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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차 Nov 03. 2019

직장 10년 차에 자아가 생겼다

빈 껍데기의 불안감





직장 10년 차에 자아가 생겼다.

달갑지 않았다.

평온한 세상에 대 혼란이 찾아왔다.



나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평균 수명이 길지 않은 전문직으로써 10년을 살아내고 있는 현실적인 직장인이다.

근근이 10년을 버텨온 것에 별나게 생각할 것도 없었다.

책상 서랍 가장 위칸에 있는 사표를 무기 삼아 불합리한 인류 노동에 대해 저항을 시도하려 했지만 카드값 청구서와 대출이라는 지독한 현실 앞에 나의 사표는 한 달, 두 달 그렇게 10년을 봉인해 왔다.

나의 근속은 그렇게 지켜졌다.


나는 실속형 부류의 90년생과 "손에 손잡고~" 88년도 서울 올림픽을 또렷하게 기억하는 70년생 사이에 끼인

'애매한 80년대생'이다. 

이것도 아마 나의 성실한 직장생활에 영향을 줬을 것이다. 하기 싫은 일은 곧 죽어도 티를 내고야 마는 후배님들과 공동목표를 먼저 생각하는 선배님들의 눈치를 보는 딱 1학년 3학년 사이에 낀 2학년. 

그랬던 적 있지 않은가.

바로 밑 학년은 머리에 큐빅 박힌 핀 하나 꽂은 것까지 지적해도 한 다리 건너뛴 1학년은 무한한 애정으로 대하는 아이러니한 전통.

직장도 마찬가지다. '90년생은 원래 그러니까..'라는 이상한 논리로 현실을 인정해 버리고 본인들을 적당히 이해해 줄 것 같은 80년생에게 여전히 만년 대리를 요구한다.

그들 덕분에 성실하게 직장생활에 임할 수 있었고 그렇게 나는 점차 진정한 직장인이 되어갔다.


적당히 괜찮았다.

그리고 진짜 괜찮은 줄 알았다.


예상 징후는 불안감이었다.

10년 동안 주기적으로 불안감이 찾아왔다. 짧게는 1시간 길게는 몇 달 동안을 그렇게 자주 찾아왔다.

종종 나 자신이 내용물이 다 소진된 껍데기처럼 느껴졌고 이런 타이밍에 언짢은 소리를 듣게 될 때면 극심한 우울감이 찾아왔다. 


'난 일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닌 게 돼버린 것 같아.  

 단물 다 빨린 껍데기가 된 것 같아

 일이 재밌는 것도 아닌데 어떡하지? 이러다가 밀려나서 거리로 나 앉게 되면 어떡하지?'


이 불안감은 직장인의 숙명이라 생각했다.

 주말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직장인의 패턴이 무료해졌고 시간은 점점 더 의미 없이 빨리만 흘렀다.

'오늘도 수고했어'라는 말이 공허한 마음에 떠다니다가 닿지 못하고 빠져나갔다.

그렇다고 내가 일해온 날들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 나의 시간들은 고됬지만 값졌다.

다만 갈피를 못 잡았다.

바쁘기만 한 일상의 굴레를 벗어나고 싶었고 공허한 마음을 채우고 싶었다.


10년 동안 물음표를 던졌고

10년째 되던 해에 깨달았다.

공허함이 어디서 왔는지.

내 결핍이 무엇이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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