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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돌 Jan 15. 2022

코로나 시대 임산부의 삶

배달, 테이크아웃, 약속없는 삶

해가 떨어진 거리에서 노란 조명이 켜진 카페와 술집들을 문 밖에서 바라보고 있으면 한없이 그리운 느낌이 든다. 4단계 거리두기 조치 때문에 저녁 6시 이후엔 3인 이상이 만날 수 없다. 둘이서라도 꼭 만나야만 했던 사람들은 앞에 앉은 사람에게 한껏 집중하고 있다. 마스크 벗은 사람들이 보글보글 끓는 냄비 하나를 앞에 두고 세상 진지한 얼굴로 이야기를 나눈다.


나는 성냥팔이 소녀가 남의 따뜻한 크리스마스 풍경을 들여다보듯이 카페와 술집 풍경을 탐하며 걷는다. 이젠 돌아갈 수 없는 ‘홀몸’ 시절의 내가 그립고, 식당에서 편하게 사람을 만나 밥을 먹을 수 있었던 시절도 그립고, 일 년 넘게 술을 멀리하며 말짱한 정신으로 살다 보니 그저 취기가 그리운 것 같기도 하다. 식당에 가서 편하게 마스크를 벗고 밥을 먹어 본 게 언제였는지 기억이 안 난다. 술집의 냄새가 그립다. 술집에 도착해 손님들 속에서 친구들의 빛나는 얼굴을 발견하는 순간과, 환영하는 친구들 옆에 앉아서 오는 길이 얼마나 막혔는지를 호소하며 맥주 한 잔을 주문하는 순간을 나는 정말 사랑했다.


코로나가 아니더라도 임산부는 원래 발이 잘려버린 문어 같은 존재다. 다른 사람들이 발이 여덟 개 달린 문어라면 임산분의 발은 네 개도 안 되는 것 같다. 하면 안 되는 것, 조심해야 하는 것, 신경 쓰고 경계해야 하는 것이 너무 많아 운신의 폭이 좁달까. 이건 한국의 임산부에게 더 많이 해당되는 이야기다. 코로나는 엎친데 덮친 격으로 임산부 문어의 발 네 개 중에 두 개를 잘라버렸다. 조심하고 조심하다 보면 어디도 갈 수 없고 무엇도 편히 먹을 수 없다. 대체 어디까지 얼마나 조심해야 할까? 나의 정신건강과 즐거움을 위해 어느 정도 위험을 감수할 수 있을까? 를 매일 생각한다.


점심엔 구내식당을 가지 않고 도시락을 먹은 지 한참 되었다. '태교여행’을 가서도, '호캉스'를 가서도 대부분의 음식은 포장으로 해결했다. 포장되어 온 비닐봉지의 단단한 매듭을 자르고 김이 서린 흰색 플라스틱 뚜껑과 마주하다 보면 어떤 음식도 비슷비슷하게 맛없게 느껴진다. 뜨거운 음식을 플라스틱에 포장해서 먹는 게 몸이 좋을 리 없지만, 코로나냐, 환경호르몬이냐를 생각하면 그래 어쩌다 한 번이니까... 하고 환경호르몬을 택한다. 배달 음식으로 인해 발생하는 쓰레기에 대한 죄책감까지 가지면 끝이 없어서 나는 그냥 눈을 질끈 감는다. 미안하다 아가야, 네가 살아갈 세상에 엄마는 오늘도 썩지 않을 쓰레기를 더했단다…


출산 전에 얼굴 한 번 보자, 고 약속했던 친구들 중 대부분은 만날 수가 없을 것 같다. 코로나는 계속 인연의 무게를 재어보게 만든다. 불편과 위험을 감수하고 만날 만큼 그는 보고픈 사람인가? 그냥 마스크 쓰고 땡볕이 쏟아지는 공원을 같이 걷더라도 꼭 보고 싶은 사람은 만나게 되는 것이고, 앞에 커피든 음식이든 뭔가가 놓여야만 어색하지 않은 사이, 둘이서 보긴 아무래도 어색한 사이는 코로나가 좋은 구실이 되어 서로 만나지 않게 된다. 나는 텅 빈 다이어리 앞에서 그동안 내가 인생을 헛산 것인지 아니면 내가 과하게 조심성이 높은 것인지 고민한다.


대체 무엇이 그렇게 두려운 것일까? 전염병이 나와 아이의 건강에 미칠 영향이 두려운 걸까. 아니면 임산부가 조심성 없이 싸돌아다니다 코로나 걸린 게 아니냐는 외부의 비난과 내부의 자책이 무서운 걸까. 계속 진료를 봐주던 의사가 있는 병원에서 아이를 낳지 못하고 음압 병동이 있는 대학병원에서 방호복 입은 의료진들과 같이 애를 낳는 상황이 두려운 것일까. 그저 최대한 조심하는 것이 엄마로서 나의 의무라고 생각하며, 나는 성실한 학생처럼 그저 그 책임을 다하고 있다. 그간 속으로 쌓아놓은 하지 못한 말들은 언제쯤 얼굴을 보고 나눌 수 있게 될까.


나는 오늘 몇천 보를 걸었는지 어플을 통해 확인하는 것을 잊고, 가게 안 사람들의 모습을 탐하며 걷는다. 내 시선은 유리 통창 너머로 보이는 사람들의 마스크 벗은 입에 머문다. 그 움직이는 입들이 무서워 한동안 배달과 테이크아웃으로 살았다. 아름답고 붐비는 가게일수록 도망치듯 빠져나와 밖에 서서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멀리서 거리를 두고 보는 그 입들은 낯설고 매혹적이라 계속 쳐다보게 된다.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듣고 싶다, 나도 간절히 대화가 하고 싶다고 생각하며, 누가 앞에 앉아 있는 것도 아닌데 괜히 입술을 달싹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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