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여구 없는 '직장인'
소모임 뒤풀이 자리였다.
사람 많은 자리는 좋아하지 않지만 계속 볼 일이 생길 것 같아 안면 정도는 트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오늘 처음 보는 분들도 계시죠? 자기소개 돌아가면서 할까요?'
당연한 식순으로 자기소개 그라운드를 시작한다.
'네. 저는 김민준이고요. 나이는 서른이고 분당 쪽에서 직장 다녀요'
'저는 정유미입니다. 나이는 스물아홉이고 퇴사하고 쉬고 있어요'
내 차례.
'김유진이고요, 서른넷입니다. 직장 다녀요'
참 편리하고 재미있는 자기소개이다.
첫 소개부터 액면가와 실제 나이의 차이를 가늠할 수 있게 나이를 읊어주고 취업박람회 마냥 직장인과 아닌 이들을 그룹핑해주니 말이다.
'나'를 최소한으로 표현하면서 같은 직장인이라는 소속감을 주는 적절한 자기소개.
이런 식의 편리한 직장인의 인사법으로 나 자신을 숨기면서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해왔다.
'직장인' 이란 직군은 내가 불리할 때 상대방의 머릿속에 나를 최소한으로 각인시키는데 유용했다.
많은 이들이 어떤 이유에서든지 동일한 방법으로 저들의 모습을 숨기곤 했다.
직장인의 인사법은 그렇게 습관이 되었다.
한 해 두 해가 갔다.
'김유진이고요, 서른넷입니다. 직장 다녀요'
씁쓸해졌다.
말끝을 흐리게 되고 괜히 머쓱하다.
말속에 괜스레 애잔함이 녹아든다.
상대방의 눈빛에도 애잔함과 격려가 느껴진다.
왜 이렇게 슬퍼지는 걸까.
나이가 들어 조연으로 밀려난 한 때의 주인공과 같았다.
자기소개에도 더 이상 내가 중심이 되지 못했다.
나는 그렇게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수 만 가지 단어를 놔두고 스스로 무책 무취를 선택하고 있었다.
직장인의 방황을 겪으면서 직장인이라는 타이틀은 자기소개의 편리함과 소속감이 주는 이점보다 더 큰 단점이 있다는 사실을 자각했고 더 이상 '나'를 대표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요. 나는 당신들과 같은 직장인이에요.
나에게서 딱히 특이점을 찾을 수 없죠. 나는 수많은 직장인들 중 하나일 뿐이에요.
나 하나쯤 없어도 아무런 상관이 없는걸요'
멍청하게도 나는 그렇게 나 스스로가 매력이 없다는 점을 그렇게도 어필하고 다녔구나.
내가 시들해진 것은 단순히 나이 듦 때문이 아니었구나.
나는 나를 소개한 적이 없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