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에게 노동사건을 맡겼을 때
실무수습을 끝내고 인생 첫 자영업자로서의 삶을 영위하던 어느 날이었다.
지인의 소개를 통해 나에게 부당해고 사건을 위임하고 싶다는 의뢰인이 들어왔다.
그런데... 회사명과 대표자의 이름이 뭔가 익숙했다.
30대 초반의 의뢰인 H는 사회초년생이었다.
그리고... 게임 개발자였다.
이 부당해고 구제신청 사건의 피신청인은 바로 내가 다녔던 N사 쪽 사람들이 주축으로 있는 회사였다.
사건을 수임한 후 다짐했다.
이 사건, 반드시 이기겠다고.
구제신청서를 작성하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의뢰인은 정규직 계약으로 알고 입사를 했지만, 그가 작성했다던 근로계약서의 제목은 이랬다.
"수습 및 시용 근로계약서"
시용은 본채용 직전의 일정기간 동안 정규직 직원으로서의 업무적격성 등 판단을 위해 "시험적으로 사용"한 후 본채용을 하거나 본채용 거부를 하는 절차다. 수습과는 다르다. 사람들이 알고 있는 "수습"의 개념은 오히려 시용근로에 더 가까운 것이다.
수습은 정식 근로계약을 체결한 다음 최초의 일정기간 동안 업무능력을 훈련하는 기간을 말한다. 이 기간은 최대 3개월까지 가능하고, 1년 이상 내지는 정규직으로 단순노무직종이 아닌 직무에 채용했을 때만 최저임금의 90%까지 감액이 가능하다. 즉, 수습 근로계약이란 건 존재하지 않는다. 근로계약기간 중 일정기간의 수습기간을 두는 것이지. 이것은 사람들이 흔히 잘못 사용하는 개념 중 하나다.
어쨌든 수습과 시용이 혼용되어 사용된 그 근로계약서의 실질은 "시용" 근로계약이었다.
자신의 근로계약이 무엇인지, 제대로 된 설명조차 듣지 못했던 것이다.
일전에 내가 겪었던 그대로였다.
근로계약서는 배신하지 않는다.
그저 사람이 배신을 할 뿐이다. 사장에게 배신당하고 인사팀에 배신당한 것이다.
그리고 근로계약서를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나의 탓"이라는 사회적 가스라이팅이 있을 뿐이다.
의뢰인은 해고일 6일 전에 "이번 주까지 근무하라"는 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인사팀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사직서 제출하시면 된다.", "사직서라는 게 내가 자진퇴사여서 쓰는 건 아니고 그냥 퇴직을 하게 되면 어떤 사유에서 사직을 하는 건지에 대해 쓰는 거다."라는 식으로 회유했다고 한다.
전형적인, 아주 전형적인 적극적인 자진퇴사종용이었다.
시용에서의 본채용 거부는 "해고"이기 때문이고,
그 본채용 거부의 적격성 또한 부당해고 여부를 다퉈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사람들은 사직서 제출을 내 의뢰인에게 종용했던 것이다.
더구나, 사직서 제출을 거부하니 이제는 "도대체 왜 안 쓰는 거냐?"라는 식으로 힐난을 했다고 한다.
다들 쓰는데 왜 당신만 안 쓰냐는 식으로.
끝내 의뢰인이 사직서를 제출하지 않자, 그냥 시용계약 종료를 며칠 있다 통보했다고 한다.
시용계약서상 기간도 남아있었는데.
시용계약의 본채용 거부 시 그 적격성을 어떻게 평가했는지도 합리적 기준 하에 통보하고 알려주는 것이 맞다. 그래야 부당해고 소지를 최소화할 수 있다.
그런데, 이 회사는 막무가내였다.
노동법을 이렇게 총체적으로 무식하게 어기는 회사도 오랜만이었다.
그랬다.
의뢰인 H는 과거의 나였다.
여기서도 크런치모드는 여전했다.
"선택적 근로시간제"까지 도입한 회사에서
새벽까지 야근한 뒤 9시 15분, 9시 20분에 온 것을 가지고 "근태불량"이란 소릴 들었다고 한다.
너무 전형적이어서 소름 끼칠 정도였다.
이 동네, 아직도 이렇구나.
N사 본사는 국정감사 한번 당해봤고, 큰 회사이니 감시의 눈들이 많겠지만,
그들이 관계하는 여러 중소규모의 회사나 스튜디오들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적지 않은 이 땅의 게임개발자들은, 아직도 여전히 어려운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것이 현실이었다.
오랜만에 열정적인 구제신청서를 써서 의뢰인에게 검토받고 제출했다.
너무 명백한 증거와 정황들이 많았기에 곧 사측에서 화해의사를 전해왔다.
남은 근로계약기간과 부당해고기간의 임금상당액 전액을 세후 금액으로 지급하겠다고 했다.
(노동위원회 인용 시 지급되는 금액은 세금을 떼지 않지만, 화해합의금의 경우 기타 소득으로 간주할 수 있어 이 부분에 대한 합의가 반드시 필요하다.)
원직복직을 원치 않았던 의뢰인의 뜻을 감안하면, 화해였지만 거의 완벽한 승리였다.
의뢰인은 내게 연신 감사하다는 인사와 성공보수, 그에 더한 기프티콘도 보내주셨다.
뿌듯했다.
그리고 뭔가 가슴속에 응어리졌던 작은 슬픔 같은 것이 풀린 느낌이 들었다.
내 마음에는 이런 문장이 떠올랐다.
"오늘, 그 사람들을 이겼다."
지금의 내가 또 다른 과거의 나를 찾아 토닥거려 준 기분이 들었다.
돌이켜보면, 나의 과거는 내 진가, 나의 가치를 알아달라는 "나의 투쟁"이었다.
이제는 더 이상 그러지 않아도 되었다.
공인노무사라는 정체성으로, 사람들은 나를 명확히 인식했다.
사람들이 나에게 일을 맡기고 만족하는 순간순간에 더 이상의 인정투쟁은 불요했다.
사마천의 <사기>에 자객열전에 나오는 예양이 그런 말을 했다.
"선비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음까지 각오한다."라고.
그 정도로 "나를 알아준다."라는 것은 중요한 일이었다.
내가 공인노무사의 일을 중단하고 국회로, 보좌진의 삶을 살기로 결정한 것도
나를 알아준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 이 글에 등장하는 인물, 단체, 회사명은 실제와 다르게 각색되었으며, 특정 개인이나 법인을 비방하거나 명예를 훼손할 의도가 없습니다. 실제 존재하는 사람이나 법인, 사건과의 유사성은 순전히 우연입니다. 이 글에 언급된 특정 상황이나 대화는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극적으로 재구성한 것이며, 일부는 작가의 기억과 해석, 창작이 반영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