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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간청개구리 Jul 26. 2020

6_건축가의 너무 아름다운 제안

도시 청년의 귀촌이야기

건축가 A는 헐렁한 하얀색 상의에 흰 바지를 입고 있었다.

흘러내려오는 은발 머리카락이 그렇게 잘 어울릴 수 없었다. 

작은 체구의 그는 자신이 디자인한 건축 ‘작품’들(건축가들은 그들의 건축물을 작품이라 표현한다)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강남지역에 위치한 본인의 건축 사무소에서 만난 A의 첫인상은 그만큼 강렬했다. 


전원생활지역과 부지를 정했으니 아름다운 집을 그려줄 건축가가 필요했다. 우리는 프랑스를 돌아다니며 발품으로 찍은 지중해의 별장 사진들을 들고 국내의 여러 건축가들을 찾아다녔다. 서울에서 차로 5시간도 넘게 걸리는 멀고 먼 남해안 바닷가의 집을 디자인해 줄 건축가가 있을까 싶었는데 막상 사진을 가득 보여주자 생각보다 많은 건축가들이 관심을 보엿다.  


대부분 "남해안에 이런 지중해풍 전원주택을 짓고 싶다는 것이지요?" 라며 흥미진진한 반응이었다.


이주할 전원주택지와 우리의 귀농 계획을 들려주자 그들의 흥미는 배가 되었다.


"그러니까 이 곳에 집을 짓고 전원 생활을 하신다는 것이지요? 대단하네요"


'멀고 먼 남쪽 바다까지 와서 택지를 보고 전원주택을 디자인 해줄  건축가가 누가 있을까' 라는 염려는 기우였다.  예상과 달리 만나본 건축가들 상당수가 우리의 전원 주택을 디자인하고 싶어했다. 그중에는 방송에서 유명세를 얻은 분도 있었고 제주도로 이주한  유명 연예인 집을 많이 디자인했다는 건축가도 계셨다. 


가수 김동률이  동기라고 자신을 소개한 건축가도 있었다. 김동률이 건축학도였는지 처음 알았다. 근데 이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만은..


우려와 달리 많은 건축가들이 관심을 보이자 정작 우리가 누구와 함께 해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고민 끝에 선택한 건축가가 바로 A였다. 그의 과거 건축물들도 아름다웠고 무엇보다 유럽에서 유학생활을 해서 우리가 원하는 유럽식 건축물을 잘 이해해 줄 것이라 기대했다. 


계약을 한지 얼마 지나서 A는 우리에게 건축 디자인 첫 안을 보여주었다. 


그의 반응은 '너무 아름답다' 였고, 우리의 반응은 "너무 어렵다"였다.


여러 수식어가 붙어있었지만(우리가 만난 많은 건축가들은 의상 디자이너들 만큼이나 추상적인 단어로 설명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같은 평균 사람들에게는 너무 어렵다),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건축에 대한 지식이 없는 우리에게는 그냥 ‘유리같이 예쁘다’ 같은 느낌이었다. 현대적인 도심에서나 볼 듯한 상징적인 건물이었다.


건물의 모든 외벽이 유리로 되어 있고 주위 환경은 산림 가득한 녹지이니 제안된 건축물은 흡사 미래에서 온 우주선이 산골 언덕에 사뿐히 착륙한 모습 같았다. 돌이켜 보면 오늘날 시내 곳곳에 투명 유리 외벽의 건축물들이 건축잡지에 종종 등장하는 것을 보면 A가 시대를 앞서 나갔고 우리는 그의 아방가르드적인 생각을 이해 못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시 우리는 건축물의 목적와 의미를 이해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건축을 주거의 공간이라는 목적으로 이해한 우리에게 건축물이 가진 매우 특별한 아름다움은 큰 설득력을 가지지 못했다. 


유리 외관으로 건축된 애플 본사 사옥. 우리의 전원 주택도 이런 느낌이었다.

A가 디자인한 집은 곡선 파사드( 파다드 :건축물의 정면 외벽)와 평면 파사드가 혼합된 2층 건축물이었다.모든 파사드를 투명 유리로 만들어서 내부를 훤히 보이게 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건물의 전면은 물론 내부의 화장실 벽도 모두 유리로 만들어 구획을 나눈다는 계획이었다.  화장실 벽면마저 유리로 한다니... 정말 대단한 파격이었다. 


제주도 유리 테마 공원에 가면 실제로 유리 화장실이 있다고 한다. 


아름답긴 했으나 집으로서는 알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IT 회사나 박물관, 전시장같은 용도로 알맞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건축물 디자인을 받아 든 부모님과 나는 고민 끝에 A의 첫 디자인을 거절했다. 


가장 큰 이유는 집의 기본 적인 기능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집은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휴식을 취하는 곳인데 A가 제안한 유리 건축물 디자인은 그런 기본적인 목적을 충족하기 어려워 보였다. 유리 건물은 단열, 방음, 사생활 보호와 같은 집의 기본적인 목적 어느 것에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친환경 기능에 지중하는 외벽 유리들이 많다고 하는데 당시에는 콘크리트 벽보다 단열 기능이 좋지 않았다.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울게 분명했다.  


유리를 통해 외부에서 내부가 보인다는 점도 큰 스트레스였다. 유리벽을 바라보고 마음 편하게 살기 어려울거 같았다. 집에 돌아와 벽지나 페인트 벽에 평생 기대어 살아오신 들이기에 투명 유리벽은 너무 낯선 환경이었다. 


건축비가 높다는 것도 문제점이었다. 외벽 유리는 창 유리보다 비싸다. 유리재 자체에 여러 기능들이 내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자외선 차단 기능은 기본이고 단열 성능을 기대하며 아르곤 가스를 주입한 이중 유리의 가격은 장당 천만원을 넘는 제품도 많다. 정말 비싸다. 만약 곡선이나 대형 유리를 주문 제작하는 경우 비용은 더욱 증가한다. 경제성이 전혀 없는 선택이었다.


A가 제안한 디자인은 창의적이고 아름다웠다. 


하지만 우리에게 꼭 필요하고 적합한 주거의 기능은 더 채워질 필요가 있었다. 적어도 주거인의 입장에서는 그런 의견이었다. 


건축가는 예술품을 원했고 건축주는 집을 원했다


결국 우리는 A가 제안한 첫 건축 디자인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집을 다시 디자인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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