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이 안 돼서> 4편
알바자리를 알아보려고 구인구직 사이트를 들여다보던 내 눈에 띤 건 ‘연구원 행정직 인턴’이었다. 공공기관이라 정시 퇴근이 가능할 것 같았고 더구나 특별한 능력을 요하지 않는 지원 조건이 마음에 들어 자기소개서를 작성했다.
그때까지 인턴, 정규직, 계약직, 육아휴직대체 등 고용 형태를 불문하고 기자직에 지원한 이력서가 족히 50건이 넘었다. 인턴은 서류에서 모두 탈락했고 계약직, 육아휴직대체 자리는 경력직 지원자들이 꿰찼다. 정규직은 서류심사와 필기, 실무면접과 최종면접 전형의 과정이 있는데 나는 첫번째와 두번째 단계 언저리에서 계속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그러다 한 방송사의 최종면접까지 간 적이 있었는데, 인턴으로 첫 출근을 하던 날 면접에서 탈락했다는 문자를 받았다. 전세대출 이자를 갚으려면 일단 일해야 했다. 내게 찾아온 공공기관 행정직 인턴이라는 기회가 귀할 뿐이었다.
배정받은 부서에는 나를 포함해 여섯명의 직원이 있었다. 연구원, 행정원 선생님들을 서포트하는 업무였다. 문서작업을 하거나 자료를 정리하는 일은 물론, 택배 박스 정리, 프린트 토너 교체, 우편물 나르는 일 등을 했다. 작고 사소한 일들이지만 누군가 하지 않으면 금세 불편을 겪는 일들이다. 어딘가에 도움이 되는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이 뿌듯했다. 그래서 더 열심히 일했고, 시키지 않아도 했다. 회사 밖에서 나는 수많은 취준생 중 하나이지만, 회사 안에서의 나는 데스크도, 내선전화도, 출입증도 가지고 있는 어엿한 직원이었으니까. 그 사실이 나를 더욱 열심히 일하게 만들었다.
언젠가 인사팀 실수로 선임행정원의 휴직을 대체할 후임 채용이 늦어진 적이 있다. 무려 한 달이나 공백이 생겼고, 연구를 심의하는 중요한 회의가 펑크가 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 자리에 인턴인 내가 투입됐다. 자리의 책임이 너무나도 중요한 공공기관 사회에서 책임질 의무도 권리도 없는 인턴에게 그 일을 맡긴 건 생각할수록 좀 웃기는 일이긴 하지만, 그만큼 내가 인정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기뻤다.
하지만 내가 이 사무실에 필요한 사람이라는 걸 증명하려고 애쓸수록 존재가 아닌 행위로 만족감을 얻는 가짜 행복의 밑천이 금세 드러났다. 사람들이 나를 불러주지 않거나 비교적 할 일이 없는 날은 우울했다. 그런 날은 집에 돌아가 공부도 하지 않고 2만원이 넘는 맵고 짠 배달음식을 시켜먹었다. 밥을 먹고는 바로 누워 드르렁 쿨쿨 잠을 잤다. 어딘가 쓸모없는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만족스러운 하루를 보낸 날과 불만족스러운 하루를 보낸 나의 격차가 점점 커졌다. 뿌듯하게 일한 날에는 자전거로 퇴근을 하고 밥을 지어먹고 운동을 하고 책을 읽었지만, 그 반대의 경우 정말 망나니 같은 저녁을 보냈다.
아, 이게 자존감이 많이 낮아진 상태구나 - 하는 걸 알아차리는 데 오랜시간이 걸렸다. 내가 얼마나 나 스스로에 만족하고 있는지보다 남이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더 중요했다. 물론 상담을 받고 주변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깨우친 마음이다. 당시에는 이렇게까지 되돌아볼 여유조차 없었다. 그래서 일이 없는 날, 자기 증명에 실패한 날에는 급격한 우울을 맞았다. 집에 들어가기가 싫을정도로.
왜 행위로 나의 존재를 증명하려 할까. 그냥 내 존재만으로 만족할 순 없을까. 그건 거의 불가능한 일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