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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녕 Sep 14. 2020

팔자에 부모 복이 없네.

없긴, 엄마같은 엄마가 어디 또 있다고.

  홍률

  내 이름은 아빠가 지었다. 야매 치고는 한자도 명리학도 풍수지리도 꽤 많이 알아서 어찌 알고 주변 사람들이 묘 자리를 봐달라며 뭉칫돈을 들고 아빠에게 찾아오는 일도 많다. 그런 아빠이니, 내 이름을 짓기 위해 몇 달을 얼마나 머리를 싸맸을까. 


  내 이름은 여간해서는 한 번에 알아듣기 힘들다. 알아듣기만 힘든가 했더니 세기도 센 이름이란다. 학창시절 내내 한문 선생님들은 내 이름을 보고 법률 ‘률’자를 여자 이름에 쓴 것은 처음 본다는 말씀을 하셨다.

  법률 률. 한자는 이렇게 생겼다. 律. 이것은 두 사람 이상의 군중을 뜻하는 ‘亻(두사람 인변)’과 붓을 뜻하는 ‘聿(붓 율)’이 합쳐진 글자이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붓을 들며 살라는 큰 뜻을 담아 아빠가 몇 달을 고심해 내놓은 이름이다.


  내가 태어난 후, 이 이름을 들고 경상북도 군위군 산골짜기에 잘 아는 스님께 갔단다. 그리고는 내 사주팔자와 이름 간의 궁합이 어떻겠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스님은 아주 장수할 팔자에, 딸이지만 장군감이며, 내 사주팔자와도 딱 맞는 아주 좋은 이름이라고 했다. 1년 뒤, 성이가 태어났다. 아빠는 고심하고 고심해서 지은 홍성이라는 이름을 들고 스님께 한 번 더 갔다. 이번에는 성이 사주팔자와 이름 간의 궁합과 함께 누나 이름과의 궁합도 봤다고 한다. 스님은 아빠가 들고 온 이름을 칭찬하며 사주팔자와의 궁합도 좋고 형제간 우애도 좋을 것이라고 했단다. 그 때 아빠가 뒤늦게야 생각이 나서 질문을 덧붙였다고 했다. ‘스님, 제가 첫째 이름 지을 때 부모랑 궁합을 안 봤는데 늦었지만 혹시 이것도 지금 좀 봐주실 수 있습니까?’

  스님은 갸우뚱 하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다 좋은데, 부모 복이 없네.’


  엄마가 돌아가신 뒤 엄마 친구 분 중 사주팔자를 아주 좋아하시는 분이 내 생년월일시를 들고 사주를 봐오셨다. 그리고 내게 급히 전화가 오셨다. ‘률아, 이름을 바꿔야 된다는데?’ 이름이 너무 세다고 했단다. 이름 따라 팔자도 따라 가는 거라고.     


  참 이상한 것이 그 말을 듣고도 이름을 바꾸고 싶은 생각이 좁쌀 한 톨 만큼도 안드는거였다. 부모 복이 없어 6살에 부모님이 이혼하고, 사이비 생활 10년에, 25살에 2주 만에 엄마까지 잃은 기구절창하고도 박복한 팔자로 사는 이름이라는데도 말이다. 왜인가 생각을 해보니 이랬다. 

  아니, 내가 부모 복이 없긴 왜 없나? 평생을 함께 살아도 엄마랑 이렇게 가깝게 지내보지 못한 자식이 얼마나 많은데, 넘치다 못 해 차고 흐르는 사랑을 받고 자란 내가 왜 엄마 복이 없나? 엄마가 일찍 돌아가시긴 했지만 생각을 조금 바꾸니 영 박복한 것도 아닌 것 같았다.     


  그리고 까짓 거 팔자가 좀 세면 어떤가? 세면 센대로 역시 엄마 딸이라 팔자도 닮는구나 싶어서 한편으로 뿌듯하기까지 한걸. 팔자가 세고 환란풍파를 많이 겪어서 그런지 여간한 일에는 꿈쩍도 안하게 되었으니 좋은 점도 쏠쏠했다. 힘들다는 생각이 들라 치면 사이비에서 10년 버티다가 가출했을 때, 7살 때 위자료로 유학 간 엄마가 보고 싶어서 밤에 몰래 울었을 때 같은 때를 생각하면 지금 힘든 일은 다 애들 장난 같고 금방 훌훌 털어졌다. 학창시절에는 친구관계, 성적 이런 걸로 힘들어 하는 친구들이 귀여워 보이기까지 했다. 이제는 엄마까지 돌아가셨으니 앞으로 향후 20년은 웬만한 일에 눈도 깜빡 안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강력한 멘탈은 곧 나의 세디 센 팔자를 가져다 준 ‘홍률’이라는 이름에서 왔으니, 내가 어떻게 이름을 바꿀 수 있겠는가 말이다.


피천득의 <인연>이라는 책에서 이 문구를 참 좋아한다. 


나의 생활을 구성하는 모든 작고 아름다운 것들을 사랑한다. 여러 사람을 좋아하며 아무도 미워하지 아니하며 몇몇 사람을 끔찍이 사랑하며 살고 싶다. 그리고 나는 점잖게 늙어가고 싶다.


나는 홍률을 구성하는 모든 것들을 사랑한다. 그것이 비록 나를 지독하게 아프게 하는 것일지라도!

학생들도 내 이름이 예쁘다고 한다. 살면서 이름이 예쁘다는 말도 '홍률'이었기 때문에 들을 수 있는 말이었다. 나는 내 이름이 너무 좋다. 내 인생도, 내 팔자도. 내 생김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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