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곽현 Jul 17. 2024

반짝이는 금성에서 춤을 (2)

반짝이는 금성에서 춤을 (1)에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사순이는 쿠바 행성에서 사기꾼만 만난 게 아니다. 순수한 쿠바 사람들, 그들은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처럼 자연발생적 개성으로 빛난다.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독보적인 캐릭터들이 많다.  

그들은 마음으로 꿍-하니 감추는 것이 없고 솔직하다. 어쩌면 이렇게 안과 밖이 같을까 싶다. 속에 있는 걸 다 꺼내서 보여준다. 훤히 다 들여다보이는 그 마음의 물결처럼 집도 외부로 활짝 열려있다. 안 보려고 해도 지나가다 보면 다 보인다. 어떻게 살아가는지, 그들의 하루가 어떠한지.



이곳 사람들은 애정을 표현할 때 어쩜 이래 싶게 한다.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한다. 너의 아름다움을 오늘 봤으니 내일 죽어도 여한이 없다. 정도의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한다. 내일 죽을 일은 없겠지만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단어 하나하나에 세상 단맛을 아로새긴다. 그 진의를 따져 보는 건 사실 큰 의미가 없다. 이거 예뻐. 멋있어. 좋아. 하는 아이에게 왜 그런 생각을 한 거지?라고 묻지 않는 것처럼 그냥 그 사실을 감사히 받아들이면 그만이다. 그래도 그게 처음부터 자연스럽지는 않다. 이곳 행성의 사람들에게 낯설지 않은 칭찬이 사순이에게는 불가마에 얼굴을 집어넣은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다. 사순이는 애써 침착하게 이유를 묻기도 한다. 

  


왜 나한테 그런 말을 하는 거야? 



네가 좋으니까. 



이가 다 드러나게 활짝 웃는 사람에게 할 말이 없어진다. 상대가 나를 좋아하면 안 되는 이유를 생각해 내는 것이 오히려 부자연스러우니 그냥 웃고 만다.



그들의 미의 기준은 절대적이다. 어떤 이와 비교해서 나의 몸이 이렇다고 쉽게 좌절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왜 이렇게 당당한 건가 의문이 들 정도로 당당하게 드러내고 뽐낸다. 사랑하는 이의 뱃살과 엉덩이살을 향한 세레나데를 써서 바치기도 한다. 그 진지한 달콤함에 숙연해질 정도다. 온 마음을 다해 상대를 칭찬한다. 문제는 그 대상이 여럿으로 나뉜다는 것인데 그래도 그 순간 눈앞에 상대에게 최선을 다한다. 어제 본 얼굴에게도 마치 생전 처음 보는 여신을 마주한 듯 다시금 경탄을 보낼 수 있다. 



타인을 향하는 시선은 어쩌면 자신을 바라보는 그것과 매우 닮았는지도 몰라. 



순간의 기쁨과 감사를 오롯이 표현하는 사람들의 에너지는 한동안 아팠던 사순이에게 비타민 같은 역할을 했다. 비타민은 약하고 홍삼 즈음 되려나. 여하간 별일 없어도 웃게 되고 벌떡 일어나 같이 춤을 춘다. 그곳이 어디여도 상관없다. 밥을 먹다가도 길을 걷다가도 손을 잡으면 춤을 춘다. 마지못해 일어서더라도 누군가에 손에 이끌려 뱅그르 한 바퀴 돌다 보면 정해진 리듬 없이 움직임이 일어난다. 죽었던 흥도 살아난다.




아바나를 지나 트리니다드로 건너온 사순이는 우연히 알게 된 친구와의 인연으로 한 공연팀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살사도 추고 연극도 하고 마임도 하고 악기도 다룬다. 별 공통점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 서로 연결되어 신기하게도 잘 어울렸다.



"쟤 완전히 죽고 나면 부활할 거야." 



누군가 사순이의 귀에 대고 말했다. 사순이는 그때 보라색 망사에 월계관을 쓰고 죽는 연기를 하는 남자를 보고 있었다. 그는 쓰러진 후에도 미세하게 계속 꿈틀대고 있었는데 그 시간이 꽤 길어서 사람들은 그 지점에서 웃음이 터졌다. 동네 마을 회관에서 열리는 잔치 분위기다. 사순이는 그의 매소드 연기를 지켜보며 아직 살아있네... 중얼거렸다. 쉽사리 죽지 않는 그가 움직임을 멈췄을 때 다양한 색이 그를 에워쌓다.  


잠시 후 그는 보란 듯이 부활해서 미친 듯 춤을 췄다. 정말 미친 거 아닐까 싶게 춤을 췄다. 거대한 불꽃이 일렁이는 것처럼 주변이 그 광기의 에너지로 뒤덮이는 것 같았다.

 







그들을 따라다니며 사순이는 춤에 대한 장벽이 말랑말랑 해지는 걸 느꼈다. 몸이 회복되며 살사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원 투 쓰리 포 파이브 씩쓰 쎄븐, 너무 '열심히'하다 보니 정작 즉흥의 매력이 무엇인지.. 도통 느낄 수 없었다. 초반에는 상대에게 너무 딸려가지 않기 위해? 노력을 하니 춤추고 나면 삭신이 쑤셨다. 몇 가지 동작을 겨우 익힌 후에는 '배운 걸 써먹고 싶다'는 열망에 상대의 작은 움직임에도 귀를 기울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러던 차에 만난 사람들은 사순이의 마음에 낯선 물결을 일으켰다. 솔직해도 괜찮다는, 나를 표현할 때 올라오는 저항을 내려놓아도 괜찮다는.. 그런 마음의 물결이 잔잔히 퍼졌다. 



아니, 팔다리가 있고 음악이 들리는데 그거면 된 거지. 뭘 꼭 배워야 움직일 수 있는 거야?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춤을 잘 추는 남자가 사순이에게 말했다. 춤을 추면서 사순이는 정해지지 않은 마음의 벽을 막 넘나드는 느낌이었다. 이렇게 움직여야지 하는 나의 마음의 벽, 그들의 존재가 가만히 비춰주었다. 투명한 거울처럼. 우스꽝스러운 몸짓으로, 때론 멋지게 때론 천박하게 때론 우아하게 때론 아이처럼. 그 면면이 생생하게 움직이는 사진처럼 마음에 각인되었다. 내일이 오지 않을 것처럼 그들은 그렇게 춤을 춘다.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덧++

이 글을 올려야 했던 시점에 저는 '장흥'에 있었는데요. 그곳에서 남녀노소 일어나 노래하고 춤추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글은 업데이트 되지 못했으나 눈앞에서 그 흥겨움을 직접 맞이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