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로부터 답을 찾는 브랜드, 네이버
퇴근길에 인스타그램을 넘겨보던 어느 날, 팔로우해둔 '최인아책방'에서 네이버 <1784 THE TESTBED> 책으로 무료 북토크를 연다는 소식을 보았다. 오?
동네책방과 네이버. 언뜻 생각해 보면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IT 업계의 최첨단을 달리는 공룡 기업 네이버와, 쿰쿰한 골동품 향기가 날 것 같은 아날로그한 책방의 만남이라니. 대규모 컨퍼런스홀이 아니라 30명 남짓 소박하게 초대하는 북토크라니. 의외의 조합에 군침이 삭 돌았다. 선착순 무료라는 말에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이름 짓기에 진심인 기업, 네이버
어느 날의 저녁. 서점의 묵직한 공기를 깨고 북토크의 문이 열렸다. 1부는 네이버의 인터널브랜딩을 담당하는 강새봄 연사님의 <1784 THE TESTBED> 소개로 시작됐다. 책의 제목이자 동시에 네이버 제2 사옥의 이름.
1784, THE TESTBED. 이 이름은 산업혁명이 시작된 해인 1784년, 그리고 해당 사옥의 지번인 '정자동 178-4'에서 따온 숫자라고 했다. 흥미로운 건 그 뒤에 붙은 TEST BED였다. 일하는 사람들이 계속 도전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자극하고 지원하는 플랫폼이 되라는 의미를 담아 테스트베드라 이름 지었단다. 이름처럼, 지금도 네이버 1784에서는 다양한 도전과 실험이 계속된다.
이름이 곧 이 건물의 목적이자 동시에 희망사항과 같았다. 그 안에서 생활하는 구성원들의 역할, 미래에 대한 기대까지 두루 품어낸 멋진 이름이란 생각이 들었다.
알고 보니 네이버는 그동안 이름 짓기에 굉장히 진심인 브랜드였다. 팔만대장경을 보관하던 장경각에서 따온 데이터센터 '각'부터, 직원 연수원 '커넥트원' 그리고 기존 사옥 '그린팩토리'까지...단 하나도 허투루 지은 이름이 없었더라.
이름 짓기, 즉 네이밍은 기획하는 사람 입장에서 여간 부담되는 일이 아니다. 처음 지어두면 중간에 바꾸기도 어렵고, 부르기 쉬우면서 의미를 담아내는 작업은 고도의 인지적 능력을 필요로 한다. 나는 브런치북 제목 하나 짓는 것도 며칠을 골몰하는데.. 역사에 남을 건물의 이름을 탄생시키는 작업이라니. 1784 더 테스트베드라는 이름을 세상에 내놓기까지 긴긴 여정이, 감히 상상조차 되지 않더라.
놀라움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브랜딩은 발견하는 것. 사용자로부터.
2부는 세 분의 연사님을 모시고 진행됐다. 기획, 개발, 디자인을 대표하는 영역의 리더분들이 나와서 청중의 질문을 받고 답변을 진행했다.
사전에 빠르게 훑어본 <1784 THE TESTBED> 책. 그중에서도 나의 눈길을 끄는 부분이 있었다. 바로 네이버의 사옥에는 살짝 기울어진 사이니지(표지판)이 있다는 것!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공간은 반듯하게 사이니지를 붙인다. 그러나 네이버는 실제로 그 공간으로 가는 방향에 맞게 일부러 비스듬하게 사이니지를 설치했다. 사용자가 실제로 길을 찾는 과정에서 헷갈리지 않도록, 기존의 관행을 깨고 더 편리한 방향을 찾아서 실행하는 셈이다.
나는 손을 들어 궁금했던 질문을 던졌다. "네이버는 어떻게, 직원들의 진짜 불편을 수집하셨나요?" 사실 질문의 의도가 잘 전달이 되지 않은 탓인지, 당시에는 만족할만한 답변을 듣지 못했다. 그런데 밖에 나와서 네이버 강새봄님의 인터뷰를 조금 더 찾아보고 비로소 알게 되었다.
브랜딩이란, 정체성을 발견하는 것이죠. - 네이버 인터널브랜딩 책임리더 강새봄
그는 다른 매체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내내 <관찰>과 <발견>이라는 키워드를 자주 사용했다. 네이버가 말하는 사용자의 진짜 불편을 수집하는 방법. 그 비결은 이랬다.
1) 기획을 시작하기 전, 데이터를 가장 먼저 본다. 최대한 많이.
2) 사원-임원-대표까지 심층 인터뷰를 여러 번 한다.
3) 이 사이클을 몇 년 반복한다.
4) 니즈 중 겹쳐지는 것을 '발견'한다.
정량 데이터 - 심층 인터뷰. 그리고 지독한 반복. 여러 해를 걸치며 겹쳐지는 내용을 발견한다면, 그것은 진짜 니즈라는 의미였다.
흔히 '고객은 원하는 것을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네이버는 사용자를 향해서 본질적인 니즈를 찾기 위해 고민했다. 그들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데이터를 해석하고 인터뷰를 반복했다. 이것을 여러 번 반복하며 교집합을 찾아내어 발견하고 있었다. 고객이 스스로 말하지 않는 진짜 니즈를.
머리를 탁! 치는 순간이었다. 브랜딩은 새로운 걸 만드는 게 아니라, 발견하는 거구나. 알아차리는 거구나. 나는 늘 갈망해 왔다. 멋 부린 기획이 아니라, 한철 잠깐 반짝하는 크리에이티브가 아니라, 진정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불편을 개선하고 10년 후에 봐도 촌스럽지 않은 그런 기획을. 이번 네이버 북토크에서 만난 세 연사님들의 답변, 그들의 말을 통해서 조금의 힌트를 얻은 기분이 들었다.
96년생. 나와 네이버의 역사는 '쥬니어 네이버' 시절부터 시작된다. 친구들과 동물농장과 슈게임을 하면서 방과 후 시간을 보냈다. 방학숙제로 첫 이메일 주소를 만들어서 처음 부모님과 메일을 나누기도 하고, 조금 커서는 좋아하는 가수의 팬 카페에 가입해서 온갖 흑역사를 남겼다. 그렇게 자라났다.
성인이 된 지금도 여전히 초3 때 만들었던 같은 아이디로, 네이버를 사용한다. 요즘에는 네이버페이로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사고, 후기를 열심히 써서 적립금을 모은다. 쉬는 날이면 쿠키를 구워 웹툰을 보거나, 가고 싶은 맛집을 지도에 저장해 두었다가 친구들과 찾아간다. 그렇다고 네이버를 좋아하고 사랑하는가? 그건 아니었다. 그냥 다들 많이 쓰고, 오래 썼고, 익숙하니까. 항상 거기에 있었으니까 썼을 뿐이었다.
서비스 뒤에 사람 있어요
만드는 사람들을 직접 마주하는 경험
그런데 네이버, 그날의 북토크 이후로 달라졌다. 내가 만난 세 사람의 얼굴을 포함해서 서비스 뒷단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그려졌다. 각자의 책상에서 골몰하며 일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직원들이 사용하는 사옥을 만들면서 이 정도까지 고민했다는 건? 반대로 사용자들을 위해서라면 더 넓고 깊은 고민을 마다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된다.
네이버가 만들어가는 섬세한 사용자 경험. 눈에 잘 띄지도 않고, 과하지도 않은 방식으로 늘 네이버는 나의 삶을 조금 더 편리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16년 넘게, 살아온 세월의 2/1 이상을 네이버 유저로 살아올 수 있었던 건 내가 둔해서가 아니라 네이버가 민감해서였다. 예민한 나보다 더 빨리 움직여서, 사용자가 불편함이 느껴지지 않도록 만들어준 덕택이었다.
단지, 단 하루. 네이버가 만든 공간 이야기를, 그걸 만든 직원들의 입을 통해서 직접 들었을 뿐이다. 그런데도 생활 속에서 네이버를 접하는 감도에서 이전과는 다른 온도감이 느껴졌다. 네이버가 쌓아 올린 진심이 어느샌가 닿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