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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돌 Jul 24. 2022

내가 아기를 낳은 날

열 달을 기다려 온 오늘

출산이 어떤 경험이었는지 물으면 바로 입을 기가 어렵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진통이 얼마나 아팠는지에 대해 말해야 할지, 내진과 제모와 소변줄 꼽기가 준 충격에 대해 말해야 할지, 내 온몸을 사람들 앞에 내어놓은 채 한 마리 포유류 동물이 되어 울부짖었던 경험에 대해 말해야 할지, 아니면 오랜 기다림의 끝에 아기와 처음 만났던 순간의 환희와 뿌듯함에 집중해야 할지 모르겠다. 사실 출산은 그 모든 것이다. 내 앞에 앉은 다른 엄마가 출산의 어떤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하더라도 나는 그에 맞게 맞장구를 칠 수 있을 것 같다.


죽을 만큼 힘들고 다 처음이라 낯선데 동시에 기쁘고 뿌듯한 무엇. 이 양가감정은 출산뿐 아니라 육아에 있어서도 이어졌다. 나의 상태와 상황에 따라서 마음은 이리저리  변하고 흔들렸다. 그래서 글을 쓰기가 쉽지 않았다. 나는 그중 무엇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까. 이것에 대해 이야기하면 저것을 빠뜨리는 것이 아닐까. 엄마가 된 내 모습이 어제는 싫었는데 오늘은 좋다면 나는 그게 좋다고 말해야 할까 아님 싫다고 말해야 할까.


하나의 주제의식으로 뾰족하게 정돈된 글, 시선을 사로잡는 제목 붙이기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서야(브런치는 이런 글을 좋아하는 것 같지만) 글을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앞으로도 나는 이 아기를 낳고 기르는 일에 대해 오늘은 고통에 내일은 기쁨에 머물면서 이리저리 헤매는 글을 쓰게 될 것 같다. 모순과 변화와 성장에 대해, 정돈되지 않은 기록을 남겨보고 싶다.






출산은 처음부터 끝까지 내 예상과 벗어났다.


병원에 도착할 때만 해도 나는 몰랐다.


뱃속에서 아기가 태변을 봤다는 것,

아기가 태변을 먹을 수도 있으니 출산 진행이 빨리 되어야 하고,

안되면 제왕절개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


진행을 빨리 하기 위해 촉진제를 맞게 될 거란 것,

진통이 최대치를 찍을 때는 그렇게 유튜브를 보면서 연습한 호흡법이니 마인드 컨트롤이니 다 불가능하다는 것,

그저 보아뱀처럼 몸을 쥐어틀며 그저 참고 또 참을 뿐이라는 것.


그런데 사람 잡는 악마의 약물 같던 그 촉진제가

정말로 진행을 빠르게 해 줘서,

굵고 짧은 진통을 겪고 자궁문이 빠르게 열리게 될 거란 것,


그래서 자궁문이 3cm는 열려야 맞을 수 있다는 무통의 축복을 예상보다 일찍 누리게 될 거란 것,

그렇게 한숨 졸고 일어나면,

병원에 온 지 반나절도 안되어 아기를 낳게 될 거란 것.


그 어떤 것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어제의 나는 죽었다 깨나도 오늘 내가 겪게 될 일들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걸 알았다면 예정일을 한참 넘기도록 안 나오는 애를 원망하며 괜히 배를 두드려보지 않았을 텐데.






그토록 두려워했던 진통과 출산은 과연 아팠지만 상상했던 만큼은 아프지 않았다. 무엇도 내 상상보다 끔찍한 것은 없었다. 나의 상상에는 현대의학의 발전은 고려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련한 의사가 촉진제와 무통 주사를 절묘한 타이밍에 놓아준 덕에 나는 상대적으로 고통을 짧게 겪고 아이와 만날 수 있었다. 내 몸의 모든 것을 의사에게 펼쳐 내보여주는 것 같은 자세로, 하반신엔 감각이 없어 대체 무엇을 밀어내고 있는지도 모른 채, 이젠 정말 끝을 내고 싶다는 결연한 마음으로, 저승 갈 힘까지 끌어모아 최후의 힘주기를 한 뒤였다.


갓 태어난 아기가 생각보다 못생기거나 낯설면 어떡하지 걱정했는데, 실제로 내 가슴 위에 올라온 아기는 뱃속에 오래 있었던 덕인지 내 생각보다 크고, 따뜻하고, 예뻤다.


산모님, 산모님은 정말 고생하셨지만 그래도 저희는 여러 환자를 보니까요, 진행도 빠르고 정말 순산하신 거예요.


아직도 내가 아이를 낳았다는 것을 채 실감하지 못한 채, 유도제며 진통제를 잔뜩 맞아 정신이 얼얼한 나에게 간호사는 웃으며 말했다. 그때 나는 세상에서 순산이라는 단어는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꼭 산모 아닌 사람이 순산이란 단어를 쓰고 안 죽어본 사람이 호상을 말한다.


지옥에서 살아 돌아온 포상처럼 느껴지는, 동해바다만 한 미역국 한 사발을 저녁으로 먹었다. 오늘 태어난 아기가 예쁜 바구니에 담겨 병실로 배달되어 왔다. 모자동실이 원칙인 병원이라 아이를 낳은 첫날부터 아이와 밤을 같이 보내며 아기에게 젖을 물려야 했다. 방금 엄마, 아빠가 된 우리는 품에 안긴 아기가 호에엥, 호에엥 하고 울기 시작하자 뜨거운 냄비를 손에 든 사람처럼 어쩔 줄을 몰랐다. 아기는 보고 또 봐도 이쁘고 경이로웠지만 방금 애를 낳은 산모는 마취 기운도 풀리지 않은 환자인데 아기를 돌보는 것이 맞는가 싶었다. 남편이 신생아실에 이야기하여 오늘 밤은 쉬어야 할 것 같다고 아기를 돌려보냈다. 아기가 돌아간 뒤에도 한동안 귀에서 그 호에엥 호에엥 소리가 환청처럼 계속 들렸다.


이제야 조용해진 병실에서 나는 부모님과 친구들에게 출산 무용담을 전했고 회사에 출산 소식을 알렸다. 사람들의 수고했다는 말, 애썼다는 말을 들으며 열 달 동안 기다려온 오늘을 누렸다. 좀 더 누렸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아기를 낳은 그날은 사람들이 아기의 귀여움보다 엄마의 수고에 관심을 가져주는 마지막 날이었다.






병원에서 이박 삼일을 보냈다. 인생이 크게 바뀌는 시기에 머물렀던 장소들은 오랫동안 잊히지 않는다. 병원은 큰 대로변에 있었는데, 특실을 예약했지만 차도에서 들리는 소음과 밤늦게도 환한 도로의 불빛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그날 밤 나는 옆에 누운 남편의 코 고는 소리를 들으며 어슴푸레한 병실을 바라보았다. 나는 이제 아이를 낳아본 사람, 내가 애 낳을 때는 말이야, 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개선장군이 된 것 같은 흥분감과 앞으로 닥쳐올 날들에 대한 걱정 그리고 묘한 기대감으로 잠이 오지 않았다.


등 뒤에 여전히 꼽혀 있는 무통 마취약 덕인지 하체는 여전히 감각이 둔했다. 배의 통증이 느껴질 때면 간호사가 주고 간 진통제 버튼을 꾹 눌렀다. 어제까지 수박만 하던 배가 바람 빠진 풍선처럼 납작해진 것을 보며 아이를 낳았음을 실감하고, 한때 나와 한 몸이었던 아이는 세상에서의 첫날밤을 잘 자고 있을지 생각했다.


트럭이 짐을 내리는 소리와 취객의 전화 소리를 들으며 나는 이번 주에 진통을 기다리며 부른 배를 안고 혼자 걷던 길들을 떠올렸다. 궁 처마 밑에서 우산을 내리고 찍던 셀카, 배 때문에 테이블에 붙어 앉지 못하고 팔을 뻗어 떠먹던 케이크, 내 불안을 못 들은 척하며 무심히 흔들리던 강변의 갈대들, 미술관 문으로 다가가자 황급히 다가와 문을 열어 주던 다정한 사람들을 생각했다. 예정일이 미뤄져 부지런히 혼자 걸을 수 있던 날들이 이제 한동안 오지 못할 홀가분하고 자유로운 날들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날 밤 나는 도로의 소음과 불빛 속에서 기억 속의 길을 걷다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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