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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밍 Nov 14. 2019

[비행일기] 호랑이 연고의 따뜻함

사우디아라비아의 리야드로 향하는 비행기 안. 첫 번째 서비스를 마치고 크루 레스트 시간에 단잠을 자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속이 쓰리고 아파서 잠에서 깨 한참을 배를 문지르고 엄지 손가락을 누르다 도저히 견딜 수 없어 화장실로 달려가 구토를 했다.


레스트가 끝나면 바로 두 번째 서비스인데 누군가 위를 움켜쥐듯이 아파서 허리도 꼿꼿이 펼 수 없을 정도였다. 첫 번째 서비스가 끝나고 급하게 먹은 페투치니가 문제였나 보다. 그렇게 통증이 확 왔다가 사라졌다가를 반복했지만 어쩔 수 없이 서비스를 시작했다. 오늘 나의 시니어 퍼서 비타가 일하지 말고 앉아서 쉬란다. “정 아프면 가서 좀 누워있을래?” 하고 배려해주었지만 다른 크루들이 일하는데 혼자 누워있기가 민망해 괜찮다며 다시 서비스. 그러다가 위경련이 나면 화장실로 달려가 또 구토. 그렇게 세 번을 반복하자 얼굴에 울혈이 올라오고 오한이 들어 몸이 떨린다. 비타는 홍콩식 민간 요법이라며 호랑이 연고에 뜨거운 물을 타주고 냄새를 맡고 있으라고 한다. 비타의 따뜻한 배려덕분인지 크루싯에 앉아 호랑이 연고 냄새를 맡고 있자 다행히도 위경련이 좀 잦아든다.


이렇게 기내에서 심하게 구토하고 아파본 적은 처음이다. 물론 비행 1년만에 속쓰림과 시린 무릎은 획득했지만, 4년차에 위경련까지 획득이다. 불규칙한 식생활과 수면 패턴이 분명 문제일게다. 비행을 하기 전에는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아침 8시 전에 일어나고 밤 12시 전에 자고, 삼시세끼 꼬박꼬박 챙겨먹는 규칙생활을 했었는데 비행을 시작하고 나서는 밤비행이 있으면 점심 든든히 먹고 바로 누워서 자고, 기내에서 서비스가 끝난 후에는 배고프니까 아침, 점심 개념 없이 아무 때나 식사하고, 승객들이 찾기 전에 빨리 식사를 끝내야 하니까 급하게 먹고, 이렇게 적고 보니 위가 안 아플래야 안 아플 수가 없구나.


언젠가부터 아웃포트에서 현지시간으로 이틀 이상을 보내면 몸이 어떻게든 아프기 시작했다. 감기에 심하게 걸린다던지, 장염에 걸린다던지 하는 식으로. 그래서 아웃포트에 나가면 하루는 현지 시간에, 하루는 홍콩 시간에 맞춰 지내면서 나름 페이스 조절을 한다고 했는데 가장 중요한 식생활은 멋대로 했던 것이 문제였던 것 같다. 나는 비행 하는 것이 참 좋은데 장수하는 승무원이 되려면 건강관리를 더 철저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시간 지켜 식사하고, 자기 전에는 많이 먹지 말고, 건강에 좋은 음식 챙기고, 운동도 더 열심히 하고.


그나저나 비행 내내 나를 챙겨주고 신경써준 비타에게 참 고맙다. 크루 한명이 아프면 나머지 크루가 아픈 크루의 몫까지 일해야 해서 더 힘들고 짜증이 날 수도 있는데 진정한 시니어의 모습으로 아픈 나를 감싸준 비타. 비행을 하다보면 참으로 다양한 군상의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승객뿐만 아니라 크루들도. 나중에 나이 들어서 저런 시니어는 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크루도 많은데, 비타는 닮고 싶은 참 시니어의 모습이다. 타지에서 아프면 참 서러운데 그런 나를 배려해주고 챙겨주어 감사한 마음 가득이다. 음꼬이 싸이 아제! (고마워 언니!) 라고 수십번 그녀에게 전해본다. 고맙다는 단순한 말로 내 마음이 잘 전해졌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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