데 쓸데없이 야근을 해야 한다거나 하는 경우를 싫어한다면 인문학 대학원의 생활방식이 잘 맞을 것이다.
또 한 가지 장점은....음......
인문학 대학원의 장점은 사실 보편적인 것이라기보다는, 개개인의 성향에 맞느냐 맞지 않느냐의 문제이다. 앞서 이야기한 여러 요건들을 살펴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원에 진학하겠다는 결심을 한다면, 정말로 "철학 연구를 도저히 그만둘 수 없는" 사람일 수도 있다. 나의 개인적인 경우를 이야기하자면, 나는 학부 학점은 3점을 겨우 넘길 정도였고 학부 수업이 재미있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대학원에 와서는 모든 세미나가 너무 재미있었고 공부가 즐겁다고 느낀다. 나와 같이 독립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고 하고 싶은 말이 있는 사람이라면 인문대 대학원이라는 선택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단지 '더 깊은 공부를 하고 싶다'라는 애매한 동기, 그리고 대충 일단 들어가면 학식이 높은 교수님들이 나를 잘 이끌어주리라는 모호한 희망만으로 인문대 대학원을 선택한다면, 당신의 계획은 이루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인문학 대학원은 고대 그리스의 학문의 전당처럼 고매한 통찰을 나누는 곳이 아니라, '프로 연구자'를 길러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점을 꼭 유념하기 바란다.
* 첨언: 네이버 블로그에서 인문학 대학원생을 위한 더 좋은 글을 찾았다. 나의 글로 충분하지 않은 부분은 아래의 링크에서 더 자세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인문학 대학원 석사 과정을 마치며-입학 전과 입학 후 나름의 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