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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지키고 싶었던 직장 (1)

9월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by 유노유보

문득 내 귀에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찌이이이잉하는 이명만 들렸다.

눈을 감고 어지러운 출근길에 들었던 노래를 떠올렸다.

그린데이의 <Wake me up When september ends>.

9월이 다 끝나면 깨워달라는 그 노래.


2023년 9월 21일,

그날 오후부터 의원실 전화기는 불이 나기 시작했다.

계속 되는 전화,

격앙된 지지층의 전화를 다들 몇 시간 째 받고 있었다.

죽.여.버.리.겠.다.

죽.여.버.릴.거.야.

단 6글자의 섬뜩한 문구가 있는,

흰색 글씨에 A4용지 전체가 검은색으로 뒤덮인 팩스가 100장 넘게 오고 있었다.

"보좌관님 이거 잉크 다 떨어졌대요. 이거 채울까요? 근데...이거 계속 이럴거 같은데..."

더벅머리의 L비서관이 곤란하다는 듯이 내게 말했다.

"아 그냥 냅둬봐. 마음같아선 전화선도 다 뽑아버리고 싶다."

복합기의 잉크 여분을 다시 충전하는게 맞나 싶었던 때였다.

검은색 잉크를 들이부은듯한 이면지 수백장이 쌓여있는 통을 보면서,

출근 전에 갈아준 아기 기저귀가 생각이 났다.

5개월 된 아기 똥은 냄새가 나도 구수하고 역겹지가 않고 참 따뜻했는데,

이면지함에 쌓인 갓 인쇄되어 검은색 잉크 가득 쏟아낸 저 뜨근뜨근한 종이들을 보고 있자니,

토할 것 같았다.


동시에 그런 생각도 들었다.

당원과 지지층들이 얼마나 절박하고 두려웠으면,

사랑하는 것을 지키기 위해 이런 날 선 단어들을 무기로 삼아야 했을까.

그들의 분노가 향하는 대상이 우리라는 사실이,

그리고 그렇게 서로에게 상처를 내야만 하는 이 상황 자체가 참을 수 없이 슬펐다.

욕설과 악 소리로 전화기에 불이 나던 그 때,

내 책상에는 의원의 전당대회 출마 당시 오마이뉴스 인터뷰,

<박용진의 민주당 사랑법, "수모 당해도 할말 한다."> 인쇄 스크랩본이 놓여져 있었다.

그날만큼 서로의 사랑이 잔인하게 느껴졌던 오후는 없었다.


"그래서 가결표 던졌어? 찬성했어?! 말해봐! 말해보라고!"

"선생님, 비밀투표 원칙이라서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그리고 저희도 진짜 모릅니다. 저희한테도 비밀투표라고 하셨습니다."

"그런 게 어디있어! 가결했지! 찬성했지? 그랬지? 말해봐! 가결표 던졌잖아아아아!"


지지층과 당원으로부터 백수십통의 전화가 계속해서 왔다.

밖에서는 국회의사당역의 바리케이드와 철문을 사이에 두고 경찰과 성난 시위대가 대치하고 있었다.

격앙된 지지층이 철문을 파손시키는 영상이 텔레그램으로 돌기 시작했다.

머리가 아팠다.

지치고 또 지쳐 지그시 눈을 감고 폭풍전야를 방불케하던 출근길의 노래를 떠올렸다.

<Wake me up When september ends>.

이 혼란이 지나면 그때 날 깨워달라고 누군가에게 부탁하고 싶었다.

그럴 순 없었다.

오히려 누군가 잠들면 뺨이라도 치면서 잠들면 죽는다고, 정신차리라고,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할 책임은 그 자리에 있는 바로 나에게 있었다.


의원과 "당 대표 체포동의안"에 대해서 상의한 적이 있었다.

6월에 의총에서 당론으로 추인한 "불체포특권 포기"

9월에 당대표가 직접 페이스북에 작성한 "체포동의안 부결 요청"

어떤 걸 따라야 할지 의원도 고민하고 있었다.

나도 감히 나의 의견을 말씀드리지 못했다.

의원에게 물어봤다. 어떻게 하실 거냐고.

그는 내게,

"세상천지에 제1야당 당대표한테 체포동의받겠다고 하는 정권이 어디 있냐? 박정희 전두환이나 하던 짓을 하고 있는 거지. 그리고 법적으로 죄가 있냐 없냐를 떠나서 도주의 우려가 없는 제1야당 당대표를 구속하겠다고 하는 게 말이 돼?"

라고 말했다.


우리가 공유한 인식은, 검찰을 정치에 활용하는 걸 거리낌없어 하는 이 정권이 검찰을 이용해 궁극적으로 취하려는 것은 바로 우리 당, 민주당의 분열 그 자체였다는 것이다. 여기에 어떻게 대응할 지가 어려운 문제였다. 어떻게 해야 당 대표의 구속을 막아내면서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을 것인가? 방탄 프레임에 말려들면 총선은 필패였다. 그 프레임에 말려들지 않으면서도 대표의 구속은 막는 방법, 그 부분에 대한 깊은 고민이 계속됐다.


6월에 총의로 정한 당론과 9월에 당대표가 직접 호소한 내용이 다른 건 가장 큰 고민의 시발점이었다.

그는 내게 끝내 어디에 투표할 지 말하지 않았다.

그가 내게 말했다.

"그때 가서 정할 거 같아. 어찌 되었든 도주의 우려가 없는 당대표 아니야."

"그럼 부결표 던지실 거에요?"

그때 그가 내게 엉뚱한 소리 하냐는 식으로 대답했다.

"야. 비밀투표잖아."


그러니까, 전화상으로 성난 지지층이 "가결했지? 찬성했지? 라고 말할 때 우리의 대답은 진짜였다.

진짜 의원이 어디에 투표한지 몰랐으니까.

다만 최종적으로 우리 당 대표가 구속되지 않는 방향으로,

총선에서 이길 수 있는 방향으로 투표하셨을 거라는 심중이 있을 뿐이었다.

그 믿음은 지금도 확인해보지 못했다. 비밀투표였으니까.

그리고...

그런 것들의 확인이 무의미한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우리의 9월은 끝나지 않고 계속 되고 있었다.


1주일 뒤, 당원과 지지층, 그리고 우리 모두가 원했던 대로 우리 당의 대표는 구속되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그리고 강서구청장 재보궐선거는 우리의 대승이었다.


그렇지만 2023년 10월, 분위기는 점점 더 흉흉했다.

9월에 흩뿌려진 분열의 씨앗은 한번 커지기 시작하니 걷잡을 수 없었다.

국감보다 지역 신경써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다.

의원은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는 식으로 대답했다.

"야, 국회의원이 국정감사 신경 안쓰고 의정활동 신경 안쓰면서 어떻게 또 하길 바래? 국감 안하고 의정활동 제대로 안 하는데 어떻게 표 한번 더 달라고 할 수 있어? 부끄러운 일 아니야 그거? 이럴 때일수록 우리가 일 잘하는 모습을 계속 보여줘야 해. 국민들 보기에, 당원들 보기에 민주당이 저렇게 내부가 시끌시끌해도 역시 서민 위하고 일은 잘하는구나 유능하구나 하고 믿음을 드려야 총선에서 이기지. 지역은 내가 수시로 왔다갔다 하면 되니까, 국감 준비 제대로 해."


마침 법사위 이슈로 "부산 돌려차기 피해자"의 2차 피해 문제가 불거졌었고, 우리는 그 분과 직접 인터뷰를 하고 관련 제도 개선 문제를 지적했다. 이른바 "부모 따돌림", "러닝머신 아빠" 이슈로 유명한 미국인 존 시치 씨와도 직접 의원과 인터뷰를 할 수 있게끔 했고, 대법원의 헤이그 아동탈취협약 관련 예규가 개정됐으며, 존 시치 씨는 그 다음 해인 2024년, 몇 년만에 두 아이를 찾아 마침내 한국을 떠났다. 그 외 여러 언론보도들과 제도개선을 위한 각종 보도자료와 지적들이 있었다.


마지막 국정감사에서 박용진 의원은 더불어민주당에서 선정하는 국정감사 우수의원에 뽑혔다.


국감이 끝나자마자 점점 순차적으로 강북 지역으로 출근하는 보좌진들이 늘었다.

열심히 준비해서 출판기념회도 지역에서 대강당을 꽉 채웠다. 11월인데 공기가 더울 정도였다.

서울사이버대 대강당에 무려 1500여명이 왔으니까 말이다.

나도 12월부터는 강북에 더 많이 갔다.

점점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선출직 공직자 평가"는 다면평가로 한다더라, 하위 20퍼센트가 누구라더라.

등등의 찌라시가 돌았다.


나는 다른 찌라시들보다도, 선출직공직자 평가를 "다면평가"로 한다는 것이 불안했다.

나야말로 다면평가를 통해 순차적으로 배제되고 결국 쫓겨나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었다.

다면평가는 IT기업 등에서 사실상의 "구조조정 수단"으로 정말 많이 쓰이는 평가방법이었다.


공인노무사로서의 내가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인사평가의 수단으로서 "공정한 다면평가"라는 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다면평가가 공정하려면, 역설적으로 다면평가가 인사평가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된다.

성공적인 다면평가는 철저하게 피드백 위주로, 성장할 수 있는 개선방향을 찾는 것을 중심으로 운용해야 된다는 것이 <인사노무관리론> 교과서의 내용이다. 다면평가가 아니라, 다면 피드백이어야 맞다.


하지만 많은 기업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것이 (사내정치적으로) 가장 편리하게 사람을 내보내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안했다.

나는 이 직장을 지키고 싶었으니까.


새 해가 되자,

강북을에는 J가 출마했다.

J는 과거 여러 문제가 있었지만, 결국 예비후보 자격심사를 통과했다.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따로 따질 수는 없었다.

여러 흉흉한 소문들이 들려오고 있었다.

J의 유튜브에서는 계속 강북을 연고지 지인 찾기와 함께 우리 의원을 향한 비방이 계속 되고 있었다.



1월 말, C 선임보좌관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

의원이 잠깐 병원에 입원해야된다고 했다.

의원은 다른 보좌진들에게 어디가 아픈지 알려주지 않았다.

중간중간 내게 기자들이 전화해서, "중병에 걸리셨단 소문이 있는데 진짜에요? 그...들어보니까 뭐 무슨 암이라던데?"라고 물어봤다.

그때마다 나는 부인했다. 실제로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설마했다. 헛소문이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훨씬 더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의원이 피로와 극심한 스트레스 등 여러 요인으로 "설암"이었고,

다행히 초기에 발견되어 혀의 20% 정도를 절개하는 것으로 완치된 것을 알았다.


옛날 사람...의원은 참 옛날 사람같다고 생각했다.

나같으면, 혹은 다른 정치인이라면 그때 동정여론이라도 만들기 위해 자신의 병을 이용했을 것이다.

때로는 자신의 건강상태를 적극적으로 정치에 이용하는 것도 흔히 여의도에 있는 일들이었다.

좀 더 아플 땐 아프다고 하고, 힘들 땐 힘들다고 해도 되는데.

씩씩한 게 다가 아닌데...

암 수술로 인한 입원 당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 설날특집 복면가왕> 녹화도 취소하지 않았다.

급하게 잡힌 본인 수술때문에 1달 전부터 약속된 일정을 펑크낼 순 없다고.

거기서 봄여름가을겨울의 <Bravo my life>를 불렀다.

의원은 그렇게 노래를 통해 자신이 지금껏 살아온 용기, 찬란한 우리의 미래에 Bravo Bravo를 외쳤다.

그 노래를 듣고 있던 패널들은 방송이니까 익살스럽게 웃으면서

의원의 노래에 대해 이런저런 재미있고 웃기는 평가들을 했고, 우승시켜줬다.

복면가왕 우승으로 보좌진들에게 피자 쿠폰 10장을 보낸 채로 그는 바로 서울대병원 수술실로 직행했다.


의원실 사람들에겐 늘 아무렇지 않은 척, 강한 척, 밝게만 대했다. 천연덕스럽다고 느껴질 정도로.

자기의 힘듬을 알아주지 않고 자신에게 투영하지 않으면 화내는 많은 직장상사와 대표들이 있는 걸 생각하면,

이런 쿨함은 분명 좋은 모습이지만...직장상사지만, 참 짠-했다.

물론 의원이 그런 사람이었다면 난 의원에게 몰입하지 못했을 것이다.


흉흉하고,

또 흉흉했다.

"선출직 공직자 평가 하위 20%"가 누구다, "하위 10%가 누구다"하는 이야기들이 계속

구체적으로 찌라시가 돌았다.

문득 헤드셋 쓰고 그냥 Green Day의 'American Idiot'란 노래를 볼륨 최대로 키워놓고 싶었다.

다들 걱정하고 불안해 했다.

나도 그랬지만, 내색할 순 없었다.

의원은 어땠을까. 그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 와중에 J 전 총리가 위원장으로 있는 대한민국 정치지도자상 위원회에서는 불법 주가조작사범의 과징금 처벌을 대폭 강화한 우리 의원의 자본시장법 개정안에 대해 "대한민국 정치지도자상" 경제부문 최우수상을 수여했다.


의정활동의 결과와 평가들이 이렇게 속속 들어오고 있었다.

그래서 모든 찌라시들을 무시하기로 했다.

설마, 설마, 정말 그러겠어?

마치 타조가 머리를 땅에 박듯이.


2024년 2월 19일 오후 4시 57분 경이었다.

의원이 나와 사무국장, 선임보좌관까지 3 명을 불렀다.

그 날따라 의원이 있던 3층 방은 유난히 추웠다.

지독하게 끝나지 않는 추운 9월이었다.

오래된 전기 난로의 틱틱거리는 소리만 사무실의 공기를 채웠다.

순간, 몇 달 전 내 귀를 찢던 그 이명(찌이이이잉)이 다시 희미하게 들리는 듯했다.

쎄한 느낌이 들었다.




※ 이 글에 등장하는 인물, 단체, 회사명은 실제와 다르게 각색되었으며, 특정 개인이나 법인을 비방하거나 명예를 훼손할 의도가 없습니다. 실제 존재하는 사람이나 법인, 사건과의 유사성은 순전히 우연입니다. 이 글에 언급된 특정 상황이나 대화는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극적으로 재구성한 것이며, 일부는 작가의 기억과 해석, 창작이 반영되었습니다.


각주 1) Green Day의 "Wake me up, when september ends"는 그린데이의 멤버 빌리 조 암스트롱이 돌아가신 아버지를 위해 만든 추모곡이다. 빌리 조 암스트롱이 10살때 그의 아버지는 식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울다 지쳐 잠든 빌리 조를 깨우려 어머니가 갔을 때, 침대에서 빌리 조가 했던 말이 Wake me up, when september ends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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