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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녕 Oct 23. 2020

'내가 이렇게 잘 살아도 되나' 싶을만큼

좋은 말씀 해주신 선영이 아줌마 감사합니다

  참 신기하기도 하다. 이제는 엄마를 생각했을 때 눈물부터 왈칵 나지 않을 때가 다 있다. 문득 엄마가 떠올랐을 때 ‘아, 우리 그랬었지.’ 하며 웃을 수도 있어 진 것이다. 이래서 그런 말이 있을까, 산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진다는 말이.


  며칠 전 엄마가 자주 가는 구제 옷 가게에 갔다. 엄마가 중환자실에 누워있을 때, 엄마에게 보여주려고 내가 동영상을 찍어 가기도 했던 곳이다. 엄마는 구제 옷 가게에서 옷 사는걸 엄청 좋아했다. 고속터미널역 7호선 건대입구 방향에 있는 가게인데, 엄마가 서울에 올 때 마다 꼭 들렀던 곳이다. 항상 그 곳을 지나기 전에 ‘잠깐만 들를까?’라고 해놓고 두 시간씩 시간을 쓰고 나왔다. 웬만한 옷들은 다 어딘가 하자가 있거나 굳이 돈 주고는 사지 않을 것 같은 옷인데 잘 찾아보면 보물 같은 옷이 있다. 엄마는 그 옷더미 속에서 귀신같이 보물을 잘 찾아냈다. 지금 생각 해 보면 엄마는 옷이 필요하기 보다는 보물을 발굴하는 재미로 구제 옷가게에 간 것 같다.    

여기가 엄마가 자주 가는 구제시장인데 이건 고속터미널역이 아니라 강남역에 있는 가게다.


  한동안은 그 옷가게 앞을 지날 때 마다 억지로라도 그 쪽을 바라보지 않으려고 했다. 그 곳 앞을 지나지 않으려고 일부러 7호선을 타지 않기도 했다. 다른 역에서 같은 옷가게를 보면 못 본 척하고 빙 돌아 지나가기도 했다. 그냥 그 가게를 보는 것 자체가 너무 괴롭고 마음이 쓰라렸다. 그랬는데 내 발로 거길 찾아가다니.    


  한 번 쯤 가보고 싶었다. 엄마를 느껴보고 싶었다. 친구에게 엄마가 평소에 자주 가던 곳이라며 들어가기만 하면 3시간은 뚝딱이라고 함께 가자고 했다. 마침 가을 신상이 많이 들어오고 있어서 친구와 신나게 구경을 했다. 엄마 생각이 많이 났다. 엄마가 여기서 옷 더미를 뒤지며 손에 옷걸이를 잔뜩 쥐고 탈의실 앞에서 순서를 기다리는 모습, 옷을 입어보고는 이건 영 아니라며 다시 내려놓는 모습,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보물 같은 옷을 건져 신나 하는 모습, 그 중에서도 이건 딱 률이 니 스타일 아니냐며 내 옷을 골라오던 모습, 그리고 그 옷을 맘에 안들어 하는 내 모습까지.. 


  평소 같았으면 자리에 주저앉아 울기부터 했을 텐데 나도 모르게 슬며시 웃음이 났다. ‘어디 보물 없나’하며 날카로운 눈매로 잔뜩 걸린 옷걸이를 하나씩 넘기는 모습에 마치 내가 엄마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구제시장을 별로 안 좋아했는데, 엄마가 없으니 내 발로 여길 다 오는구나 싶기도 했고, 또 숨어있는 보물을 찾는 재미가 나름 쏠쏠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 능력치가 부족해서 엄마처럼 괜찮을 옷을 찾지는 못해 빈손으로 가게를 나왔다.    

 

     엄마가 의식이 없이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맬 때, 엄마 친구 선영이 아줌마랑 전화 통화를 하면서 ‘제가 엄마 없이 살 수 있을까요?’ 라고 물었었다. 그 때 선영이 아줌마가 이렇게 대답을 해주셨다. ‘당연히 살 수 있지. 률이 너는 ’내가 이렇게 잘 살아도 되나‘ 싶을 만큼 잘 살 거야.’ 

  지금 내가 ‘이렇게 잘 살아도 되나 싶을 만큼’ 잘 살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더디게, 조금씩, 그렇게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이제는 엄마를 생각하며 웃을 수도 있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나의 엄마와 나누었던 세상 어디에도 없는 사랑, 이야기, 추억, 기억들이 어디 가지 않고 내 마음속에 여전히 그대로였다.


구제시장에서 엄마랑 같이 산 가디건. 너무 귀여워서 내가 엄청 좋아하는 옷이다. 내일 입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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