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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헌윤 Mar 31. 2021

상처에 대해서

일상생활에서 흔히 사용되는 감정 차원에서의 ‘상처’에 대한 의미는 매우 포괄적이다.

어떤 것에 상처 받았는지, 그 상황이 상처 받을 만 한지는 개개인마다 모두 다르기 때문에 쉽게 정의 내릴 수 없다.


상처의 사전적 의미는 몸이나 마음을 다친 자리, 또는 흔적을 말한다. 


목에 걸린 작은 가시처럼 계속 신경 쓰이고 마음이 서걱거리는 그 무언가 일 것이다.


모두 다 엇비슷하게 맞는 말이지만, 나에게 떠오르는 상처의 이미지는 마치 과거라는 블랙홀에 현재가 모두 빨려 들어가, 오늘 지금-여기를 살지 못하게 만드는 일련의 무엇 같다. 


마치 집으로 돌아가는 골목길 귀퉁이에서 언제나 기다리고 있는 과거의 유령처럼, 그것은 현재에도 생생히 살아 우리 삶에 권력을 휘두른다. 


상처는 경험한 사실을 기반으로 하기에, 오늘도 우리 곁에서 실제처럼 만져질 수 있다.  


그렇다면 과거의 블랙홀로 빠져 들지 않고, 에너지를 오늘에 집중해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는 것이 현명한 것일까?


장자의 <<장자(잡편)>>, <어부>에는 자신의 그림자와 투쟁을 벌이는 한 인물이 나온다.


"어떤 사람이 자기 그림자가 두렵고 자기 발자국이 싫어 이것들을 떠나 달아나려 했는데, 발을 더 자주 움직일수록 발자국은 더 많아졌고, 빨리 뛰면 뛸수록 그림자는 더 몸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그래도 그는 그것이 자신이 더디게 뛰는 까닭이라 여기고 쉬지 않고 뛰었고 결국 힘이 빠져 죽고 말았다. 그는 그늘 속에서 쉬면 그림자가 사라지고, 고요하게 있으면 발자국이 생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나는 여기서 ‘그림자’를 ‘상처’로 치환해 생각해 보았다. 


상처의 그림자는 누구에게나 있다.
이 세상에 그림자가 없는 것은 유령밖에 없다.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고통을 수용하고 마음의 함량을 넓고 깊게 늘리는 방법밖에는 없는 거 같다. 

그림자를 인정할 때 삶은 가벼워질 수도 있다. 그림자는 우리의 삶을 입체적으로 조망하기 위해서는 그림자가 필수적이다. 

우리는 상처를 인정하고 수용하는 방법밖에 없다. 

(물론, 깊은 트라우마의 상흔이 있다면 정신과적 약물치료와 심층 상담이 반드시 필요하다.)

곪은 상처 그 밑에서 새살이 돋는 것처럼, 절망의 상처에서 희망의 꽃이 핀다. 

상처는 더 큰 사람이 될 수 있게 만들어주는 밑거름, 디딤돌이 될 수 있다. 


단, 상처를 새로운 출발의 기회로 삼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과 시간, 인내가 요구된다.  


심리학에는 ‘외상 후 성장(Post-Traumatic Growth, PTG)’용어가 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신체적 손상, 정신적 충격을 수반한 심적 외상을 받은 뒤, 회복력을 통해 이루어지는 치유뿐만 아니라, 이를 통한 긍정적 변화를 가리킨다. 높은 차원의 기능을 발휘하는 단계로 가기 위하여, 역경이나 시련의 결과로써 경험되는 긍정적인 심리적 변화를 말한다. 


세상에 대해 생각하고 관계하는 방식의 변형은 심리적 변화로 이어지고 개인의 성장과 변화에 깊은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상처에서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다. 

우리 인간은 연약하지만 연약하지 않다. 난 그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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