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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간청개구리 Aug 06. 2020

8_한 번 지으면 십년 늙는다는 전원주택. 그런데도..

도시 청년의 귀촌이야기

“전원주택 한번 지으면 십 년은 늙어요. 그러니 집 짓지 말고 지어진 집 사요”


남해안에 자리 잡기 전 전원생활 선배(?)들에게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다. 근사한 집을 지어 등 뒤에 두고 여유로운 전원생활을 즐기는 듯 보이는데 정작 우리에게는 전원주택을 짓지 말라고 한다. 그렇게 말하는 그들의 얼굴 표정에 지난 몇 년간의 감정이 가득 담겨 보이니 거짓은 아님이 분명하다.


우리가 이해를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으면 그들은 하던 텃밭 일을 멈추고 고생한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한다. 영화 한 편이다. 하루 해가 저물어도 끝이 나지 않는다. 어떤 분들은 힐링을 위한 노년의 시간과 힘을 전원주택 건립에 너무 쏟아부었음을 후회하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우리가 후배(?)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우연히 혹은 언론 매체에 소개된 우리 전원주택을 찾아온다.  


“어떻게 이런 곳에 이런 집을 지으셨어요? 좋으시겠어요”


“집 지으면 엄청 고생이에요. 십 년은 늙어요. 그러니 편하게 지내고 싶으면 그냥 조립식 주택을 주문하거나 수도권 타운 하우스로 가세요”


방문자가 소박한 전원주택을 짓겠다면 입에 침을 튀기며 말린다. 건축 과정이 소박한 전원주택은 없다. 지루한 과정 동안 몸은 지치고 감정은 소모되기 십상이다. 수많은 의견 조율과 대립이 있지만 대체로 건축과정의 전반부는 건축가와 후반부는 현장 소장과 의견 충돌이 끊이지 않는다.


건축주와 건축가가 대립하는 이유는 이미 앞에서 설명했다. 건축가들은 건축과 설계의 전문가이기는 하지만 전원주택 건립에 대해서는 부족한 부분도 있다. 우리 집은 2년여의 건축 과정에서 건축가가 한 번 변경되었는데 처음의 건축가는 박물관이나 공공 상업 디자인의 전문가여서 주거의 기능을 잘 파악하지 못했다. 그래서 유리성 디자인을 제안했던 것이라 짐작한다. 이후 여러 번의 수정 변경안을 거쳐 최종 건축안 확정까지 도달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직 전원 주택 건설의 첫 삽도 뜨지 않았는데 듣기만 해도 벌써 지치지 않는가?


그런데도 전원주택을 지어 십 년이 늙는 경험을 하고 싶다면….


전원 주택 건축주를 위한 몇 가지 개인적인 조언을 공유하고 싶다.




꿈꾸는 전원생활을 구체적으로 건축가에게 알려주어야 한다


꿈꾸는 전원생활과 주택은 모두 다르다. 농촌에서 텃밭을 가꾸는 집. 반려동물과 생활하는 집. 부업으로 민박(혹은 펜션)을 하는 집. 펜션 목적의 집과 논밭을 관리하는 집의 구조가 같을 리 없다. 반려 동물의 집이라면 정원이 넓어야 할 것이다.


제주도에 있는 유명 스테이 '우주오리' .  여행자에게는 특별한 경험을 줄 숙소이다.
우주오리 내부. 전원 생활의 주거지로는...판단은 읽는분에게 맡긴다.


만약 개발제한구역 같은 관리 지역에 전원주택을 짓는다면 주택의 규모가 법적으로 제한되기 때문에 택지와 공간의 활용에 대해서 건축가와 더 상세하게 논의해야 할 것이다.


건축가는 사무직이다. 그러니 현장은 건축주들이 챙기자.


대부분의 건축사무소는 도시에 있다. 유명한 건축 사무소는 더더욱 그렇다. 그들은 전원생활을 잘 모른다. 냉정하게 말해서 건축가들은 사무실에 앉아서 설계를 하는 사람들이다. 건축주의 전원주택 부지를 관찰하는 시간보다는 컴퓨터 앞에서 설계를 그리는 시간이 더 많다. 시공 기간 동안 건축가들이 실제로 현장을 방문하는 것은 몇 번 안 된다. 서울에서 쉬지 않고 차로 5시간을 걸려 도착하는 우리 집도 마찬가지였다. 건축가가 현장을 방문한 횟수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이다.


건축가들은 시골의 전원주택보다는 여러 이유로 도시 근교의 단독주택 건축 참여를 선호한다. (서판교 단독 주택 단지)


그리고 건축가들에게 우리집만 고객이 아니다. 그들은 동시에 여러 고객들의 건물을 설계하고 있으며 전원주택 건축주들은 건축가들이 그렇게 선호하는 고객이 아니다. 사실 도시 근교의 단독 주택 건축주를 더 반긴다.유명인의 집이 아니라면 수도권 주택단지의 건축물들이 진행하기도 편하고 건축가로서 이름을 알리기에도 유리하다. 시골 전원주택에 대해 정통하거나 깊은 관심을 가지는 건축가들은 그리 많지 않다. 


건축가의 수상 이력을 잘 살펴보자


건축가들을 만나다 보면 어디서 건축상을 받았다고 업적을 자랑하는 분들이 상당히 많다. 수상이력이 없는 건축가를 더 만나기 힘들다. 하지만 여기서 잘 살펴보아야 한다.


그들의 수상 이력이 건축주의 전원주택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 공동 거주 건물이나 상업 건물 부문에서 받은 수상 이력이 과연 전원주택에 도움이 될까? 전원생활의 적합하고 주거의 기능이 핵심인 전원주택 건축에는 전문적 지식이 부족할 수 있다.


가끔은 출처를 알 수 없는 수상 이력으로 건축주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건축가들도 있다. 발행 부수를 확인할 수도 없는 잡지에서 수여받거나 보도 자료 하나 없는 수상이력을 내세우는 건축가들도 심심치 않게 보이니 조심하자. 우리도 실제로 만나보았다.


건축 대회 수상을 목적으로 한다면…글쎄


먼저 주관적인 의견과 경험임을 밝혀둔다. 나에게 건축상을 받은 건물들은 명품 디자이너의 패션쇼 의상 같다. 유명 디자이너들의 옷은 창의적이고 화려한 디자인으로 보는 이의 눈을 즐겁게 하지만 내가 입어본다고  한 번쯤 생각해보면 고개를 젓게 된다. 옷의 기능을 충족시키는지 의심스러운 의상도 많다.


건축물도 마찬가지다. 미래 지향적인 신선한 컨셉과 주제는 건축 대회 심사 요인 중 하나이다. 건축상 심사위원들이 건축물을 심사할 때 건축주가 얼마나 만족하고 살고 있는지를 평가한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은 없다. 그들이 과연 주거의 기능을 얼마나 체크할까?


전원생활에서 현실적인 문제들, 예를 들어 지하수 물은 잘 나오고 변기 물은 잘 내려가도록 설계했는지, 땅에서 올라오는 습기를 잘 막아주도록 구조가 되었는지, 보일러의 효율은 좋은지. 유리창은 단열과 방음이 잘 되었는지를 평가하지 않는다.


다시 한번 강조하는데 상하수도를 고려하지 않은 집 설계로 변기 물이 잘 안 내려가도 건축  수상에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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