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이러지 않았다

by 박지선





















































처음부터 이러지 않았다. 나도 아기에게 전적으로 전념할 때가 있었다. 아기의 울음소리에 마음 아파 같이 운 적도 많았다. 나는 제왕절개로 아이를 낳았다. 수술 후 나는 병실로 옮겨졌고, 남편과 내 부모만이 아이를 보러 갔다. 남편은 신생아 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아이를 카메라로 찍어서 내게 보여줬다. 동영상 속 아이는 눈가에 눈물이 고인 채 울고 있었다. 입을 이리저리 뻐끔거리며 배고프다는 듯, 밥 달라는 것처럼 울고 있었다. 임신했을 때 내가 점심 먹던 딱 그 시간이었다. 아기 새처럼 밥 달라고 하는 그 입모양이 너무 귀여웠다고 한다. 동영상 속 다른 가족들이 귀엽다며 크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난 소리쳤다. 애가 우는데 뭐가 웃기냐고, 왜 그렇게 웃고 있냐고! 애가 배고프다는데, 힘들다는데 웃음이 나오냐고 병실에서 소리쳤다. 수술 마친 그날 오후 바로 일어서서 걷기 연습을 했다. 아기를 빨리 안아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난 아직도 제왕절개 수술이 아팠다는 기억이 별로 없다. 그만큼 아기 생각밖에 안 했던 것 같다.


그 후 한 달 동안 높은 각성 상태가 돼 피곤한 줄도 모르고 살았다. 첫 한 달은 잠을 많이 못 자도 자고 싶다는 생각을 안 했다. 그때 알았다. 내가 몹시 불안해하고 있다는 것을. 이 작은 아이가 잘못될까 봐 노심초사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처음 느끼는 낯선 상황이었다. 내 몸이 어떤 상태인지 자각하지도 못할 정도로 누군가에게 집중했던 일은 이제껏 단 한 번도 없었는데.



신생아. 나도 내 아이를 낳고서야 신생아를 처음 접했다. 작아도 이렇게 작을 수 있나 싶었다. 반대로 생각하면 저 정도 작아야 분만이 가능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얼굴은 그나마 만질만 한데, 속싸개 안에 있는 앙상한 팔다리를 보면 어떻게 움직이나 싶었다. 만지기도 무서웠다. 내 손으로 잡기라도 하면 부러질까 싶어서.



아기가 태어난 지 한 달이 지난 후에야 긴장이 조금 풀렸다. 아직도 그 느낌이 기억난다. 이제 좀 장난 좀 칠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기분이었다. (그 시기 아이가 배고프다고 울 때 젖병을 아기 입에 대고 줄까 말까 장난치는 남편을 정말 증오했다. 아기가 밥 달라고 입을 벙긋하는 게 귀엽다고 했다.)



태어난 지 1년을 딱 채우기 전까지는, 이제 좀 사람 됐다 싶기 전까지는 나도 걱정 많은 엄마였다. 알레르기 체질이라 태열로 오랫동안 고생하고 이유식 먹기 시작하면서는 음식 알레르기 때문에도 고생했다. 이런 모든 것들이 이후에 아토피로 번져가면 어떡하나 두드러기 날 때마다, 불안이 확 엄습해왔다. 그때마다 닥터.장에게 바로바로 물어봤다. 아이가 아파 병원에 가기도 전에, 119 의료상담센터에 전화하기도 전에 바로 닥터.장에게 문자부터 남겨놨다. 불안이 올라오면 계속해서 확인받기 위해 문자를 남겼다. 괜찮을까? 괜찮겠지? 괜찮다는 말을 듣기 위해 수없이도 물어봤다.



내가 우울해서 아이에게 아무것도 못해줄 때마다, 토요일마다 남편에게 아이 맡기고 일나가는데 아이가 자지러지게 울 때마다. 엘리베이터 기다리는 동안 그 울음소리가 잦아들지 않는 것을 들으며 한 걸음 한 걸음 떼는 게 어려울 때마다. 내 분에 못 이겨 그 작은 아이에게 화낼 때마다. 누다심, 수풀에게 물었다. 같은 일도 반복해서 확인받았다. 괜찮다고. 괜찮다고.




내가 믿고 있는 그들에게 묻고, 괜찮다고 확인받고, 안심하고. 이 일을 1년 내내 하루에도 몇 번씩 하는 동안, 아이는 점차 커갔다. 말도 하게 되면서 의사소통이 더 잘 되니 내 걱정이 점차 사라지기도 했다. 그리고 신체든 정신이든 걱정했던 것보다 큰 문제 안 생긴다는 것을 1년, 2년 몸소 체험해가니 그들의 괜찮다는 말이 더 와닿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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