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이상한 예언의 성취 - M팀장님, 당신이 옳았습니다.
국회는 쉴 새 없이 돌아갔다.
한 여름밤의 꿈같은 전당대회가 지나니, 바로 국정감사 준비를 해야 하는 시기가 다가왔다.
박용진 의원은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이었다.
내가 변호사였다면 좋았을 텐데, 공인노무사 자격과 전문성을 가지고 뭘 할 수 있을까? 걱정도 많이 했다.
걱정은 기우였다.
노동은 환노위에서만 통하는 것이 아니었다.
정무위는 금융과 비금융부문의 기관이 서로 나뉘어 감사받는 구조였다. 금융위, 공정위, 금감원 등 많은 관련 기관들이 피감기관이었다. 공정위가 피감기관이라는 것은, 곧 "불공정거래" 이슈가 있는 모든 기업들이 다 피감대상이 될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금융위가 피감기관이라는 것은 온갖 증권사와 은행들이 다 피감기관이라는 뜻도 됐다.
많은 기업 대관들이 인사를 하러 왔다. 그리고... 그 기업에 속한 노동조합들에서도 인사를 하러 왔다.
변호사가 아닌 '공인노무사' 자격을 병기한 내 명함을 보고 그들은 친근감 속에서 자기들 노조의 노동이슈들에 대해 질문해 줄 수는 있는지, 혹은 질문이 아니더라도 어떤 식의 방법이 있는지 나에게 더 친밀하게 상의해 왔다.
노동은 어디나 있었다. 사실 우리 누구나 사회생활을 하려면 일을 하고 살아야 했다.
내가 공부한 것들은 모든 상임위에서 쓸모가 있었다. 새로운 발견이었다.
법사위도 그렇지만, 정무위도 웬만한 세상만사에 대해 발언하고 개입하고 대책을 수립할 수 있는 상임위였다.
C사의 'WPD'게임 사태도 그랬다.
처음에는 의원은 그의 아들을 통해 "이런 사정이 있다더라" 정도를 의원실에 공유했다.
국정감사 때 아이템으로 활용할 수 있는지 검토해 보란 취지였다.
살펴보니, 국내서버와 일본서버의 재화 차별 문제와 서버 점검 당시 게이머, 유저의 손실에 대한 보상의무가 없는 등의 불공정 약관의 문제, 불친절한 공지와 소통의 문제가 눈에 띄었다. 이는 마치 노동자의 권리를 일방적으로 제약하는 부당한 근로계약서와 그 구조가 흡사했다. 공인노무사로서 다뤄왔던 수많은 불공정 계약의 쟁점들이 겹쳐 보였다. 노동자들도 사용자들이 조금만 정중했더라면 그냥 문제제기 안 하고 퇴사로 마무리할 사람들 천지니까. 나는 이 아이템을, 공정위 국정감사에서 충분히 해볼 만한 주제로 판단했다.
"충분히 질의할 만한 사안입니다."
의원에게 보고를 했고, 해당 게임의 '총대진'(유저 자율 연대체)과 연락을 취했다.
게임회사 출신이었던 나에게 있어서는 익숙한 문화였고, 또 친근감까지 느껴지는 일이었다.
총대진의 자율연대체 대표께서는 우리 의원실에 "대신 질문해주셨으면 하는 내용들"이란 제목으로 장문의 질의서를 보내왔다.
이런 경우, 여러 기술적이고 정교한 제도적 고려보다도 되도록이면 게임 이용자들, 유저들의 목소리를 최대한 반영할 수 있는, 원래 의도에 가깝게 질의하는 것이 맞다고 여겼고, 이런 보고에 의원도 동의했다.
정식 국감 증인신문 질의를 준비해 가면서 C사의 당시 대표를 증인으로 소환했고,
우리는 그 외에도 공정위에 해당 게임 외에 C사 위주의 여러 게임사의 불공정약관 시정 문제가 더디게 처리되고 있는 점과 국내 유저 역차별 문제 등 게임회사의 불공정 이슈에 대해 공정위가 좀 더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취지의 사전 서면질의와 자료요구를 해놓았다. 그 외에 C사의 자회사 'L'사의 분할상장 문제에 대해서도 질의를 준비하고 있었다.
C사 내부에서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문체위 국정감사만 대비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정무위에서 증인신청이 들어온 것이었다.
총대진이 준 정보와 질의서들을 이용하여 공정위에 추가적으로 질의에 필요한 자료요구를 하고,
불공정 약관과 차별적 게임운영, 자회사 쪼개기 상장에 대한 질의서를 최종적으로 작성하여 의원의 컨펌을 받았다. 게임 이야기를 하며, 게임을 파고들면서 야근을 한 것, 익숙한 기억이었다.
증인심문 전날, 밤 10시 30분쯤 퇴근을 했다.
8년 전의 그날들이 떠올랐다.
밤 10시 30분이면 그래도 8년 전 그때로 치면 정시퇴근에 가까웠다.
들뜬 기분이었다.
10월 7일 공정위 국정감사, 오후 증인심문 시간이 되었다.
C사의 대표에게 의원은 여러 질문을 했다.
"N 대표는 과거 주가 15만 원 만들 때까지 법정 최저임금만 받는다고 했다. 영업이익 65% 나오는 자회사를 쪼개기 상장하면 모회사 디스카운트로 기존 일반주주 이익은 완전히 망가지는 것 아닌가?"
"WPD 이용자가 일본 서비스와 국내 서비스의 차별을 지적하자, C 측이 '너희 선택이다'라고 해 불을 질렀고, C사의 대응은 무능을 넘어 주식회사로서의 의무를 망각한 것 아닌가?"
그 회사의 대표는 이윽고 말했다.
"총대진을 비롯해 WPD 유저 여러분에게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그때 대처했던 발언은 후회하고 있고, 다시 한번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그러면서 가장 큰 문제가 "소통"이었음도 인정하는 취지로 발언했다.
그리고 공정위 국감 증인심문 1주일 뒤,
C사는 L사의 분할상장을 철회하겠다고 발표했다.
우리 의원은 C사에 환영의 메시지를 공개적으로 올렸고, '말딸갤'이라 불리는 디시인사이드란 커뮤니티에 있는 게임 유저들이 주로 있는 모 갤러리에 직접 인증글을 남겼다.
게이머들, 유저들의 승리였다.
홍보 파트의 비서관이었던 K에게 국감 질의 홍보 영상을 디렉션하던 때였다.
C사 대표의 사과가 대대적으로 보도되는 상황에서, 의원의 말딸갤 인증글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문득, 8년 전 그때가 떠올랐다.
사회초년생 시절, 국회에 팀장 M과 출장 왔을 때 그가 나 들으란 듯이 내 사수 B에게 했던 말,
"쟤가 여기 나중에 올 수나 있겠어? 아 뭐 와서 어디 이상한 규제정책이나 만들고 있겠지."
바로 그 말이 떠올랐다.
"정말 그러네, M님. 당신이 옳았네요.
그 말씀대로 되었습니다. 아주 예언가셨네요."
혼자서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의 피그말리온 효과에 감사하며, 그날 조용히 집에 가서 혼자 기네스 맥주 한잔을 홀짝였다.
단순한 통쾌함만은 아니었다.
씁쓸하게 입안을 맴도는 흑맥주의 첫맛처럼, 지난 세월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의 이상하지 않고 "정상적인" 규제정책이라고 하는 것들은 대충 이런 것이었다.
확률형 아이템은 자율규제로만 맡겨야 하고 관련 법이 나오면 무조건 막아야 한다는 논리,
웹보드 게임(법적 용어로는 '사행행위 모사 게임물', 즉 고스톱 포커 등 고포류 사행성 게임) 결제제한은 완화되거나 아예 제한은 없어야 하고, 게임 환불 불가 약관 조항 방어 같은 것들이었다.
아직도 기억난다. 확률형 아이템은 3만 원으로 300만 원짜리 아이템을 구입할 수도 있게끔 유저들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측면도 있다는 설명. 그 설명 듣고 속으로 진짜 미친 주장이라고 생각했지만 겉으로는 감탄했었다.
그가 내게 마지막으로 했던 말 "이게 다 경험이고 교훈이 되었으면 해"라는 말도 떠올랐다.
그의 말대로였다. N사에서의 경험은 내게 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일들이 되었다.
게임회사에서의 경험이 없었다면, 나는 게임업계가 다 첨단을 걷고, 자유롭고 수평적이고 "자율"적인 분위기로 (실제 지금도 국회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게임회사들에 대해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갖고 있는 이미지와는 다르게), 그렇게만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었다.
그 업계에 대해 또 다른 시각을 갖추게 된 건
오로지 그가 "이게 다 경험이 되고 교훈이 되었으면 한다"라고 했었던, 그 안에서의 경험들 덕분이었다.
그 경험을 쌓게 해 준 미칠 듯한 고마움 잊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규제의 목적은 소비자 보호와 시장 신뢰 회복이어야 하고, 그 기준은 ‘상식’이어야 한다.
앞으로도 "상식"의 차원에서 계속 "이상한 규제"로 게임 이용자, 유저들을 보호하는 것,
그게 바로 소비자를 보호하고 국민을 보호하는 일이라고 깨달았던 날이었다.
※ 이 글에 등장하는 인물, 단체, 회사명은 실제와 다르게 각색되었으며, 특정 개인이나 법인을 비방하거나 명예를 훼손할 의도가 없습니다. 실제 존재하는 사람이나 법인, 사건과의 유사성은 순전히 우연입니다. 이 글에 언급된 특정 상황이나 대화는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극적으로 재구성한 것이며, 일부는 작가의 기억과 해석, 창작이 반영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