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럽을 셀럽답게 활용한 브랜드, 스픽
네버다이 이효리. 여왕봉과 왕관은 2024년에도 여전히 효리언니의 것이다. 올해 겨울 강남역으로 출퇴근하면서 효리 언니의 얼굴을 유난히 자주 마주쳤다. 그녀가 다시 광고 활동 재개를 선언하면서 여러 브랜드에서 앞다투어 이효리를 모델로 고용했던 것이다. 그러나 수많았던 광고 중에서도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건 몇 없다. 안타깝지만 현실이다. 사람들은 뭐든지 빨리 잊기 마련이니까.
그중에서도 내 머릿속에 하나의 브랜드만은 확실히 남았다. 이효리의 영어앱, 스픽(Speak)이다. 수많은 영어 학습 브랜드 중에 요즘 가장 폼 좋은 행보를 보이고 있는 스픽. 2024년 시작과 동시에 이효리 프로모션으로 대중에게 '스픽' 두 글자를 강렬하게 남기는 데 성공했다. 인상적이던 스픽의 이효리 프로모션을 되돌아본다.
뻔한 무료체험이겠지, 뭐.
스픽을 처음 알게 된 건 인스타그램 계정 운영 맛집이라는 소문을 듣고 나서였다. 나도 우리 브랜드의 공식 계정을 운영하는 마케터로서 잘하는 곳이 있다면 반드시 팔로우를 하고 둘러본다. 그중 눈에 띈 하나의 포스팅. '연말을 맞이해 선착순 10만 명에게 스픽을 무료로 제공한다'는 소식이었다.
무료 + 선착순. 마음이 조급해져서 참을 수 없는 조합이다. 곧 새해가 되니까 영어공부 제대로 해보자 싶어서 잽싸게 손가락을 움직였다. 스픽 앱을 설치하고, 로그인하고 무료 이용을 시작했다. 체험판 3일 차, AI 튜터라는 존재가 나의 답변에 맞추어서 실시간으로 맞춤형 레슨을 제공하는 경험이 상당히 신선했다. 사람이 아닌 AI와 영어를 공부하는 시대가 오다니.. 예상보다도 너무 괜찮은 서비스 퀄리티에 마음이 들썩거렸다.
그러나, 그땐 12월이었다. 하루 건너 하루가 연말모임과 술자리였다. 퇴근하고 사람들 만나고 먹고 마시고 웃으면서 집에 와선 스르륵 잠에 빠졌다. 스픽이 불꽃(일종의 출석체크 개념)이 꺼졌다. 자연스럽게 스픽도 함께 잊혀져 갔다.
여기저기 스픽이 보인다.
효리언니와 함께
잊혀진 스픽이 다시 돌아왔다. 효리 언니와 함께! 영어 교육 업계의 가장 큰 대목인 1월 연초를 맞이하여 스픽은 이효리라는 빅모델을 고용하고 대대적인 프로모션을 벌였다. 폰으로 포털에 접속해도, 거실에서 TV를 틀어도, 강남역 길거리를 걸어도 이효리와 스픽이 보였다. 아침마다 걷는 강남역 11번 출구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매일 효리 언니를 만났다.
"영어는 틀려야 트인다"라는 카피는 신선하고 강렬했다. 같은 말도 효리 언니가 말하니까 왠지 설득력이 있었다. 어디서든 당당한 그녀가 아닌가. 그런 언니가 영어는 마음껏 틀려보라고, 그래야 현실에서 트인다고 얘기한다. 나도 새해부터는 틀려보고 싶어졌다.
스픽과 이효리. 일단 모델과 제품의 상관관계 자체가 너무나 그럴싸했다. 구구절절 설명이 필요 없는 찰떡 조합이었다. 여기에 스픽 인스타그램 담당자가 오래전부터 이효리가 좋아서 그녀의 게시물마다 쫓아다니면서 댓글을 달았다더라 - 하는 스토리마저 더해지니까 더욱 개연성이 느껴졌다.
어느 날 띡 등장해서 소비자가 보기에도 어색한 광고모델이 얼마나 많았던가. 손에는 짜장라면, 감자칩 봉지를 들고 있지만 왠지 그들은 집에 가선 트러플 뿌린 샐러드에 까베르네 소비뇽을 먹을 것 같았다. 그러나 이효리와 스픽은 달랐다. 횰 언니는 정말 스픽을 잘 쓸 것만 같이 느껴졌다. 착 붙는 빅모델을 선정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스픽은 디지털부터 오프라인까지 다양한 광고 채널을 선점했다. 아낌없이 이효리를 쪽쪽 빨아먹,, 아니 활용했다.
결과는? 그해 영어회화 브랜드 인지도 조사에서 스픽이 1위를 차지했다.
마케터로서 일터에서 매일 결정의 순간들을 마주한다. 제품의 룩앤필에 맞는 모델을 선정한다거나, 화보 사진의 여러 컷 중에서 A컷을 선정한다거나. 실무자 개인의 여러 선택들이 모여서 소비자가 만나는 브랜드가 만들어진다.
"돈이 많으면 좋았을텐데. 우리도 빅모델을 썼으면 잘 됐을 텐데"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그러나 속으로는 내심 불안한 마음이 있다. 100억 주고 빅모델 데려온다고 무조건 인지도가 높아지는 건 아니니까. 누구나 아는 셀럽이라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서 결과물은 천차만별 달라진다. 그런 면에서 스픽과 이효리의 만남은 공부해 볼 가치가 있었다.
매일 강남역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효리언니의 달콤한 꼬드김을 못 이긴 나. 결국 3개월 동안 매달 2만 원씩 정기결제를 하면서 스픽의 유료 유저가 됐다. 나를 보고 본인도 시작한 남자친구는 나보다 더 꾸준히 하더니 .. 결국엔 티셔츠까지 받으면서 연말이 된 지금도 여전히 스픽을 사용하고 있다. 틀려야 트이는 세상으로 우리는 들어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