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를 응원하는 브랜드, 브런치 스토리
두 손가락보다는 열 손가락으로,
열과 성으로 글을 쓰는 사람들이 우리의 타겟
브런치 스토리(당시 브런치) 서비스를 처음 기획했던, 서비스 기획자의 회고 글에서 발견한 문장이다. 2015년에 발행된 글이지만, 시간이 꽤나 흐른 요즘에도 브런치는 여전히 처음 그때처럼 열 손가락으로 글을 쓰는 사람을 위한 일을 한다.
영상과 AI의 시대에서 묵묵히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브랜드, 오늘은 브런치 스토리에 대한 나의 경험담이다.
재미없는 채널, 브런치 스토리
계정을 가지고도 꽤 오랫동안 방치해 두었다. 나의 브런치. 아주 오래간만에 이곳에서 글을 쓰고 있는 요즘이다.
고백하자면, 내게 브런치는 재미없는 플랫폼이었다. 3-5시간 머리를 싸매면서 열심히 글을 써도 발행을 누르면? 겨우 10명 남짓한 조회수가 찍혔다. 반응이 없으니 흥이 나지 않았다. 추측컨대 폐쇄적인 구조 때문인 것 같았다. 검색어 키워드만 잘 잡으면 외부에 노출이 잘 되는 다른 플랫폼과 달리, 브런치는 한 자릿수 조회수를 맴돌았다.
읽어주는 사람이 없는 글쓰기는 외롭다. 쓸쓸한 동네에서 나 홀로 이야기를 외치고 있자니, 허무한 마음이 들어서 점점 브런치와 멀어졌다.
다시 사람들이 브런치를 찾기 시작한다,
성수동 팝업
여느 때처럼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하염없이 넘겨보던 날이었다. 몇몇 사람들이 '브런치'를 언급하고 있었다. 특히 사원증 ID카드 형태의 작가 카드 인증샷이 많이 보였다. '어랏? 브런치에서 뭔가를 하는가보다. 사람들이 다시 브런치를 찾나보다.' 급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찾아보니 성수동에서 브런치 팝업이 열리고 있었다. 평일 퇴근 후 방문해 보기로 하고 카카오 예약하기를 이용해 신청을 해두었다.
"작가님 들어가십니다~!" 입구에서 브런치 계정 인증 후 쩌렁쩌렁한 스텝의 목소리와 함께 입장이 시작됐다. 마음이 이상했다. 타인의 목소리를 통해서 작가라고 불리는 일은 처음이었다. 사실 미디어 에디터로 사회생활을 시작해서 3년을 일했지만, 스스로 내가 작가라고 생각해 본 적은 하루도 없었다. 작가라는 퀘스트는 미처 깨지 못하고 다른 테마맵으로 건너뛰기를 눌렀다고 생각했다. 그런 나를 작가라고 불러주는 곳은 이곳이 처음이었다.
<chapter.02 계속 쓰면 힘이 된다> 코너가 하이라이트였다. 브런치를 통해 세상에 알려진 여러 작가들이 글을 쓸 때 사용하는 도구, 초안 노트, 글쓰기 꿀팁, 작가로서의 궤적을 엿보는 코너. 나에겐 <90년생이 온다> 책의 주인공 임홍택 님의 이야기가 와닿았다. 내 심장을 뽀려갔다. 직장인으로서 꾸준히 쓰고 도전하고 두드리면 기회가 오겠다는 희망이었다. 모니터 화면 너머로 스크롤하면서 읽는 일반 기사와 달리, 같은 이야기라도 물성이 느껴지는 실제 물건과 함께 접하니까 훨씬 생생하게 감각으로 와닿았다.
'계속 쓰면 힘이 된다' 이곳에 모인 작가들은 입을 모아 나에게 말을 건네고 있었다. 그들도 해냈고, 나도 할 수 있다. 이런저런 핑계 댈 것 없이 일단 써보자. 퇴근 후에 쓰자. 다짐했다.
흠, 그런데 어떤 이야기를 쓰지?
하나의 브런치북을 완성하는 일
다시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한다면 어떤 이야기가 좋을까. 그때, 내 손에 쥔 워크북이 보였다. 팝업에 입장할 때 ID카드와 함께 나누어준 그것이었다. 쓱 보니까 질문도 많고 빈칸도 많고, 채워야 할 게 많아 보여 어지간히 귀찮았다. 근데 팝업 공간을 둘러보니 사람들이 색색깔 펜을 들고 되게 진중한 얼굴로 하나둘씩 칸을 채워가고 있었다. '나가기 전에 나도 이거나 먼저 써볼까' 싶어 자리에 앉아 펜을 들었다.
마침 제12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가 열리고 있었다. 새로운 작가의 탄생을 기원하면서 브런치가 여러 출판사와 함께 운영하는 일종의 공모전이다. 나만의 브런치북을 만들고 응모하면 수상작은 실제 책으로 출판이 된다. 오호라, 솔깃했다. 욕심이 났다. 문제는 무슨 글을 써서 브런치북을 응모할 것이냐, 그것이 고민이었다. 워크북을 현장에서 작성하다가 <발견>이라는 키워드를 겨우 하나 생각해 내고 집으로 왔다.
돌아와서도 한동안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 추가로 찾은 키워드가 <브랜드>와 <터치포인트>였다. 그동안 나는 '브랜드 리뷰'라는 카테고리로 블로그에 글을 써왔다. 내가 실제로 써보고 좋았던 브랜드, 좋았던 공간이나 전시, 서비스를 이용해 보고 느낀 점 등을 단편으로 써서 가끔 올렸다. 그때 기록해 둔 여러 브랜드와의 경험들을 모아서 하나의 맥락으로 재편집한다면, 충분히 브런치북을 완성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발견한 브랜드와의 터치포인트] 나의 첫 브런치북의 테마가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힘은 어떻게 설계하는가. 브랜드 마케터로서 공간이나 캠페인, 이벤트를 기획할 때마다 늘 고민했다. 답을 찾고 싶은 마음에 늘 고민하고 종종거리면서 남의 뒤꽁무니를 좇아 다녔다. 그러다가 멈춘 게 이번이다. 일단 내 마음부터 분석해 보자. 나도 누군가의 소비자로서 분명히 내 마음을 요동치게 만들었던 순간들이 있었다. 찰나의 순간. 브랜드를 좋아하게 만들었던 첫 만남을 역으로 되짚어가면서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마음을 움직이는 방법을 어쩌면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브런치 스토리는 나를 너무나도 움직였다. 2-3년 동안 최신글을 발행하지 않고 멈춰있던 작가. 휴면 계정과 다를 바 없던 유저를 다시 브런치라는 플랫폼에 유입시키고 글을 쓰게 만들었다. 매일 퇴근하고 너덜너덜해진 체력으로 돌아와서는 (누워서 릴스 넘기다 자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다시 책상 앞에 앉아서 노트북 커버를 열고 키보드를 타닥거리게 만들었다. 리텐션 숫자가 0에서 1로 변하기까지, 나의 퇴근 후 일상은 꽤 많이 달라져 있었다.
모든 시작은 성수동의 작은 팝업과 그 안에서 머물렀던 30분가량의 시간이었다. 작가라는 호명, 먼저 성공한 사람들의 여정, 펜과 노트. 작은 장치들 하나하나가 모여서 사람들의 마음 속에 브런치북의 씨앗을 던졌다. 마침내 새싹이 움트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