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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의 세계로 도피하기

연구자가 사랑하는 세계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라는 소설이 있다. <스토너>는 대학에서 고전문학을 전공하고 가르치게 된 남성 연구자의 삶에 관한 픽션인데, 내용은 잘 기억이 안 난다. 시종일관 되게 우울하고... 주인공이 바람을 피고.. 뭐 대충 그런 내용이었던 것 같은데, 큰 줄거리에 크게 영향이 없는 부분만이 인상에 깊게 남아 있다. 그 부분은 등장인물 중 누군가의 대학에 관한 말이다.


대학은 보호시설이야. 아니, 요즘은 그걸 뭐라고 하더라? 요양소, 환자, 노인, 불평분자. 그 밖의 무능력자들을 위한 곳. 우리 셋을 보게. 우리가 바로 대학이야. (...) 그러니까 신의 섭리인지 사회인지 운명인지, 하여튼 그것이 우리를 위해 이 누옥을 지어준 거야. 우리가 폭풍을 피할 수 있게. 대학은 우리를 위해 존재하는 걸세. 세상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학생들이나 이타적인 지식추구나 그 밖에 사람들이 말하는 이런저런 이유를 위해서가 아니야. 


<스토너>의 이 부분을 읽으면서 솔직히 찔리는 부분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오랫동안, 내가 대학원에 진학하고 연구를 계속하는 일이 일종의 도피라고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여기서 '도피'는 단순히  '돈 버는 일'이나 '사회생활'로의 도피라기보다는, 그것보다는 좀 더 넓은 개념으로, 말 그대로 이론 밖의 세계로부터 이론의 세계로의 도피이다. 이론의 세계는 매우 질서정연하고, 이론 속의 화자들은 상당히 합리적이며 논리적이라고 느껴졌다. 어렸을 때 나는 하기 싫거나 피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차라리 그냥 책 속의 글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런 생각이 결국 이론의 세계로 도피하고 싶다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 <스토너>의 말을 빌리자면 이론의 '요양소'에서 평생을 보내고 싶은 것이다. 


내가 연구를 하고 싶었던 동기가 사실은 결국 도망이었던가.. 사실 많은 사람들이 대학원 이후의 연구자들이 이론의 세계로 '도피했다'고 생각하기도 하는 것 같다. 심지어 학계 바깥의 사람뿐만 아니라, 연구자들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최근 서강대 대나무숲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라온 익명의 글은 대학과 학계, 그리고 연구 전반에 대한 그런 회의적인 시각을 보여준다(비록 많은 지탄을 받기는 했지만).




만일 이 글을 대학교 글쓰기 과제로 제출했다면 이 학생은 적어도 글쓰기 과제에서는 C나 D쯤을 받았을 것이다. (그 이유는 이 글을 참조하라: "열심히 썼는데 니 점수가 왜 그럴까?") 하지만 나는 이 글을 쓴 사람의 소심함이나 글쓰기 실력을 지적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대학이 "늙은 아기새들의 둥지"라는 말만큼은, 내심, '절대 아니다'라고 강경하게 반대하기 어려웠다. 


어느 순간, 연구에 대한 애정은 좀 철없고 부끄러운 것이라는 생각이 생겼던 것 같다. 왜냐하면 그 애정은 '400만원'을 갖다주고 '수십억 집'을 갖다주지도 않는 것이며, 특히 순수학문의 경우 연구활동은 '늙은 아기새'의 철모르는 취미활동처럼 여겨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계 안팎에서 나는 이 학문을 좋아하고 앞으로 계속 공부하고 싶다고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일이 좀 부끄럽게 여겨졌던 것이 사실이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결국 내가 이론의 세계로 도피하고 싶은 마음을 고백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연구하는 일이 이론의 세계로 도피하는 일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 것은 얼마 전 친구에게 선물받은 책을 읽고 나서부터이다. 천문학자 심채경의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라는 책이었는데, 친구는 이 책을 읽고 '네가 생각났다'고 말해주었다. 이런 심리 테스트 결과(당신은 000 타입!) 같은 메시지를 받고도 책을 읽지 않을 수는 없지(부끄럽지만 밝히는 것인데 나는 심리테스트나 사주 풀이 같은.. 나에 대한 '캐해석'을 너무나 좋아한다.) 그리고 종이책을 선물받은 것 자체가 너무나 오랜만이라 반가운 마음도 컸다. 


사실 이 책은 완전히 처음 보는 책은 아니었다. 출간 당시에 프롤로그의 한 부분을 SNS에서 본 적이 있다. 다음과 같은 부분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좋았다. 남들이 보기엔 저게 대체 뭘까 싶은 것에 즐겁게 몰두하는 사람들. 남에게 해를 끼치거나 정치적 싸움을 만들어내지도 않을, 대단한 명예나 부가 따라오는 것도 아니요, 텔레비전이나 휴대전화처럼 보편적인 삶의 방식을 바꿔놓을 영향력을 지닌 것도 아닌 그런 일에 열정을 바치는 사람들. 신호가 도달하는 데만 수백 년 걸릴 곳에 하염없이 전파를 흘려보내며 온 우주에 과연 '우리뿐인가'를 깊이 생각하는 무해한 사람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동경한다. 그리고 그들이 동경하는 하늘을, 자연을, 우주를 함께 동경한다. (p.13)


이 부분을 SNS에서 처음 보았을 때, 아 역시 자연과학자들, 이라고 약간 부러워했던 기억이 난다. 나의 편견일지 모르겠지만 자연과학자들은 많은 경우 자신의 연구 대상에 대한 '동경'을 품고 있는 것 같다. 무언가를 '알아낼' 수 있다는 희망이나 알아내고 싶은 동경을 가지고 연구를 할 수 있다는 점은 참 좋은 것 같다. 그러한 점에서 자연과학자들은 철학자들과는 조금 다른 것 같다. 개인적으로 나는 자신의 연구 대상을 '동경'하는 철학자는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철학은 궁극적인 답이나 진리를 '알아내는' 과정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물론 철학의 어원은 지혜에 대한 사랑 어쩌구이기는 하지만.. 여튼 내 생각은 그렇다. 하지만 '남들이 보기엔 저게 대체 뭘까'라는 것에 (즐겁게 혹은 즐겁지 않게) 몰두하는 사람들이 있고, 어느 학문이건 그런 사람들이 결국 학계에 남는다는 사실은 분명한 것 같다.


자연과학이건 철학이건, 하여튼 심채경의 책에서 내가 감동한 부분은, 저자가 연구에 대한 애정을 아주 산뜻하고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이 책 전체가 그런 애정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봐도 되겠다. 물론 이 책 속에서 저자는 자신이 칼 세이건처럼 우주가 너무 좋아 견디지 못할 정도는 아니라고 말하고 있고, 이 책이 우주에 대한 사랑을 영업하려는 책도 아니기는 하다. 그러나 자신이 천문학을 사랑하고 천문학 연구를 좋아하는 사람임을 애써 숨기지도 않는다. 


 그러나 연구실에 홀로 남아 연구에 집중하는 밤은 정말이지 근사하다. 누군가로부터 전화도 걸려오지 않고, 누군가 찾아오지도 않으며, 아이를 먹이고 씻기고 입히고 재우는 일을 잊어도 되는 밤. 한 시간이든 세 시간이든 한 가지 주제에 오롯이 집중해 화장실 가는 것도 잊는 그런 밤. 어떤 사람의 직업은 정해진 '시간'을 성실히 채우는 일이고, 또 다른 사람의 직업은 어떤 '분량'을 정해진 만큼 혹은 그에 넘치게 해내는 것이라면, 나의 직업은 어떤 주제에 골몰하는 일이다. 하나를 들여다봐도 이건 왜 그런지, 저건 왜 그런지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러면 하나씩 일일이 검색해 보고, 찾아서 읽어본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자료를 분석해보고, 그래프도 여러 가지 형태로 그려본다. 그러다보니 한 단계 전진하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아주 즐거운 시간이다. 그리고 그 즐거운 지루함이 자연의 한 조각을 발견하는 것으로 이어진다면 금상첨화다. (pp.78-79)


심채경은 책 속에서 자신이 아이가 있는 기혼 여성이고 비정규직 연구자임을 밝히고, 그것이 주는 어려움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지만, 그와 동시에 자신이 연구를 얼마나 사랑하는가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나는 그 사실이 너무나 반가웠다. 비록 저자가 나와 전혀 다른 전공을 하는 사람이기는 하지만, 연구하는 일이 좋다는 사실을 이렇게 기름기 없이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반갑고 좋았다. 무엇보다도 저자는 자신의 연구가 이 세상에 얼마나 쓸모있는지를 증명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연구하는 일이 '도피'가 아닌 이유는 뭘까? 아마 저자 자신이 연구가 즐겁다는 사실을 너무나 경쾌하게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물론 저자는 연구에 대한 애정을 숨김없이 드러내지만, 한편으로 연구 이외의 생활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천문학을 비롯해서, 학문의 즐거움은 삶을 풍성하게 해 주지만, 그것만이 삶을 구성할 수는 없다. 연구는 즐겁지만, 연구에만 온 생애를 헌신하는 사람이 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쓰다 보니 <천문학자는...>에 대한 독서감상문이 되어 버렸군.


 이론의 세계로 도피하지 않는 방법은, 단순히 대학원을 그만둔다거나 공부를 해서 돈을 벌거나 학생을 가르치는 일을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연구가 나의 일임을 솔직하게 받아들이고, 그 일에서 좋아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경쾌하게 밝히는 것, 그리고 이론의 세계 바깥에도 중요한 생활이 있음을 잊지 않는 것, 이론 밖의 세계를 잊지 않으면서도 '우리에게는 이론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그리고 그렇게 말할 수 있도록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이론의 세계에 머물면서도 그 세계로 '도피'하지 않는 법일 것이다. 나의 연구 능력으로 사회에 기여까지는 못 하겠지만, 적어도 연구에 대한 사랑을 숨기지 않는 경쾌한 연구자 정도는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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