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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의외의 Dec 27. 2021

소심씨

소심씨는 아이 콘택트 중



소심씨는 사람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한다. 어릴 때부터, 그네 탈 차례를 기다리다 새치기를 당하면 그네를 못 타는 척했고, 발표한 학생에게만 주어지는 사탕은 먹어 본 적도 없었다. 새 학기는 소심씨에게 최악의 연초 이벤트였다. 친구들이 말 걸며 다가가도 눈길조차 안 주고 대답도 시원찮은 소심씨였다. 그의 태도에 상처받거나 흥미를 잃어 다른 친구를 찾아 떠났고, 소심씨는 그런 친구들을 붙잡을 용기도 없어 뒤꽁무니만 바라보는 게 다였다. 소심씨의 학창 시절은 그렇게 이어졌다. 소심씨도 본인의 그런 모습이 개탄스러웠다. 텔레비전 속, 눈을 맞춰 오는 연예인을 뚫어지게 본다. ‘텔레비전 속 연예인은 빤히 볼 수 있으면서, 왜 눈앞에 실재하는 사람은 쳐다보질 못할까?’ 한숨만 쉬던 소심씨의 머릿속 필라멘트가 켜졌다.


수험생이 된 소심씨가 선택한 학과는 사진학과였다. 텔레비전 속 피사체의 눈은 똑바로 바라볼 수 있었다. 무언가를 거쳐야만 아이 콘택트를 할 수 있던 것이다. 그렇다면 카메라 렌즈가 소심씨의 눈이 되어, 대신 보면 되는 거다. 소심씨의 대학 생활은 초중고 학창 시절과 비슷했고 그저 그런 학점으로 무사히 졸업했다. 대학원이나 유학까지는 안중에도 없었고 대신, 작은 사진관을 차렸다. 손님을 응대해야 하는 일이긴 하지만 영업직은 아니니 비교적 어렵지 않았다. 어떤 사진을 찍으러 왔는지 묻고 확인하고 카메라를 세팅한 후, 안내만 해주면 되는 것이었다.


사진관 문에 달린 종이 딸랑- 울린다. 문틈으로 여자가 고개를 빼꼼 내밀며 여권 사진을 찍고 바로 받을 수 있는지 묻는다. 가능하다는 말에 여자가 들어오고 소심씨는 접수증을 건넨다. 사진 촬영이 시작되고, 소심씨는 그제야 카메라 렌즈로 그녀를 바라본다. 과감한 빨간 원피스와 달리 다소곳하게 모은 손발. 카메라 앞이 어색한지 안면 근육은 굳어있었다. 소심씨는 렌즈에 눈을 떼지 않은 채 그녀에게 말했다. “사진은 편하게 찍는 게 가장 잘 나와요.” 그녀의 시선이 카메라에서 소심씨로 향한다.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사람을 바라본다 생각하고 렌즈를 바라봐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굳어 있는 그녀가 꼭 본인 같아서, 안타까움이 만들어 낸 용기였다. 멈췄던 셔터 누르는 소리가 들렸고 소심씨는 본인이 사진사가 아닌 마법사가 아닐까 생각했다. 어두운 스튜디오에 그녀를 비춘 조명은 아침 햇살이 되었고 굳은 근육이 조금씩 꿈틀댔다. 그녀의 얼굴은 나팔꽃처럼 활짝 폈다. 소심씨는 그 순간 그녀의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무언가’가 된 듯했다. 소심씨도 그녀도 렌즈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서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의 떨림은 너무도 짧아서 찾아낼 수도 없이 한구석을 간지럽게 긁어댔다. 일 년에 증명사진을 몇 번씩 찍어 두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소심씨는 그녀를 볼 수 없었고 남은 건 접수증에 적힌 ‘수줍씨’ 이름 세 글자와 그녀가 떨어트린 사진 한 장뿐이었다. 동네의 작은 사진관이라 어쩌면 볼 수도 있겠지만, 우연을 가장한 인연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뒤에서 흠모하는 사람은 더욱이 되고 싶지 않았다. 언젠가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소심씨는 잠깐의 설렘을 평생에 남겨두기로 했다. 소심씨는 수줍씨에게 떨림을 넘어 감사를 느꼈다. 한 사람의 평생 속에 남는다는 것은 얼마나 숭고한 일인가?

‘그런데, 수줍씨가 떠올린 건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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