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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간청개구리 Aug 10. 2020

9_다 그려주었는데 왜 집을 짓지를 못하니

도시 청년의 귀촌이야기


드디어 집을 짓는 다니…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다소 파격적이었던 건축가의 첫 제안 모델 “너무 아름다운 디자인"은 2층 콘크리트 전원주택으로 변경되었다. (최종은 두 번째 건축가의 수정이 추가되었다) 외벽은 본래 우리가 원했던 하얀색이었고 건물의 중앙에 부채꼴 형태의 테라스가 관통하게 만들어 바람 통풍을 원활하게 하였다. 효율적인 집이라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첫 삽의 기쁨과 기대도 잠시.


곧바로 아주 심각한 문제가 새로 생겼다.


무슨 집이든 지어 올릴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던 현장 소장 B 씨는 건축가의 도면을 보여주자 눈만 꿈뻑거리며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시골집은 그냥 황토로 퍼덕퍼덕 처 올리거나, 돈 좀 있으면 벽돌로 짓는 것이여. 누가 시골집을 콘크리트로 올린당가. 도시 사람들 참으로 유난스럽네 그려”

첫번째 현장 소장 B는 이런 사진속의 황토집을 지은 경험은 있으나 건축도면을 토대로 집을 지을수 없었다. (본 사진은 해당 내용과 관련이 없음. 사진출처: Bing)


“그냥 말뚝박고 올리면 되는 것이제. 집이랑 다 거기서 거기제 ”


지역 원주민 건설업자 B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런 상세한 도면을 바탕으로 집을 지어본 경험이 없었던 것이다. B는 우리가 그리는 전원주택을 지역 정부의 도급 공사나 황토 농가 주택 정도로 예상했었다. 서울 사람들은 참으로 유난스럽다는 뉘앙스의 말을 남기고 B는 현장 소장직을 스스로 그만두었다. 토목 공사를 첫 삽을 뜬 지 얼마 안 된 시점이었다. 


시간이 속절없이 흘러가고 있었고 건축 예산은 의미 없이 타들어가고 있었다. 

우리는 건축사의 설계를 보고 집을 지어주는 현장을 관리할 현장소장을 다시 구해야 했다.




사실 우리는 처음부터 현지 건설업자들이 건축사무소의 설계를 얼마나 소화할 수 있을지 약간의 의문이 있기는 했다. 그래서 이런 사건을 어느 정도 미리 예상하기는 했지만 이렇게 손을 놓아 버릴 줄은 몰랐다.


처음부터 지역 건설업자 B와 함께 한 데에는 시골(여기서는 ‘군’급 이하 지역 행정 단위를 시골이라 하겠다) 건설 업계만이 가지는 몇 가지 어쩔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현지 건설 업자와 시골의 관공서 관계자와 매우 친밀한 사이다. 그래서 같은 민원 신청이라도 내가 신청한 거와 건설업자 대리인을 통해 신청한 것의 결과가 나올 수 있다. 민원이라는 것이 법과 관련 규정 해석 영역을 벗어나는 때가 많다. 그러면 ‘지침’(공무원들은 ‘지침’이라는 애매모호한 표현을 정말 많이 사용한다)으로 판단해야 해야 하는데, 그건 곧 담당공무원의 자의적 해석이라는 의미이다. 


평소에 호형호제하던 지인이 신청한 민원이라면 ‘접수 거부’보다는 반려 사유를 상세히 알려주고 ‘재신청’의 기회가 생긴다. 전원주택을 지을 때는 법의 해석이 완전히 적용되기 어려운 상황이 매우 많다. 나무 한 그루의 가지를 잘라도 ‘산림 훼손’인지 ‘조망권 보장’인지는 담당 공무원이 판단하는 것인데 이 판단에 따라 전원주택 건설을 중단할 수도 있다. 


특히 관련 주무 부서인 ‘건축과’와 ‘산림과’등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그들은 수많은 허가권한을 손에 쥐고 있다. 산림과는 형사 처벌 의견을 전달할 권한도 가지고 있다. 형사 사건에 연루될 경우 전원주택 건설이 문제가 아니다. 변호사를 찾아야 할 것이다. 


산림 파괴는 국가에서 중범죄로 간주한다. (사진은 글과는 관계없음)  출처: 중원일보 


또한 시골의 건설업계는 지역별로 그들만의 카르텔이 형성되어 있다. 한 지역의 공사는 같은 지역의 중장비 업체와 자재 업체의 관할 영역이다. 바다 위 교량 건설 같은 국가 기간산업 공사가 아니라면 타 지역 건설업자는 기웃거리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다. 지역의 토목, 건축 공사는 지역 건설사업자가 독과점하는 생태계이다. 시골에 가면 중소 규모의 건물들이 다 비슷비슷한 생긴 이유가 그것이다. 동일한 건축 업자들이 건설했기 때문이다. 


시골에서는 지역 건설업자들이 굴삭기와 같은 중장비를 독과점하고 있다. 

그런데 도시에서 온 이주민이 외부에서 건설업자를 같이 데려온다? 건축주가 아무 생각 없이 굴삭기(포클레인) 같은 중장비를 지역에 용역 주지 않고 외부에서 모두 들여온다면 지역 건설업자들과의 전쟁을 선포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개념 없는 X’으로 소문이 나서 앞으로의 전원생활이 험난한 것이다. 도시에서 먼 시골에서 전원생활을 꿈꾸는 독자가 있다면 이 부분을 슬기롭게 해결해 나가야 할 것이다.  




건축 초기 지역 건설업자 B를 현장 소장으로 선택한 것은 이런 이유였다. B는 그 지역에서 공공 기관 토목공사 용역과 전원주택 건설을 수십 년 동안 해온 사람이었는데 스스로 포기해 버렸다. 베테랑 건설 업자가 포기했으니 같은 지역의 다른 건설 사업자들도 우리의 전원주택 건설에 텃세 부림이나 불필요한 간섭을 하지 않았다. 그들의 영역 밖이라 생각한 것이다. 


결국 도면을 바탕으로 건설을 진행할 새로운 현장 소장 P가 수도권 지역에서 왔다. 


첫 삽을 뜨고 잠시 멈추었던 전원주택 건설이 다시 시작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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