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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밍 Nov 14. 2019

[비행일기] 3관왕 쿠나르, 긍정왕 쿠나르

인도에서 온 승무원 쿠나르는 갤리에서 내가 카트의 문을 열자 “으앗!”하는 소리를 내지르며 뒤로 발랑 넘어졌다. “어머, 미안해! 괜찮아?” 라는 나의 다급한 목소리에 그는 툴툴 털고 일어나 씨익 웃는다. 그렇다. 또 장난이다. 하루짜리 발리 턴 비행에 무슨 장난을 그리도 많이 치는지.

그는 킹피셔 항공, 카타르 항공을 거쳐 현재 캐세이에서 일하고 있는 능력자다. 면접에 한 번 합격하기도 힘든데 세군데를 다 합격했다니. 능청스러운 그의 성격을 보아하니 세 번 합격 했을 만하기도 하다.

“카타르는 일하기 어땠어?” 라고 묻자 “정말 재미있었어!” 라고 대답한다. 승진이 빠른 카타르는 사무장과 일반 승무원이 나이차이가 크게 나지 않아 서로 농담 하면서 장난 치고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일한다고 한다. 서양, 중동, 인도 크루들이 많은 회사 분위기 덕도 있을테고. 캐세이는 위계질서 확실한 한국 회사에 비하면 자유로운 편이지만 아무래도 동양권의 회사다보니 카타르에 비하면 사관학교가 따로 없는 모양이다.  

쿠나르가 카타르에서 일할 때 한번은 막 승진한 사무장을 골려주기 위해 기장과 부기장과 짜고서는 조종실로 사무장을 호출해 다급한 목소리로 부기장이 피를 토한다며 유리컵에 토마토 쥬스를 담아서 줬다고 한다. 당황한 그녀는 기내를 뛰어다니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고 다시 생각해봐도 너무 즐거운 듯 깔깔 웃으며 무용담 전하듯 이야기한다. 또 한번은 퍼스트 클래스의 선반이 매우 큰데 거기에 사람이 들어갈 수 있을까 궁금해 하던 사무장에게 들어가 보라고 하고 문을 닫아서 가두어버렸다고. 그러면서 “카타르는 정말 재미있었지!” 라고 다시 한번 회상하며 감탄한다.

그 모습이 웃기기도 하고 귀엽기도 해서 장난을 계속 받아줬더니 자꾸만 나에게 장난을 친다. 이런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일하는 것, 나도 항상 이런 회사 분위기를 꿈꿔왔지만 4-50대의 사무장과 20대의 일반 승무원이 서로 장난치며 일하는 자유로운 분위기는 아직 약간의 유교 문화가 남아있는 동양권 회사인 캐세이에서는 상상하기 힘들다. 쿠나르도 상대 안가리고 계속 저런 장난을 치다가는 한번 된통 혼날 것 같다.
 
“리앤, 너 왜 그렇게 빨리 결혼했어? 나 한국 여자 진짜 좋아하는데 아쉽다.” 라는 그에게 “야, 내가 지금 결혼 안했으면 너랑 데이트 할거라는 그런 자신감은 대체 어디서 나오니? 나 너랑 데이트 안할건데?” 라고 받아치자 “난 매우 긍정적인 사람이거든. 넌 만약 결혼 안했으면 왜 나랑 데이트 안할건데?” 라고 되묻는 번죽 좋은 크루다.  

쿠나르의 장난이 점점 심해진다. 차를 담아달라는 승객의 보온병에 자꾸만 땅콩을 넣자며 조른다. “쿠나르, 그건 좀 심한 것 같아” 라고 정색해도 막무가내. 너 이러다 한 번 진짜 큰일나겠구나. 쿠나르 덕분에 왕복 10시간에 가까운 긴 발리 턴 비행이 재미는 있었는데 캐세이에서의 그의 미래가 걱정된다.
그렇지만 한번 시니어 승무원에게 크게 혼나더라도 쿠나르라면 밟아도 훌쩍 일어나는 봄철 산의 쑥처럼 특유의 긍정의 힘으로 툭툭 털어낼 것이다. 그리고 낄낄거리며 시시한 장난을 계속 이어나가겠지. 쿠나르라면 조금은 안심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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