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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i generis May 28. 2022

이들에게 Small Talk란

서로가 시민이자 동료임을 확인하는 수단


벌써 뉴질랜드에 살게 된 것도 8년째다.

처음엔 낯설고 어색했던 것들이 이젠 지나온 세월만큼 다듬어졌다.


이곳 뉴질랜드에선 정류장에서 조차도 내가 타야 할 버스가 도착할 때쯤엔 손을 흔들어 "나는 그 버스에 탑승하겠어요"라는 신호를 기사님께 전해야 한다.

나의 첫 대중버스 탑승기는 그렇게 실패로 끝났다.

그리고 버스 앞 유리창에 저렇게 적혀있는 것을 나는 그 후에야 알게 되었다.

"Please signal driver to stop."



뉴질랜드는 담배값이 비싸다. 가격이 $30 전후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원화로 환산하면 대략 24,000원 정도이다.

뉴질랜드 생활 초반 흡연자이던 시절, 비싼 담뱃값 때문인지, 거리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으면 하나만 줄 수 없냐는 부탁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약 절반의 확률로 그들은 나에게 2불짜리 동전을 건넸다.

나는 담배 인심이 후한 한국 사람이니까... 괜찮다고 하면 그들은 그렇게 고마워할 수가 없었다.


더치페이 문화야 익히 잘 알려진 일이지만, 처음엔 이것도 적응이 필요했다. 열명이 카페에 가도 긴 줄을 서서 각자 주문하고 각자 계산한다.

무심코 서로 눈이 마주치면 이들은 생긋 웃어주기도 한다. 처음엔 "역시 난 호감형인가?" 했다. 바보.


완전치 않은 영어 때문에 여러 에피소드도 남겼다.

잘 모르는 사람과 엘리베이터를 같이 탔는데, 갑자기 물어보더라.

"Where are you going?"

난 학교 도서관에 가는 길이라 "To the library"라고 대답했는데, 몇 층 가냐는 말이었다. 그 친구가 층수를 대신 눌러주려고 호의를 베푼 것도 모르고... 바보 2.


그래도 나는 내가 아는 형보다 낫다.

건물 엘리베이터 점검일을 하는 그 형은 처음 현장에 나간 날을 잊지 못한단다.

현장에 도착 후 확인 차 프런트 직원을 만났는데, 그 직원이 대뜸

"Where are you from?"이라고 물어봤다더라.

그 형은 왜 그런 걸 물어보나 의아했지만 아는 영어라 자신 있게 대답했단다.

"I am from South Korea."

난 아직도 궁금하다. 그 형은 왜 그때 "I'm from Schindler (소속 회사명)"라고 답을 못했을까? 바보 3.



서구권 문화에선 흔한 (내가 만나본 아랍 친구들도 그런 걸 보면, 꼭 서구권 문화라고 한정하기엔 좀... 잘 모르겠다) Small Talk도 이제 익숙하다.

커피를 주문하고 기다릴 때나, 아파트 복도에서 마주칠 때나, 어디든 같은 공간에 있으면 Small Talk를 시도하는 사람들도 많다.

날씨 이야기부터 해서, '너 오늘 멋진 신발을 신었구나'라든지, '너 옷 입은걸 보니 야구를 좋아하는구나'라든지, 나는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고, 별로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데, 이런 식으로 불쑥 말을 걸어온다.

그럴 때마다 어색한 마음을 숨기고 나도 대화를 이어간다. '엉 그래... 네 셔츠도 오늘 멋진걸?'




이런 Small Talk도 8년째 하다 보니, 어느샌가 그런 생각이 든다.

일종의 매너이자 호의이자 서로 간의 예의를 너머,

이들은 'Small Talk를 통해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서로를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

Small Talk란 '서로가 서로에게 시민이자 동료임을 확인하고 확인받는 그런 수단은 아닐까?' 하는 생각 말이다.


그러고 보면, 다양한 방식으로 이들은 서로를 존중한다.

운전자들은 늘 방향 지시등도 잘 켜주고, 도로에선 경적을 울리는 일도 잘 없다.

이들은 또한 보행자랑 마주치면, 거의 100%의 확률로 먼저 지나가라는 의사표시를 하고, 서로 통행 순서를 양보하며 엄지 척, 혹은 뜻을 알 수 없는 제스처를 주고받는다.

어디든 앞서 가던 사람은 뒷사람을 위해 문을 잡고 선채 기다려주고, 뒤에 있던 사람은 조금 쳐져 있더라도 냉큼 달려가 그의/그녀의 호의에 감사를 표시한다.



8년 전 오클랜드 시티 한복판에서 가야 할 건물을 도저히 못 찾겠을 때, 나는 지나가는 행인 한 분에게 내 목적지를 물었다.

또 Small Talk가 시작되었고, 내가 엊그제 오클랜드에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녀는, 직접 자신의 핸드폰으로 구글맵을 켜고 나의 목적지까지 함께 해 주었다.


이들은 그렇게 서로를 존중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아마도, 내 추측이 맞다면,

Small Talk는 이들이 그렇게 살아가는 방식을 위한 아주 훌륭한 도구이자 수단이 될 것이다.

동시대의 역사를 공유하는 시민으로서, 그리고 동료로서 서로를 존중하고, 이해하며, 또 서로가 그런 자격이 있음을 확인해주고 보증해주는 그런 도구이자 수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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