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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돌 Oct 11. 2022

피리 부는 사나이의 자장가

하루 네 번, 아기 재우기의 세계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아기 재우는 게 너무 힘들다고 하자 친구가 물었다.

내가 몰라서 묻는 건데... 애는 졸리면 혼자 못 자?


나는 말했다.

응, 절대 혼자 못 자!


아이를 낳기 전엔 아이를 재우는 것이 이렇게 힘든 것인지 몰랐다. 따뜻한 자궁 속에 둥둥 떠다니던 아기는 등 대고 누워 자는 법을 모른다. 아기들은 졸린 상태를 뭔가 몸이 불편하다고 인식하고, 잠드는 것을 낯설어하고 무서워한다. 긴장을 풀고 잠드는 법을 몰라서 오히려 온몸에 힘을 주고 운다. 나는 너의 옆에서 네가 안전하게 잠의 세계로 도달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자장가를 부르고, 쉬쉬 소리를 내고, 손목이 아플 때까지 토닥여주며 재운다.


수면교육 책에서는 아기가 졸린 순간을 잘 포착하는 것이 잘 재우기의 핵심이라 했다. 너는 졸리면 눈이 가물가물 작아진다. 좋아하는 장난감을 줘도 멍하니 바라보기만 한다. 졸린 너를 데리고 침실로 데려가 눕힌다. 너는 눕히자마자 악을 쓴다. 너에게 있어서 졸리다는 기분은 무엇일까. 마치 깊은 해저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 같지 않을까. 너는 점점 네 몸이 가라앉는 것을 느낀다. 가라앉기 싫어서 몸부림을 친다. 왜 나를 이상한 곳으로 끌고 가는 거야, 하고 손발을 휘두르고 소리를 지르며 운다.


나는 피리 부는 사나이가 아이들을 숲으로 인도하듯이, 저항하는 너를 잠의 세계로 끌고 들어간다. 피리가 없는 나는 자장가를 부른다. 자장자장 우리 아가, 잘도 잔다 우리 아가. 나는 절에서 관세음보살을 부르듯이 간절한 마음으로 자장가를 부른다. 제발 우리 아기를 얼른 재워 주소서. 저도 점심 맘마를 좀 먹고 싶습니다.  


자장자장을 백번은 한 것 같은데 너는 도무지 잠들 생각이 없다. 사실은 졸리면서도, 세상에서 가장 억울한 사람의 표정을 지으며 몰려오는 잠과 사투를 벌인다. 칭얼거리는 너를 보는 일은 힘들고 지치지만 다시 인내한다. 나는 사람이 아니다, 고장난 라디오다, 라고 생각하며 자장가를 다시 부른다. 아기 재우는 엄마의 일은 아기가 자야 끝이 난다. 고장난 라디오를 자처한 나라는 존재는 해파리처럼 얇고 희미하고 흐물흐물해진다. 해파리가 된 나는 우는 너의 손을 잡고 깊은 해저로 너를 끌고 들어간다.


자장자장 우리 아가, 잘도 잔다 우리 아가.

그렇게 두려워할 게 아니야.

자장자장 우리 아가, 잘도 잔다 우리 아가.

바닷속에는 아주 예쁜 물고기들이 많단다.

자장자장 우리 아가, 잘도 잔다 우리 아가.

꿈에서 재미있게 놀고 다시 일어나서 엄마랑 만나자.


그렇게 오 분, 십 분, 십오 분. 너는 눈을 감았다가 (나는 기뻐한다) 다시 눈을 떴다가(나는 낙담한다)  감는다.(다시 안도한다) 너의 목소리가 커지고 버둥거림이 격해져 ‘과연 이대로 재울 수 있을까?’ 싶을 때, 그때가 바로 네가 잠들기 직전이다. 동트기 직전이 가장 어둡단 말처럼, 네가 가장 칭얼거릴 때가 바로 잠들기 직전이라는 걸 나는 하루 네 번씩 너의 잠을 재우며 알게 되었다. 너는 세상에서 가장 시큼한 걸 먹은 사람처럼 얼굴을 찌푸리다가, 건전지가 다 된 인형처럼 갑자기 멈춘다. 잠든 너는 깨어있을 때의 너보다 네 배는 어여쁘다. 너의 얼굴을 요모조모 감상하면서 몇 분 더 네가 정말 잠들었는지 지켜보다가 문을 닫고 나온다. 이 잠재우기 노동의 핵심은 하루에 이걸 최소 세네 번은 해야 한다는 데에 있지만 일단 문을 닫고 나오는 순간은 그걸 잠시 잊기로 하자.


너를 재우며 나라는 존재는 투명한 해파리처럼 희미해졌다.  네가 잠든 몇십 분 동안 나는 희미해진 나를 다시 좀 채워야겠다. 나는 전자레인지에 햇반을 넣는다. 2분이 다 되어 띠띠띠 소리를 내기 직전, 1분 57초에 햇반을 꺼내는 센스를 잊지 않는다. 어떻게 재운 잠인데 너를 깨울 순 없지. 푹 자라, 아가. 색색의 물고기로 가득한 바닷속에서 네가 재미있게 놀고 나오기를. 가능하면 오래, 아주 천천히 헤엄치다 나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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