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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녕 Sep 23. 2020

엄마가 그리우면 카드내역서를 읽어야겠다.

아 엄마가 진짜 살아있었구나, 느낄수가 있거든

  오늘은 엄마 카드 내역이 날아왔다. 펼쳐보기 두려웠지만 펼쳐보았다.     


  2020.6.18. 10:56:04 (주)스타벅스 4100원. 아, 그 때는 엄마가 살아있었구나. 엄마가 걸어서 스타벅스에 가서 카페라떼를 마실 수 있을 때가 있었구나. 고작 몇 개의 숫자일 뿐인데, 엄마가 살아있었다는 사실이 너무나 생생하게 느껴졌다. 카드 내역서가 말해주는 엄마의 동선이 눈앞에 선해 고작 숫자뿐인 종이 쪼가리가 너무 따뜻하게 느껴졌다. 


  2020.6.23. 14:03:32 강단형 스마트당행 50만원. 엄마는 용돈 카드가 있었다. 50만원씩 용돈카드에 현금을 계좌이체해서 사용했다. 용돈카드가 있었다는 것은 알았지만 한 달에 얼마를 쓰는지는 몰랐는데 이번에 알았다. 저 날은 엄마가 응급실에 가기 위해 서울에 올라오는 날이었다. 오후 2시가 조금 넘어 서울에 도착했으니 엄마는 서울로 올라오는 버스 안에서 용돈카드에 돈을 입금 한 것이다. 무슨 마음으로 이 돈을 입금했을까. 나중에 엄마가 돌아가시고 가방 정리를 하면서 안 것인데, 엄마는 서울로 올라올 때 거래하고 있는 통장을 모두 챙겨왔었다. 매달 쓰는 용돈카드에 돈을 입금하고, 가진 통장을 모두 챙겨 서울로 올라올 때, 엄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부디 두렵다는 생각만은 안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엄마가 힘들어하는 것을 상상하는 것은 너무 마음이 아프다.     


  2020.6.23. 15:40:20 키오헤어남부 20000원. 엄마가 숏컷을 한 미용실이다. 계산을 하며 왜 이렇게 싸요? 했던 게 기억이 난다. 스타일을 새로 만든 것이나 다름없는데 2만원밖에 안하냐며 좋아했다. 내눈에는 영 별로였는데...


  2020.6.23. 16:09:01 ㈜티머니개인택시 11000원. 택시를 타고 응급실로 갔다. 가는 길에 엄마는 셀카를 찍어 오래된 친구들 단톡방에 보냈다.


  2020.6.24. 20:02:48 CU삼성암센터 5600원. 엄마는 응급실에 누워있고 나는 저녁을 못 먹은 상태였다. 엄마가 잠이 들락 말락 하길래 엄마, 나 잠깐 밥 먹고 올게. 하고 편의점에 갔다. 비가 왔는데 우산을 안들고 나가서 흩뿌리는 비를 맞았던 기억이 난다. 편의점에 가서 핫바 하나와 구운계란을 샀다. 마실 것도 살까 하다가 그냥 안샀다. 시간이 늦어 로비는 불이 다 꺼져있었고 응급실에서 음식을 먹기에는 좀 그래서 그냥 로비에 앉아서 먹고 가야지 싶었다. 친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하고 받기만 하면 바로 울 준비가 되어 있었는데 받지 않았다. 무지막지하게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그냥 아무한테도 전화 하지 말아야지’, 하고 핫바와 계란을 빨리 먹었다. 이후에 친구가 말하길 이 날 내 전화를 못 받은 게 아직도 너무 미안하단다. 요즘은 밤마다 오늘은 울면서 전화 안올까 싶어 신호음이 한번 울리기도 전에 내 전화를 받는다. 소윤아 고마워.


  2020.6.27. 18:32:27 CU삼성암센터 7000원. 약 5일만에 금식이 풀렸는데 엄마가 음식을 삼키기 힘들어해서 뉴케어와 아임리얼 토마토쥬스를 산 내역이다. 행복방 단톡방을 보고 급하게 편의점으로 뛰쳐 내려가는 나에게 엄마가 ‘엄마 카드 들고 가’하며 초록색 카드를 쥐어줬었는데, 그 때의 내역이었다. 지나칠 만큼 생생해서 너무나 괴로운 기억들이다. 


  2020.6.30. 05:49:46 CU삼성암센터 2400원. 동이 틀랑 말랑 하는 새벽에 지하 편의점에 가서 커피를 샀다. 빈속에 커피를 먹으면 정신이 말똥말똥해져서 오늘 하루도 이거 먹고 버텨보자 하며 커피를 산 기억이 난다.

   

  2020.6.30. 18:57:55 씨유미가마트 25,820원. 엄마가 중환자실에 들어가고 기저귀, 빨대 달린 개인용 컵, 물티슈, 노푸샴푸 등 중환자실 준비물을 산 내역이다. 이제 보니 병원에서 내가 쓴 금액 중 가장 큰 금액이다.    


  2020.7.16. 해지.    


  카드내역을 천천히 읽어보며 엄마가 어떤 마음으로 물건을 사고 어떤 걸음걸이로 거리를 다녔을지 상상해보았다. 6월 첫째 주에는 네이버페이에서 헤어에센스를 샀다. 내가 좋아하는 향기여서 이거 나도 줘. 했었는데 두 개를 산 걸 보니 하나는 날 주려고 그랬던 것 같다. 넷플릭스도 다달이 12000원씩 빠져나갔다. 50원, 20원씩 예금이자도 들어왔다. 서산에서 주유도 했다. 출판사 계약금도 찍혀있었다. 직장에서 의료보험금을 지원 해 준 내역도 있었다. 열심히 살아가던 엄마의 흔적을 좇아 앞으로 엄마가 그리우면 카드내역서를 읽어야겠다. 


그냥 숫자와 가게 이름일 뿐인데도, 보고 있으면 자꾸만 눈물이 난다. 숨쉬는게 괴롭게 느껴질만큼 엄마가 너무너무 보고싶다. 엄마, 보고싶어 죽겠는데 어쩌면 좋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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