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사무소 민원창구에 가면 바쁘게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던 직원이 고개를 빼꼼 내밀고 묻는다. “어떻게 오셨어요?” 목적 없이 동사무소를 가는 사람은 거의 없으니까 다들 쉽게 대답을 할 거다. 그런데 지금 내가 가는 곳은 다들 목적을 가지고 가려나? 거기서도 나에게 왜 왔냐, 어떻게 왔냐고 물으면 난 뭐라고 답해야 하지? 그나저나 난 지금 왜 여길 가고 있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OO상담센터’라는 간판이 쓰인 건물로 들어섰다.
심장은 작지만 분명하게 콩콩댔고 발걸음은 점점 빨라졌다. 묘하게 상기된 얼굴을 하고 문을 열자 상담사로 보이는 중년의 여성이 나에게 인사했다. 긴장을 한 탓인지 가볍게 인사한다는 게 그만 허리를 75도 정도 굽혀 지나치게 깍듯한 인사를 해버렸다.
그녀는 고장난 로봇처럼 뚝딱거리는 나를 어떤 방으로 인도했다. 병원처럼 데스크에 이름을 말하고 의사가 부르기만을 기다리는 그런 그림을 상상했는데, 오히려 의사가 나를 데리러 병원 문 앞까지 나온 느낌이었달까. 작은 방에 들어서니 너무 덥지도 춥지도 않은 적당한 공기가 나를 감쌌다.
어두운 색깔의 낮은 협탁과 커다란 소파가 놓여 있었다. 나는 겉옷을 벗어 소파에 개어 두고 엉거주춤 앉았다. 누군가 보리차를 담은 머그컵을 내게 가져다주었고 나가면서 딸깍 방 문을 닫았다. 상담사로 보이는 그녀는 나의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설마 이대로 상담이 바로 시작되는 걸까? 머릿속은 아직도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정리되지 않아 어지러웠다.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고 있는데 상담사가 입을 열었다. “뭐 타고 오셨어요?” “버스요.” 어디에 사는지, 밥은 먹었는지, 무슨 반찬을 먹었는지… 그런 사소한 것들을 물었다. 천천히 대답을 하다 보니 긴장이 조금 풀렸다.
맞아, 여기는 빨리 일을 처리해야 하는 동사무소가 아니다. 상담비용을 지불했고 나는 이야기를 하러 왔다. 좀 더 편안하게 생각해도 돼. 하지만 아무리 동사무소가 아닌 상담센터라도 내가 왜 이곳에 왔는지는 밝혀야 했다. 상담사가 몸을 고쳐 앉았다. 본론이 시작될 모양이었다.
“무슨 일로 상담을 받으러 오셨나요?” 질문 하나가 상담실의 공기를 가득 메웠다. 그 질문이 본디 얼마만큼의 무게였는지는 몰라도, 내게는 백배쯤 더 무겁게 다가오는 것 같았다. 평소 성격도 급하고 대답도 빨리 해야 직성이 풀리던 내가 좀처럼 대답하지 못했다.
마른 입술에 몇 번이나 침을 묻힌 뒤에야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취업, 취업이 안 돼서요.” 말이 끝나자마자 댐이 터지듯 눈에서 물이 폭포수같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