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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지레이 Dec 18. 2021

내가 나를 끝없이 배신할지라도

Sing, Sing, Sing


그냥, 모든 게 다 잘될 줄 알았어요. 막연한 기대와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무장하고, 일단 무슨 일이든 저지르고 보는 내 성향이 큰 장점인 줄 착각하고 살아왔거든요.


" 매번 책 보고 공부하고 감명만 받으면 뭐하나. 스스로 실행할 수 있어야지, 나처럼. "


그저 호기심만으로 생소한 분야에 무작정 뛰어들 때도 거침이 없었어요. 뭐든 금방 배우고 단시간에 그럴듯하게 결과를 내는 벼락치기의 습성은 10대 때부터 종종 효율적인(?) 결과를 가져다줬거든요. 깊이는 없어도 잠깐 파고들어 익힌 다음 흉내내기를 해보다 싫증이 나면, 또 다른 흥미를 찾아서 관심을 돌리곤 했어요. 자기 합리화의 방어기제는 이런 나를 마치 폴리매스(Polymath) = 박학다식가, 다중재능인 인 것처럼 추켜세웠죠.


나는 나를 무턱대고 믿었었죠. 잘 해내리라고. 

하지만,

나는 나를 끝도 없이 배신했죠. 원하는 걸 얻을 자격이 없으니까.


착각. '그저 다 잘되겠지'라는 막연한 기대가 얼마나 허황되고 대단한 착각이었는지를 깨닫는데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매일의 불성실함과 나태함이 10년, 20년 두텁게 쌓인 후 깨닫게 된 나의 실체는 처참했고 너무나도 잔인했어요. 차마 믿고 싶지 않았고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지 않았지만, 내가 가진 줄 알았던 재능의 씨앗들은 이미 모래알처럼 흩어져서 희미한 흔적들만 시체처럼 남아 있었습니다. 한동안, 끝없이 밀려오는 자기혐오와 스스로의 것을 보석처럼 키워낸 사람들을 향한 질투심으로 매우 괴로운 시간들을 보내야 했죠.


질투심. 특히 그것이야말로 자기혐오를 몇 배로 키워내는 감정이었습니다. 시작하는 단계에서는 나와 비슷하게 느껴졌던 그 사람의 부스러기 같은 알맹이가, 어느덧 눈부시게 단단하고 크게 자라났을 때. 그저 축하해주고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기에는, 내가 너무 초라해지는 것이에요.


모든 걸 외면하고 모른 척하고 싶었어요. 우울함을 핑계로 하루 15시간 정도를 내리 잠만 자는 날들이 끝없이 이어졌어요. 도저히 잘 수도 없을 때는, 넷플릭스 시리즈, 유튜브 클립, 미뤄뒀던 네이버 웹툰들을 완독 하면서 나에게 아직 남아있는 시간의 기회조차도 거부하길 반복했습니다. 내가 사라지길, 마치 내가 세상에 없는 존재가 되길 기다리는 사람처럼 하루를 살아가는 거예요. 


이러다간, 나에게 더 이상 아무 자격도 주어지지 않겠죠.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로 20대, 30대를 지나왔는데... 나에게 겨우 남은 시간들마저 흘려보내고 싶진 않아요. 우습게도, 반복되는 일상에 쉽게 지루해지고 싫증을 느끼는 지랄 맞은 성향이 우울의 늪에서 나를 꺼내는데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몸은 일어나지 못했지만, 마음은 먼저 일어났어요. 이불을 감고 드러누워서도 동기부여 영상들을 보기 시작했죠. 미라클 모닝의 기적을 체험한 사람들의 간증 기를 읽었고, 좌절의 시간을 극복하고 이제는 성공했다는 사람들의 조언을 반복해서 시청하면서 끊임없이 나를 깨워봤죠.


그래서 결국 무기력함을 극복했냐고요? 극복은 할 수 없어요, 적어도 나는. 나의 기대와 바람이 무색하게도 게을러터지고 불성실한 또 다른 나는 끊임없이 나를 배신해왔고, 계속 배신할 것이거든요. 하지만, 그 상처로 고통받고 스스로를 증오하기보다는 그래도 또 한 번 기대하는 나를, 희망을 품는 나를 응원하기로 했어요.



artwork by LazyRay ( Sing, Sing, Sing / 4000px * 2999px / Created in 2018 )



그래서 나는, 노래합니다. 모든 것을 다 잃은 것 같은 절망감이 나를 덮쳐왔을 때도요. 무기력한 나를 증오하고 저 멀리 빛나는 사람들을 시기하는 것보다는, 그래도 막연한 희망을 노래하는 것이 나를 살린다는 것을 깨달았거든요. 결국 내가 꿈꾸던 곳까지는 갈 수 없을 거예요. 그래도, 그곳을 향해 노래하는 것만으로도 오늘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알게 되었거든요.


함께, 노래하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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