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에 대한 철학적 소고
나는 사실 그 책을 읽어 본 적이 없다. <철학은 어떻게 우리 삶의 무기가 되는가>라는 책 말이다. 엄청 많이 팔렸다는 사실은 대충 들어 알고 있다. 그리고 너무나 유혹적인 제목이다. 요즘 우리의 삶에는 정말 무기가 필요하지 않은가. 보통은 그 무기는 돈이나 집안이지만, 철학이 무기가 될 수 있다고? 그런 개이득인 방법이 있었단 말인가? 철학을 하는 데는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시간은 좀 들겠지만 특별히 자격증이 필요하거나 시험을 봐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 철학이 삶의 무기가 된다면 진짜 좋을 것 같다.
그런데 한편으로 이런생각도 해보자. 철학이 정말로 삶의 무기가 된다면, 철학과 졸업생들은 모두 아주 윤택한 삶을 살고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 전에, 대학마다 철학과가 무수히 개설되고, 철학과의 입학 경쟁률이 폭발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게 아닌 걸 보면,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는 것 같다. 철학은 삶의 무기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철학이란 무엇인가? 내가 강의를 할 때마다 학생들의 잠을 깨울 용도로 푸는 썰이 하나 있다. 취직이 한창 안 돼서 심난하던 차에 동네 점집에 가서 사주를 본 일이 있다. 사주 봐주시는 분이 연배가 좀 있으신 아저씨였는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내 전공에 대해 물었다. 내 전공은 미학인데, 어디 가서 미학 전공했다고 하면 복잡해지는 경우가 더 많아서(미술 실기전공인 줄 안다거나.. 갑자기 진중권을 욕하기 시작한다거나...), 귀찮아서 그냥 철학입니다, 라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그 아저씨가 너무나 반가운 투로, "아니, 이렇게 어린 아가씨가 철학을 한다구? 내 후배네. 복채 깎아 줄께."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런 곳을 '철학관'이라고 부르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여튼 나는 그 점집에는 두 번 다시 가지 않았다.
그 일이 십 년 전쯤에 있었던 일임을 밝혀 둔다. 요즘 시대에 철학을 이름 지어 주는 학문으로 착각하는 사람은 설마 아직 없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학에 대해서는 여전히 오해가 많은 것 같다. 철학을 하면 무언가 현명해지고, 삶을 살면서 더 나은 선택을 하게 되고, 삶이 깊이있어지고, 뭔가... 힐링되고... 그런 것....
대체 철학이란 무엇인가? 철학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정말로 수많은 답변이 있는데, 내가 좋아하는 답변은 다음의 두 가지이다. 첫 번째: <경험적 증거를 모은다고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궁리하는 것.> 이 답변은 나이젤 워버튼의 <철학 한입>에서 가져온 것이다. 이 답변은, 철학이 백지상태에서 대충 사유를 쌓아올려가는 그런 학문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철학자들은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과학자들과 비슷하다. 다만 철학자들이 해결하려고 하는 문제는, 경험적 증거를 모은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닌 종류의 문제들이다. 예를 들어 신의 존재라든지, 앎의 정의라든지, 아름다움에 대한 판단의 기준이라든지, 그런 것들 말이다. 우리가 아무리 관찰하고 과학적으로 측정한다 하더라도 해결될 수 없는 문제들이 이 세상에는 분명히 있고, 철학자들은 그런 문제들에 관심을 가진다.
철학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내가 좋아하는 두 번째 답변은 이것이다. <맹목적 믿음에 대해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것.> 얼마 전 출간된 오종환 선생님의 <교양인을 위한 분석미학의 이해>에서 발견한 설명이다. '맹목적 믿음'이란 말 그대로 목적도 이유도 없는 믿음이다. 예를 들어서 '행복한 삶은 좋은 것이다'와 같은 믿음은, 아무런 이유 없이 우리가 가지는 믿음이다. 왜 행복한 삶이 좋으냐고 물었을 때 '그냥'이라고밖에 대답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냥 믿고 있는 믿음이 바로 맹목적 믿음이다. 맹목적 믿음이라고 하면 되게 부정적인 것처럼 들리지만, 사실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은 맹목적 믿음에 의존하고 있다. '착하게 살아야 한다' 라거나, '남을 해쳐서는 안 된다'라거나, '거짓말은 나쁘다' 같은 믿음들 말이다.
우리는 보통 우리가 가지는 맹목적 믿음을 잘 의식하지 못한다. 그런 맹목적 믿음들은 우리의 의식 깊이 뿌리박혀 있기 때문이다. 철학자들은 그런, 우리의 의식 속 깊은 차원의 맹목적 믿음들을 수면 위로 건져내는 역할을 한다. 자, 이게 니가 생각하고 있었던 거야. 맞지? 근데 너 이거 이유 없이 믿고 있었지? 이렇게 물어봐 주는 것이 철학자들의 일이다. 맹목적 믿음을 그냥 믿지 않고, 그런 믿음을 우리가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주목하고 그 믿음이 정말로 아무 이유 없이 믿을 만한 것인지 검토하는 일, 이것이 바로 비판적 사고이다. 이런 의미에서 철학자들은 '한 발 물러나서 보는', 메타적 사고를 한다. (맹목적 믿음과 비판적 사고에 대한 설명은 오종환 선생님의 책에서 다시 가져온 것이다. 꼭 원문을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피타고라스는 올림포스 경기에 나가는 사람들의 종류를 구분함으로써, 세 가지 종류의 삶을 구분했다. 그에 따르면 가장 최하의 부류는 그곳에서 장사를 해서 이익을 취하려는 사람들이고, 그보다 나은 부류는 명예를 얻기 위해 경기에 출전하여 경쟁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가장 훌륭한 부류는 '구경하러 가는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이 '구경하러 가는 사람들'은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한 발 물러나서 관찰하고, 반성하고, 분석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바로 철학자이다. 그리스어의 '이론(theoria)'이라는 단어는 '구경한다'라는 의미도 가진다고 한다. 비판적 사고, 메타적 사고, 구경하기, 이것들은 모두 연관되어 있는 셈이다. (새뮤얼 이녹 스텀프, 제임스 피저, <소크라테스에서 포스트모더니즘까지>, 34-35.)
철학을 이렇게 정의했을 때, 왜 철학이 삶의 무기와 아무 상관이 없는지 알 수 있다. 맹목적 믿음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고 해서 살림살이가 나아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일 가능성이 크다. 구경만 하는 것은 아무런 실제적 이득을 가져다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기나긴 철학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맹목적 믿음을 가장 잘 비판했던 소크라테스는 사형으로 생을 마감했다(테스형!ㅠㅠ). 이외에도 대부분의 철학자들은 불우하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판적 사유를 멈출 수 없었던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철학을 해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 당연히 모든 사람이 철학자라는 직업을 가질 필요는 없다(놀랍게도 현대에도 '철학자'라는 직업이 있답니다!). 그렇지만 나는 모든 사람이 철학적 사유를 할 줄 알게 되면 이 세상이 조금 더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세상의 많은 폭력과 차별들은 맹목적 믿음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나는 절대 나쁜 사람이 아니다'라고 되뇌이는 대신, 내가 어떤 맹목적 믿음을 가지고 있는지 되돌이켜 본다면 분명히 세상은 더 나은 곳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세상에서는 철학이 삶의 무기라고, 혹은 삶의 무기가 되어야만 철학이 쓸모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 날이 올 때까지, 세상의 모든 불우한 철학과(그리고 소수의 미학과) 학생과 연구자들이여, 곳곳에서 비판적 사고하기를 가르치며 살아남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