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 강사가 된 이유 1
왕왕 친구들을 요가에 꼬신다. 꾸준히 와주는 친구도 있고, 레깅스를 입어야 하냐는 우스운 질문을 하는 친구도 있고, 여자들만 있는 곳에서 운동하기 민망하다며 거절하는 친구도 있다. 대부분은 요가를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운동이 될 거라 생각도 하지 않는 것 같다. 막연히 요가라는 것이 편하게 매트에 앉아 스트레칭이나 하다 오는 것으로 여기는 것 같다. 나는 남자이고, 그렇기에 내 친구들도 대부분 남자이고, 그런 남자들이 갖고 있는 요가에 대한 편견이 그렇다.
하지만 나는 본격적으로 요가를 시작하기 전에도 (보통의 남자 치고) 꽤 여러 번의 요가 경험이 있었다. 제일 처음 했던 곳은 홍대에 있는 유솜요가였다. 아마 대학교 3학년 즈음에, 뉴에이지 풍의 영화를 봤는지, 친구 한 명이 (역시나 남자) 요가를 시작해 보자면서 나를 끌고 갔다. 그때에 어떤 요가를 했는지 기억에는 남아 있지 않다. 이 날 자체가 오래 지났기도 했고, 당시 기준에선 주요한 사건도 아니었기에 흐릿하다. 내가 이때 처음 요가를 했다는 것도 오랜 시간 잊고 있었다. 최근에 유솜요가에 회원 등록을 하려고 하니 이미 생년월일도, 핸드폰 번호도 같은 내 이름이 등록되어 있었고, 인포 선생님이 난감한 기색을 표하자, 그제야 내 첫 요가가 여기였다는 것을 떠올릴 수 있었다.
이 기억을 떠올리기 전, 그러니까 내가 나의 첫 요가로써 기억하는 경험은 그로부터 한참 뒤에 발생했다. 고등학생 때부터 앓던 허리디스크(에 딸린 여러 증상들)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인터넷 팝업 광고처럼 시도 때도 없이 나의 생활을 끈질기게 방해했고, 나는 운동이든 뭐든 일단은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잠실 롯데타워 맞은편에 있는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한 요가원에 갔다. 지금도 여전히 유연하다고는 말할 수 없는 몸이지만, 당시에는 길가에 있는 나뭇가지를 꺾어와도 나보다 유연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몸이 뻣뻣한 상태였다. 수업 내용은 전혀 기억 안 나지만, 수업 내내 따라 할 수 있는 자세가 없어서 (곧게 앉을 뿐인 막대기 자세를 등 뒤에 손 짚고도 하기 힘들었다!) 멍하니 할 수 있는 자세가 나오기를 기다렸던 기억이 있다. 처음엔 선생님이 많이 신경 써줬지만, 스스로 포기하자 선생님도 나를 포기해 버렸다. 한 시간 뒤에 나는 뽀송한 상태로 요가원에서 나왔고, 요가는 나와 맞지 않는 운동이라 생각했다.
이건 언제의 기억인지 명확하진 않다. 첫 요가 경험 이전 일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내가 살던 곳은 구파발이라는, 걸어서 10분이면 경기도로 넘어갈 수 있는 서울 북쪽 끝이었다. 요가원이 세 개 정도 있었는데, 남자 수강생은 받아주질 않았다. 아마, 신도시 베드타운이라, 주부 수강생이 주 고객이라 그런 게 아닐까 혼자 어림짐작했다. 다시 한번 요가를 하려다가 좌절했더랬다.
코로나가 온 세상을 뒤덮었다. 당시에는 회사 점심시간을 이용해 근처 헬스장을 다니고 있었다.
초기에는 마스크도 끼지 않고 운동을 했지만, 헬스장이 폐쇄되기까지 채 한 달도 걸리지 않았다. 딱히 근육을 붙이는 것에 흥미가 있진 않았지만, 간신히 운동에 붙인 관성을 멈춰버리고 싶지 않았다. 그러던 날 중에, 언제 가입했는지도 기억 안 나는 다운독이라는 앱에서 메일이 하나 날아왔다. 코로나 때문에 집에 갇힌 사람들을 위해 유료 과정을 두 달간 무료로 푼다는 내용이었다.
어라라, 웬걸? 헬스 때문에 몸이 조금은 부드러워진 건지 요가원에서 구경만 했던 동작들을 어느 정도 흉내는 낼 수 있었다.
7평 원룸에서, 손발을 멀리 뻗으면 침대와 모니터에 닿는 공간에서, 여러 날 혼자 요가를 했다. 한국어 더빙 강사님이 경상도 분이신지, 열심히 노력한 표준어 사이에 경상도 억양이 스며들어갈 때, 혼자 방에서 웃었다.
그렇게 방구석 요가를 무료 기간이 끝날 때까지 꾸준히 했고, 안 되던 동작이 되는 성취감을 느꼈고, 오프라인 요가원을 찾아나가기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4년 가까이 요가를 해오고 있다.
요가에게 꾸준히 거절을 당하면서도, 왜 그렇게 요가에 호기심이 갔는지 모르겠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언젠가 요가 강사가 되기 위해서 그런 경험들이 있었나 싶기도 하다.
p.s. 요가를 시작할 땐 빡빡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