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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슈타르솔 Feb 15. 2023

2023년 2월 15일 수요일

상실에 대처하는 자세

 간밤에 배가 너무 고팠다. 사는 곳 주변이 전부 치킨집 아니면 술집밖에 없어서 오고 가면서 늘 시각적인 자극에 노출된다. 술을 좋아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다. 술을 좋아했더라면 식습관이나 생활습관이 굉장히 망가져있었을 테다. '자극적인 음식이 가능하면 눈에 안 띄게 할 것', '인간은 자극에 반응하는 생물'.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옛사람들의 말이 확실히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말인가 보다. 주말에 치킨과 감자튀김, 매운 만두튀김을 잔뜩 먹었기 때문에, 양심상으로라도 도저히 무언가를 사서 들어가기 싫었다. 하지만 마음속 깊이 자리 잡은 공허감과 상실감 때문에 뭐라도 사고 싶어서 편의점으로 들어간다.

순수 단백질에 극소량의 탄수화물이 들어간 RTD(READY TO DRINK) 음료가 2+1 행사 중이다. 6통을 계산한다. 훌쩍 만 원이 넘어간다. 귀찮더라도 얼마 전에 사놓은 단백질 보충제를 먹는 게 나을 것 같다.


 작년 가을에 살던 곳에서 코로나에 걸린 후로 두어 달 가까이 기분이 우울하고 컨디션이 몹시 좋지 않았다. 마치 기르던 반려견이 먼 곳으로 갔을 때처럼 삶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 마음 어디엔가 뚫려버린 금 사이로 조금씩 끊임없이 쓸려나가는 기분이었다. 그와 비슷한 감정을 지금도 느끼고 있다. 벌써 4일째. 주변인들로부터 성심 어린 위로도 받고 스스로 다짐도 해보지만 여느 '돌솔'들과 마찬가지로 매우 찌질하게 이불속에서 훌쩍이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나마 4일 중에 하루는 운동을 나갔는데 힘이 안 나서 평소 운동하던 강도의 70% 출력도 못 낸 것 같다. 그래도 목표치(개수)는 다 채우고 운동을 마쳤으니 죄책감은 덜고 성취감은 더했다. 

 나의 어머니는 심각한 중병일 수도 있는 검사결과를 내일 받아보게 된다. 애인의 부모님도 요즘 몸이 안 좋아지셔서 심적으로 의지하려 하신다는 말을 이따금씩 듣곤 했다. 아참 애인이 아니라 "전 애인"이지. 이렇듯 현실과 꿈(소망), 과거와 현재 사이 어딘가의 추억 속으로 자꾸만 숨으려 하는 나의 의식 체계가 원망스럽다. 어머니가 고생고생해서 10달간 품어 세상 밖으로 "출하"한 나의 새삥 몸뚱이는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낡아가고 있다. 요즘은 하루에 앉아있는 시간이 많아서 그런지 스트레칭을 하루라도 거르는 날에는 등과 허리의 통증이 굉장히 신경 쓰일 정도로 강해진다. 결국 하드웨어 관리를 잘해야 최신 소프트웨어도 깔 수 있는가 보다. 건강한 몸을 지켜내기 위해서 오늘도 고군분투하는 수많은 콘크리트 구조물 속 현대인들에게 위로와 경의의 프로틴음료를 바친다.

 오늘의 목표는 포기하지 않고 목표한 운동량만큼 소화하고 돌아와서 깔쌈하게 씻고 마스크팩하고 자는 것. 

내편이 나한테서 등을 돌렸다는 사실에 가슴이 너무 아프다. 그래도 식욕은 살아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자주 가는 돈가스집에서 주문을 할 때마다 죄송스러운 듯 뒤통수를 쓸면서 사장님께 양배추를 더 달라고 말씀드린다. 삭막한 서울에서 최소한의 식이섬유를 얻기 위해서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의식적인 노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반찬 접시 그득그득 중국산일 게 분명한 시뻘건 미니 깍두기를 담아낸다. 근처에 생긴 다이어트용 샐러드집은 단가가 후덜덜하다. 이래서 많은 직장인들이 기사식당이나 고시뷔페를 가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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