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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르 Mar 27. 2022

지극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사랑의 중력>

내가 읽은 것들

나는 분명 스웨덴 작가 사라 스트리츠베리의 소설 <사랑의 중력> 잃었는데  한강 작가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  문장이 떠올랐을까. 한강 작가는 제주 4.3 희생자와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 '지극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소설에는 사회로부터 소외되어 자기만의 감옥에서 살아온  가족을 향한 뜨거운 눈물과 사랑이 담겨있다. <사랑의 중력> 딸인 '' 시점에서 정신병원에서 살아간 아버지와 정신병원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사랑이 담겨 있고, <작별하지 않는다>에서는 제주 4.3사건으로 형제를 잃고 살아온 어머니를 향한 경하의 뜨거운 사랑이 담겨 있다. 사라 스트리츠베리의 소설 <사랑의 중력> 읽고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  떠오른  다른 이유는 상징과 묘사로 가득찬 시적이고 아름다운 문장들, 상황이 아니라 분위기를 그리는 문장들, 읽고 나면 마음 속에 깊은 흔적을 남기는 것까지,  작품은 서로가 서로를 떠올리게 하는 비슷한 분위기를 지녔기 때문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그렇지만 이번 리뷰에서는 <사랑의 중력> 집중하려 한다.  책은 사라 스트리츠베리의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쓰여졌다. 작가가 소중하게 간직해온 유년시절 아버지와의 추억이  소설의 출발점이 되었다. 소설의 장소적 배경은 유럽 최대의 정신병원이었던 베콤베리아이다.  병원은 1932, 유럽 보건정책의 일환으로 생겨난 곳으로 신체적, 정신적으로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사회로부터 격리시켜 관리하는 복지시설이다. 소설  화자인 야키의 아버지 짐은 알코올중독자다. 그는 사회에서 위험한 존재로 낙인찍혔다. 그리고 이곳 베콤베리아에서 기억하는 생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알코올중독자는 사회에 해를 끼칠  있어 특별히 관리되어야 하는 존재라는  불편한 진실은 소설의 시작이자 전부인 가족을 향한 '사랑'으로 희석된다. 그리고  '사랑' 짐에게서 '알코올중독으로 치료를 받아야 하는 불안하고 유해한 인간'이라는 낙인을 잠시 거두어준다. 소녀 야키가 매일 같이 만나러 가는, 딸에게는 소중한 아버지로만 독자 앞에 데려다놓는다.


베콤베리아는 어떤 곳일까. 흔히 정신병원에 대한 부정적 평가라면 의례 따라오는 개인의 자유를 제약하고 인권을 박탈하는 야만적인 곳일까. 베콤베리아는 야키의 추억에서 절대 빠질  없는 소중한 소다. 야키에게 정신병원 '베콤베리아' 아빠가 사는 집이다. 사랑하는 아빠와 그곳에서 만난 소중한 친구들이 살아가는 . 소설은 야키의 아빠 짐과 사비나  정신병원 친구들병원에서 보내는 일상을 그리는  대부분의 지면을 할애한다.  일상에서 '치료'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중요한  그들 간의 관계와 대화, 기분, 시선, 생각 같은 것들이다. 우리 모두가 일상적으로 하는 행위 말이다.

야키는 엄마 로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거의 매일 아버지 짐을 만나러 베콤베리아에 간다. 너무 자주 와서 병원 사람들 중에 야키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방문자라면 누구나 거쳐야 하는 출입 절차도 야키는 넘어간다. 야키는 짐의 딸이기도 하지만, 정신병원 환자들의 친구이기도 하다. 야키에게 베콤베리아에서 만난 사람들은 그녀가 사회에서 만난 친구들 만큼이나 익숙하고 당연하며 소중한 존재들이다.  소설이 빛나는 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소설은 베콤베리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치료받아 사회로 돌아가서  자리를 찾아야 하는 사람들로 규정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 지금 있는  자리를 존중하고 인정한다. 베콤베리아도  하나의 세계라고. 지도 위에서 지워져버려야 하는 장소가 아니라 우리 곁에 엄연히 존재하는 독립된 세계라고,  세계 안에서는 사랑도 있고 꿈도 있고 친구도 있고 가족도 있다고 말이다.


박현주 번역가의 옮긴글에 따르면  소설은 하나의 이미지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 노인이 폐쇄된 정신병원 건물에 손을 대고 있다. 마치 살아 있는 생물의 심장박동을 느끼듯이."  노인에게 정신병원은 어떤 존재였을까. 비정상이었던 내가 잠시 거쳐곳일까. 정신병원을 그리워하는 환자라.. 쉽게 상상할 수 있나. 나에게 소설을  읽냐고 묻는다면 나는 '당연히 안다고 생각하는 편협함을 깨부수기 위해서'라고 답할 것이다. 베콤베리아는 1970년대 탈시설화 바람이 불며 결국 폐쇄된다. 베콤베리아에서 친구를 만나고 연인을 만나고 우정을 나누고 사랑을 배운 사람들에겐 나의 세계가 사라지는 일이었을 테다. 누군가, 자신이 기억하는 생의 대부분을 정신병원에서 보냈다면,  정신병원은 비정상이었던 내가 잠시 거쳐간 곳이 아니라  생의 흔적이 있는 ,  존재를 확인해주는 , 사랑하는 이들과 추억을 나눈 일 테다. 그리고  진실은 정신병원의 어두운 진실만큼이나 중요한 진실이다. 우리가 세계라고 부르는   좁은 시야 속에만 존재하는 세상이 아니었을까.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야키가 정신병원에서 만난 사람들, 짐과 사비나와 파울과... 모든 이들의 안녕과 행복을 빌었다. 이들 모두 정신적 문제를 겪고 있지만, 필요에 의해서 사회로부터 격리되었지만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소설에서 중요한 것은 이들 모두가 누군가가  위에 발붙이고 살아갈  있게 해주는 사랑의 중력이라는 사실일 뿐이다.  


이제 이 책의 번역 제목인 '사랑의 중력'에 대해 박현주 번역가가 쓴 글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어느샌가 땅에서 발이 떨어져 바람에 휩쓸려가버릴 것 같은 때가 있다. 이 세계에서 떨어져버릴 것 같은 때가 있다. 그때 우리의 발을 잡고 다시 세상에끌어내리는 것이 사랑이라는 개념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야키가 아들 마리온에 대한 사랑으로써 발붙이고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처럼. 지미가 쉽사리 떠나지 않게 된 것처럼. 이 책의 번역제인 '사랑의 중력'은 거기서 유래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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