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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돌 Jul 11. 2022

MBTI 파워 J의 계획대로 안되는 출산기

예정일이 되었는데 아이가 나오지 않는다

임신 사실을 안 날부터, 아니 그전부터 출산은 내게 생각하기도 싫은 영역의 공포였다. 진통은 대체 얼마나 아픈 것일까? 배 위로 트럭이 지나가는 것 같다더라, 죽을 것 같다 싶을 때가 되어서야 죽지는 않고 애가 나온다더라 같은 말들을 들으며 나는 출산에 대한 공포를 무럭무럭 키워 왔다.


드라마에 나오는 출산의 과정은 대략 이런 것이었다. 예정일을 얼마 앞둔 어느 날, 주인공은 갑자기 배가 아프다며 주저앉는데 다리 사이에서 뭔가가 주르르 흘러내린다. 주인공은 말한다. “나 양수 터진 것 같아…” 깜짝 놀란 남편은 부리나케 아내를 데리고 병원으로 차를 몰아 달려간다. 죽을 것 같은 진통을 겪으며 산모는 괜히 옆에 선 남편의 머리를 쥐어뜯는다. (이때 티브이를 보던 나는 몸서리를 친다. 대체 얼마나 아프기에?) “조금만, 조금만 더 힘주세요!!” 의사 선생님의 구령에 맞춰 산모는 마지막 죽을힘을 다하고, 마침내 응애응애 소리가 들리며 아기가 뿅 하고 태어난다.


나는 나의 출산도 당연히 그럴 줄 알았다.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그 진통마저도 모두에게 '자연스럽게'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임신 사실을 확인한 날 병원에서 알려준 출산예정일은 8월 말이었다. 출산예정일은 대략 그쯤 아이를 낳을 것이라는 추정일일 뿐인데도, 나는 마치 기독교인이 성경에 나오는 말을 믿듯이 그날이 내 출산일임을 굳게 믿었다. 그게 아무것도 아닌 날짜였다면 D-200일, D-100일, D-30일마다 야식 파티를 벌이며 그렇게 정성스럽게 기념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예정일 일주일 전까지도 아무 소식이 없었다. 어떤 배뭉침이나 통증도 없었다.


진통은 보통 밤에 찾아온다 했다. 나는 매일 밤 “오늘 밤이야말로 진통이 올지도 모른다!”는 비장함으로 잠에 들었다. 그리고 새벽에 깨면 오늘도 그날이 아니구나… 하고 안도감을 느끼며 나에게 하루 더 주어진 자유를 만끽했다. 그러나 점점 예정일이 가까워지며 그 새벽의 안도감은 실망감으로 변해갔다.


진짜 공포는 겪어본 적이 없는 일에 대한 것이다. 상상 속의 무서움은 실제를 압도한다. 예정일이 비슷했던 맘카페의 산모들이 하나 둘 아이를 낳았단 소식을 전하자, 나는 점점 초조해졌고 더 겁이 났다.


예정일을 앞둔 마지막 진료에서, 의사는 예정일 일주일 뒤로 유도분만 일정을 잡아 놓고 그전까지 자연진통이 오지 않으면 그날 유도분만을 하자고 했다. 더 이상 기다리면 양수가 탁해져 아이에게 좋지 않다 했다.  나는 의사에게 물었다.


"자연스럽게 진통이 오게 하는 방법이 혹시 있나요?"


"사실 의학적으로 증명된 방법은 없어요. 맨날 누워만 있다가도 진통 오는 산모도 있고, 운동 많이 한 요가 강사들도 진통이 안 와서 유도 분만하기도 해요."


나는 유도분만이 무서워 미칠 지경이었다. 초산에 유도분만은 실패할 확률이 높다고, 하루 종일 진통만 하다가 제왕절개로 이어지기 쉽다는 말을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갑자기 죽을 만큼 아플 수 있다는 것과 죽을 만큼 아플 날을 받아놓은 것은 공포의 종류가 달랐다. 고생은 실컷 해놓고 결국 배까지 가르는 이중고를 겪는 게 두려웠다. 매일 밤 그냥 내일 병원에 전화해서 그냥 선생님 가능하신 제일 빠른 시간에 제 배를 갈라주세요 하고 말할까 고민했다.


지푸라기라도 잡아보자는 절박한 마음으로, 자연진통을 부른다는 요법을 하나씩 도전했다. 짐볼 운동을 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부지런히 요가를 했다. 매운 음식을 먹으면 자궁수축을 유발한다고 해서 매일같이 떡볶이, 매운 주꾸미, 마라탕을 먹어 속이 쓰릴 지경이었다.  많이 걷는 게 좋다고 해서 하루 만보, 이만 보를 걸었다. 예정일 삼일 전부터는 부른 배로 뒤뚱거리는 게 위험해 보여서 하지 않던 계단 오르기도 시작했다.  예정일 하루 전날에는 정말 이것만큼은 하고 싶지 않았는데... 하며  오리걸음으로 방바닥 걸레질까지 시행했다.


하지만 뱃속은 감감무소식이었다. 오히려 운동을 할수록 컨디션만 좋아지는 것 같았다. 맘카페에서는 더 운동을 해야 한다고, 더 걸어야 한다고 했다. 나는 태어나서 제일 열심히 운동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이 사람들은 다 체대생인가? 나는 P를 붙잡고 엉엉 울었다.


“아니 대체 뭐 얼마나 운동을 하라는 거야?"


내 자궁은 철통 같아서 어떤 운동을 해도 조금도 자극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나는 너무나 멀쩡한 배를 만지며 혹시 이 안에 든 것이 아기가 아니라 다른 것(?)은 아닌지, 아기가 아니라 사실은 박혁거세처럼 알인 것은 아닌지, 아니면 내 임신 자체가 산부인과 의사까지 합세한 거대한 트루먼쇼는 아니었는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도망가 버리고 싶었다. 나는 힘든 과제를 만나면 도망을 꿈꾸는 습성이 있다. 학창 시절에는 너무 어려운 수업이 있으면 수강을 취소할 수 있었다. 회사에서는 부담스러운 프로젝트나 발표가 있을 때 폰을 끄고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으로 잠적해 버리고 싶다는 충동에 시달렸다. 하지만 출산은 내가 아무리 도망치더라도 피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이 온다고, 애는 언제가 되든 낳을 수밖에 없었다. 도망치면 도망친 그곳에서 애를 낳아야 했다. 나는 매일 새벽 P를 붙들고 울었다.


“운동을 더 열심히 할걸… 아니 이럴 거면 그냥 아예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서 넷플릭스나 실컷 볼걸…”


출산이 두려워 미치겠으면서도 동시에 분만장으로 얼른 가고 싶어 미칠 것 같았다. 이렇게 혹사시켜도 기미가 없는 몸뚱이가 야속했고, 진통이 안 오는 게 너무 안 움직여서 그런 게 아니냐고 하는 속없는 말들이 짜증이 났다. 일생 파워 J(계획형 인간)로 살아오면 웬만한 일들은 거의 계획대로 해 왔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꿈만 꾸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데 임신과 출산은 내가 생각한 대로 절대 되지 않았다. 진통에 걸려서 애를 낳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은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 속설과 달리 내가 뭘 한다고 결과가 나오는 것 같지도 않았다.






미칠 것 같던 마음은 오히려 예정일 당일이 되자 평온해졌다. 그래, 애가 나오고 싶을 때 나오겠지… 안 나오면 선생님이 꺼내 주시겠지... 기왕 걸을 거 택시를 타고 서울 내에서 내가 좋아하던 장소를 가서 걸었다. 고궁에 가서 한참 산책을 하고 나오면서 그동안 꾹 참고 마시지 않았던 에스프레소 커피를 마셨다.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모든 책 코너를 주마간산 건드려보며 서점 걷기를 했다. 전부터 가고 싶던 디저트 가게에 가서 케이크 두 개를 남김없이 해치우고는 두 개를 더 포장했다. 나는 임산부니까. 그것도 예정일이 지난 임산부니까! 부른 배를 싸안고 남산에 가서 사랑의 자물쇠들을 헤아리며, 로맨스의 끝엔 살이 찢어지는 고통이 있을 뿐이구나 하고 남의 로맨스가 아니라 남의 진통을 상상했다. 결코 마음을 내려놓을 수는 없었지만 내려놓은 척을 하며 열심히 돈을 썼다.


예정일이 닷새가 지나고 예정된 달을 넘기자 주변에서 하나 둘 연락이 왔다. 무사히 잘 낳았냐는 카톡에 아직 소식이 없다는 머쓱한 답장을 하며, 나는 자연진통을 포기하고 유도분만 입원에 대비한 짐을 싸기 시작했다. 유도분만 이틀 전날, 코로나가 무서워 한동안 가지 않던 초밥집에 가서 마지막 만찬을 먹었다. 여기서 코로나에 걸리더라도 입원 날에 바로 코로나 검사에 양성이 뜰 것 같진 않았다. 거의 일 년 만에 먹는 초밥을 입으로 쓸어 담으며 내일은 방금 뽑은 따끈한 면을 먹어야겠다 생각했다. 배달 음식으론 그 맛을 다 느낄 수 없는 바지락 칼국수나 매콤한 짬뽕을 먹으리라.


다음날 나는 칼국수도 짬뽕도 먹을 수가 없었다. 초밥을 먹고 돌아온 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일어나 뒤척거리다 옆으로 돌아눕는데 뭔가가 아래에서 톡 끊어지는 느낌이 났다. 설마 하고 일어서려는데 따뜻한 액체가 주르르 흘러내렸다.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안도감과 혹시 뱃속의 양수가 다 흘러내려버리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을 안고 P를 깨워 말했다. 아주 오랫동안 기다려온 대사였다.


“나 양수 터진 것 같아.”


그리고 나는 평생을 구전으로만 들어온 그 공포와 맞서 싸우기 위해 짐을 싸기 시작했다. 부랴부랴 가방을 싸 현관에 서서 퉁퉁 부은 발을 샌들에 욱여넣으며, 다시 이 집에 무사히 돌아올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 다시 돌아왔을 때 우리는 둘이 아니고 셋일까? 나는 지금과 같은 사람일까 다른 사람일까. 닫히는 현관문 너머로  부른 배로 짐볼에 앉아 임부요가를 하던 내가 보이는 듯했다. 진통을 부른 건 짐볼이었을까 계단 오르기였을까 아님 걸레질이었을까. 아님 그 무엇도 아니었을까.


어쨌든 넌 충분히 애썼어. 안녕, 안녕, 오롯이 혼자일 수 있었던 나. 다시 만날 수 없을 오늘까지의 나에게 작별인사를 하며, 나는 오직 나만이 끝낼 수 있는 싸움을 하러 전장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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