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학기에 한 학생이 학기말에 남긴 질문이 떠올랐다. 그 학생은 한 학기 내내 (비대면 수업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적극적인 질문과 고민들을 남겨주었는데, 학기말에 마지막으로 남겼던 질문이 바로 이것이었다. "그래서 예술이 중요하긴 한 건가요?"
지난 한 학기 동안 나는 예술이 무엇이고 예술에 대해서 철학적으로 어떻게 생각할 수 있는지, 어줍짢은 설명력을 동원해서 수업을 진행했다. 교양 과목임을 고려하면 수업을 상당히 어렵게 느낀 학생들도 있었을 것이다. 아마 그 학생도, 그 어렵고 지난한 과정을 겪어야 할 정도로 예술이 중요한가에 대해 궁금했던 것 같다. 그 질문은 나에게 굉장히 중요한 질문이었고, 지난 한 학기를 마무리하기에 매우 좋은 질문이었다.
강의자료를 새롭게 꾸리다가 그 학생의 질문과, 내가 열심히 생각해서 남긴 답변이 아까워 찾아내서 남겨둔다.
Q. "우리가 아주 복잡하고 추상적인 예술 이론들을 많이 배웠는데..그래서 예술이 정말 우리 삶에 중요할까요?"
A. "예술이 정말 중요할까?" 이 질문은 오랫동안 예술철학을 공부해 온 사람으로서 저를 항상 괴롭히는 질문입니다. 저는 예술철학 연구와 강의를 직업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예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요.
그런데 말씀하셨듯이, 사실 예술이 밥을 먹여 주지는 않습니다.^^ 예술을 만들거나 많이 감상한다고 해서 더 성공적인 삶을 사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대부분의 예술가들의 삶은 괴롭고 고되지요. 하지만 제가 생각하기에 예술의 큰 의미 중 하나는, 우리가 지금 사는 삶보다 조금은 더 나은 삶을 상상해볼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입니다.
만일 세상이 이렇게 더 아름다웠다면? 만일 내가 세상을 이런 방식으로 바라본다면? 만일 이러저러한 사람들이 정말로 존재하고 그런 사건이 일어난다면? 많은 예술작품이 감상자에게 이런 '만일' 훈련을 하게 해 줍니다. 이 훈련을 통해서 우리는 현재 내가 사는 삶보다 조금 더 나은 형태의 삶을 그려 볼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런 예술의 정의나, 철학적 입장이나, 이런 것들을 생각하는 게 반드시 필요할까? 정말로 중요할까? 예술에 대해서 철학적으로 생각하는 것 자체는 사실 삶을 살아가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물론 알면 좋지만요. 제가 이 수업을 통해서 여러분에게 알려드리고 싶었던 것은 '예술철학'의 내용 자체도 있지만, 그보다는 어떤 문제나 대상에 대해서 '철학적으로' 사고하는 방법이었습니다. 그리고 철학적 사고를 제대로 하려면 기존의 학자들이 어떻게 말하고 생각했는지에 대한 역사를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수업이 역사부터 시작해서 철학과 가치의 문제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철학적 사고를 하면 더 풍족한 삶을 살 수 있을까요? 그것도 반드시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철학적 사고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시민'으로서 반드시 갖추어야 하는 소양이라고 믿습니다. 어떤 정보를 들었을 때 그것을 잘 쪼개어서, 즉 분석해서, 명확하게 하여 소화하는 것, 그리고 자신의 관점으로 그러한 정보를 연결하고 비판하는 것, 그리고 내가 당연하게 생각해 왔던 것들을 한 발짝 떨어져서 비판적으로 검토해보는 것, 이런 능력들이 바로 철학적 사고의 핵심에 있습니다. 어떤 전공을 하건 철학적으로 사고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소양입니다. 비대면으로 수업이 진행되어 발표와 토론 등을 많이 하지 못했지만, 약간의 '맛'만은 보여드렸으리라 믿습니다.^^ 애초에 우리가 배운 것을 다 돌이켜 보고 "그게 왜 중요할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 자체가 철학적 활동이니까요.
그리고, 이렇게 큰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예술작품은 우리에게 즐거움을 줍니다. 저는 현실에서 힘든 일이 있을 때 문학작품의 세계로 도피합니다. 영화를 보거나 드라마를 보거나 하는 것도 마찬가지이죠. 우리가 실제 삶을 조금 더 잘 버티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힘을 주고, 더 나은 삶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 예술작품의 좋은 점이 아닐까요?^^ 예술 아닌 것들도 이런 일을 할 수 있겠지만, 저는 예술이 이런 일을 다른 대상들보다 조금 더 잘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