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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돌 Jul 15. 2018

직장인 독립출판 도전기

매일 하면 직업이다. 매일 쓰면 작가다.

아아, 딴짓의 끝판왕. 딴짓의 최고봉. 독립출판. 어쩌다 내가 여기까지 흘러오게 되었을까. 


책을 읽는 사람이 없어 책이 안 팔린다고 아우성이다. 그런데 책을 내려는 사람은 참 많다. 버킷리스트 중의 하나가 '책 내기'인 사람도 많다. 나도 책 읽고 글 쓰는 걸 좋아했지만, 언젠간 꼭 내 책을 내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내가 그 정도로 세상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가? 책에 쓰인 나무가 아깝지 않을 만큼 가치 있는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가? 모니터상에서 정성껏 만든 보고서도 꼭 프린트해 보면 부족한 점이 보이곤 하는데,  내가 쓴 글이 물성을 갖춘 책의 형태가 되어 나온다면 얼마나 부끄러울 것인가?


휴직을 하고, 복직을 하면서 마음에 몽글몽글하게 고이는 생각들이 있었다. 그걸 세상에 꺼내어 보이고 싶어졌다. 기존에 발행한 브런치 매거진 <대담한 휴직 일기> 의 내용에 일부 추가하고 편집해서 독립출판의 형태로 책을 만드는 것을 계획중이다. 인디자인 수업을 듣고, 인쇄 실무 강연을 듣고, 독립출판 워크숍에 참여하며 출판을 준비하고 있다.


나는 도대체 왜 독립출판을 하려고 하는 걸까? 



1. 세상에 내어 놓고 싶은 이야기가 생겼다.

쉬어 보니 보이는 세상이 있었다. 회사의 속도와 남들의 속도에 맞추지 말고, 내 속도로 가도 된다고, 그래도 죽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어 졌다. 나도 아직 명함과 월급을 놓지 못한 쫄보이면서도, 나 같은 쫄보들을 격려하고 싶어 졌다.  


이런 내용을 책으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을 때, 무급휴직을 허락하는 회사가 얼마나 되겠냐, 너의 이야기에 공감을 가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 다들 먹고살기 바쁜데 배부른 소리가 아닌가 하는 피드백을 들었다.


배부른 소리 맞다. 나는 그 배부른 소리를 하고 싶다. 먹고살만해진 인간, 허기를 채운 인간이 상위 욕구를 갖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왜 배부른 소리를 하면 안 되지? 다들 배부른 소리를 편하게 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난 솔직히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잘 모르겠어. 쉬면서 좀 찾아보고 싶은데, 막상 쉬게 되면 뭘 할지도 잘 모르겠어.' 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이렇게 쉬어봤는데 이렇더라는 작은 참고 사례 하나를 나누어주고 싶다. 


"저도 그랬는데요, 그래서 한번 쉬어봤거든요. 괜찮던데요. 좀 쉬어도 큰일 안 생겨요. 다시 일할 힘도 좀 생기구요. 그냥 저는 그랬어요. 뭐 대단한 이야기는 아니지만요."


간절히 휴식이 필요한 사람 등 떠밀어 주고 싶다. 일을 안 하니 불안해 미치겠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내가 휴직을 할 때 듣고 싶었던 그 이야기를, 남에게도 해 주고 싶다.



2. 독립출판을 통해 판매의 A to Z를 경험해 보고 싶다는 마음

대기업 마케팅 직군에서 몇 년을 일했다. 분업이 잘 되어 있는 큰 조직의 특성상 나는 내가 파는 제품의 판매 루트에서 오직 일부만을 담당했다. 상품기획서를 쓰고, 가격 테이블을 만들고, 세일즈 가이드를 만들었다. 하지만 제품의 제조, 판매, 영업과 유통까지 전 과정을 경험해 보진 못했다.

 

휴직하면서 사실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아주 작은 것이라도 내 손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팔아 보는 것이었다. 내가 자신 있게 남에게 권할 수 있는 것. 많이 팔면 팔수록 사람들이 더 행복해지고 덜 불편해지고 세상이 좀 더 좋아지는 그런 것. 그런데 무엇을 팔아야 할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교육? 비건 요리? 명상과 요가 같은 Zen 사업? 나는 끝내 그 '아이템'을 찾지 못하고 회사로 돌아왔다.


그러다 나의 휴직 이야기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래서 휴직하고 뭐했어? 어땠어? 다음에 길게 이야기 좀 들려줘." 


내 이야기를 한번 팔아보고 싶어졌다. 이건 상당한 쓰레기(종이)와 비용(인쇄비)을 발생시킬 수는 있지만 세상에 무해한 일이다. 대단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이다. 한번 이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팔아보고 싶어졌다.


같은 콘텐츠를 가지고 기성 출판사의 문을 두드려 책을 만들면 훨씬 수월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내 콘텐츠는 출판사의 매출과 손익에 영향을 미치는 상품 중의 하나가 된다. 상품은 잘 팔릴수록 가치가 있다. 내가 회사에서 하고 있는 일을, 누군가가 내 책을 대상으로 하게 된다. 그럼 이 잘 안 팔릴 것 같은 책을 잘 팔리게 해야 할 것 같다. 원래 하고 싶었던 이야기에서 군더더기를 빼고, 메시지를 선명하게 하고,  팔릴 만한 요소들을 배치해야 할 것 같다. 망해도 혼자 망해야지, 남을 망하게 해서는 안될 일이다.



3. 포트폴리오 인생의 시작

꿈꾸고 바라는 삶이 있다. 연구하고, 표현하고, 창조하는 삶이다. 복직 후 한동안 우울했던 것은 이 삶을 현재 회사 내에서는 구현하기가 어렵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노력을 하면 할수록 사막에서 물고기를 찾는 사람처럼 허무하기만 했다.

 

그러다 생각의 전환이 찾아왔다.

왜 회사 안에서만 해야 한다고 생각해?


주 40시간 이상을 일하는 정규직 직업에서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사람은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다. 나는 그런 운이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다닌 끝에 나도 저래야만 한다고 굳게 믿으며 회사로 돌아갔다. 하지만 다시 부딪힌 사회생활 속에서 계속 드는 생각은, 이것이 결코 내 전부가 될 수가 없다는 것이다. 00 회사 직원이라는 명함이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을 결정할 수 없다.


차 떼고 포 떼고, 명함과 직급을 벗어난 나는 나에게 무슨 이름을 붙여 주고 싶은가? 부끄럽지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글 쓰는 사람'이었다. 쓰기는 가장 빠르게 나를 수동적인 소비자에서 능동적인 창조자로 만들 수 있는 작업이다. 신춘문예에 등단해야지만 작가라고 불리던 시절은 갔다. 서귤 작가의 독립출판물 <책낸자>에 나오는 말처럼, 매일 하면 직업이다. 매일 쓰는 사람이 작가다.


서귤(인스타 @seog_gyul), <책낸자> 중에서 



소심하게 열몇 부를 인쇄하고 개인 소장에 그칠지라도, 아니면 백몇 부를 찍었다가 평생의 라면 받침으로 쓸 지라도, 한번 시작해 보고 싶다.


* 책에 쓰인 나무가 아깝지 않을 만한 책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더 좋은 콘텐츠를 만들고, 가능하면 재생지를 사용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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