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님 말고' 정신은 꼭 필요해
내가 20살 때 엄마가 연애특강을 해 준 적이 있다. 그 때는 사실 크게 와 닿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엄마가 일러준 대로 실천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블로그 링크를 걸어두었으니 보실 분은 들어가서 직접 보시라.
https://blog.naver.com/red7h2k/220542906429
간단히 요약하자면 맘에 들면 일단 직진하고, 상대 반응이 뜨뜻미지근하다면 그냥 ‘아님 말구.’ 하라는 거다. 여기서 ‘아님 말구’ 정신이 아주 중요한데, 바로 연애의 고수로 거듭나게 해주는 정신이란다. 만나고 헤어지는 것을 두려워 말고 사랑은 지나갔어도 뜨겁게 사랑했던 나를 기억하며 새롭게 다음 사랑을 맞이하라고 했다. 잘은 기억이 안나지만 그 때가 아마도 내가 어떤 남자애한테 차이고 난 뒤였을 것이다. 아, 정확히 말하면 차인건 아니고 ‘썸’타고 있을 때 그 애가 갑자기 잠수를 탔다. 그래서 엄마를 붙잡고 한참을 징징댔었는데 엄마가 이런 특강을 해주었다.
20살, 그 애를 시작으로 대학생활 내내 줄기차게 아주 열심히 연애를 해댔다. 나는 남자친구를 사귀면 항상 엄마에게 제일 먼저 데리고 갔기 때문에 엄마는 내 연애사를 시작부터 끝까지 훤히 꿰고 있었다. 소개팅을 하는 날이면 그 날 아침부터 ‘오늘 뭐 입지?’하면서 새로 만날 남자애가 어떤 앤지 읊어댔고 조금 맘에 들었다 치면 설레서 잠이 안온다고 엄마에게 밤새 종알댔다. 그러다 싸우거나 삐걱대면 엄마한테 전화해서 열불을 내기도 하고 ‘률이 니가 잘 못 했네.’ 같은 소리를 들으면 듣기 싫어서 전화를 끊었다. 헤어지고 나면 엄마한테 가서 하루 웬 종일 ‘엄마, 걔가 내 생각할까?’ ‘연락 해 볼까?’ ‘딴 여자가 생긴 걸까?’ 따위의 천하의 쓸모없는 질문을 해댔다. 그리고 이렇게 상처받은 나에게 적당하고 괜찮은 위로를 내놓으라고 엄마를 들들 볶았는데, 그 때 마다 엄마는 이 ‘아님 말고’ 정신으로 나를 위로해주었다.
앞선 글인 <엄마의 죽음이 나에게 하는 말>에서 내가 이런 것을 깨달았다고 적은 적이 있다. ‘간절한 바람이나 피나는 노력과는 별개로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있기에 하늘에 맡긴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는 것. 이 말은 연애에도 해당되는 말이었다. 이 깨달음을 ‘아님 말고’ 정신과 함께 버무려 놓으니 이제 나도 정말 연애 고수가 될 것 같았다. 내일의 내 기분조차 예측할 수 없는데, 타인의 마음이야말로 절대적으로 내 영역 밖이지 않은가? 그럼 나를 좋아하든 안 좋아하든, 직진하는 나한테 사랑에 빠지든, 그런 나를 소름끼치게 싫어하든 그것 또한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인 것이다. 아, 이제야 ‘아님 말고’ 정신이 제대로 내 가슴 속에 자리 잡은 것 같다.
얼마 전, ‘아님 말고’ 정신을 기가 막히게 발휘 할 일이 있었다. 예전에 잠깐 사귀었던(당연히 우리 엄마가 본 적도 있는 애다.) 남자애인데 우연히 만나보니 더 귀여워졌길래 다시 만나자고 했는데 싫단다. 자기는 그냥 친구로 지내고 싶단다. 흠, 하루 정도 약간 속상하긴 했는데 마음속으로 ‘아님 말구!’를 외쳤다. 그래, 어쩔 수 없지. 친구도 나쁘지 않아! 우리는 그렇게 친구가 되었다.^^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은 거절을 당하고 또 몇 번이나 ‘아님 말고!’를 외치게 될까? 앞으로 펼쳐질 나의 인생이 흥미진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