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7일 토요일. 오늘은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가는 날이다. 아점을 먹고 나갈 채비를 했다. 오래 묵혀둔 내의를 찾아 꺼내 입었다. 두꺼운 스웨터를 입고 목도리를 걸쳤다. 나름 완전무장을 했다. 빵 모자는 쓰지 않았다. 나는 겨울바람의 차가움을 맨얼굴 그대로 마주하고자 했다. 좀 추위에 떨어도 불편해도 괜찮다. 그래야만 계엄군을 온몸으로 막았던 시민들에게 좀 덜 미안할 것 같다. 겨울 햇살은 뾰로통 화가 났고 바람은 우쭐했다.
안산 중앙역은 여느 휴일처럼 평온했다. 넉넉잡아 1시간 20분 거리다. 평소와 다름없이 전동차 안은 조용했다. 꾹 다문 입에 무표정한 얼굴은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었다. “윤석열이 국가비상계엄을 발령했대” 아내가 방문을 벌컥 열고 다급하게 말을 했을 때, "에이, 설마!"하면서 나는 유튜브에 바로 매달렸다. 야당 대표 이재명이 “국민 여러분 국회로 와 주십시오”라는 긴급한 메시지가 떴다. 가슴이 출렁했다. 마치 5.18 광주 사태 때 “계엄군이 쳐들어옵니다. 시민 여러분. 우리를 도와주십시오”라는 그 살 떨리는 목소리가 환청으로 들렸다.
오후 3시 15분경 9호선 환승역 동작역에 도착했다. 내리자마 엄청난 인파에 나는 휩쓸렸다. 불편했지만 그제서야 안도감이 밀려왔다.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나는 무엇을 그리워했는지. 그것은 바로 시민들의 위로였다. 지난 3일 내내 심리적 테러를 당한 나는 비로소 평온을 찾았다. 승하차 플랫폼은 이미 시민들로 꽉 메워졌다. 나는 이 엄중한 침묵의 기다림이 새로운 공동체를 잉태하는 마중물인 듯하여 힘을 냈다. 국회의사당역과 여의도역은 무정차 통과를 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연이어 전동차가 플랫폼에 도착했지만 겨우 3~4명 정도만 탑승했다. SNS에 커피값 200인분을 선 결제했다는 메시지가 약도와 함께 연이어 올라왔다. 가슴이 저미었다.
오후 4시경 국회의사당역 두 정거장 앞 샛강역에 도착했다. 구름떼처럼 사람의 물결을 따라 천천히 질서정연하게 전철역을 빠져나왔다. 바로 교차로 앞, 병목이 되어 수많은 사람이 운집했다. 그중 누군가가 “윤석열 탄핵” 선창했고 대기하던 시민들이 구호를 따라 외쳤다. 그 함성은 찬바람에 실려 팔랑거렸다. 찌릿한 전율이 등줄기 타고 올랐다. 거리는 인파들로 붐볐다. 걷다가 섰다가 밀렸다가 때론 멈추어서 한 무리의 공연을 지켜보았다. 그리하여 마침내 국회의사당 광장에 도착했다. 에너지는 집중하는 곳으로 흐른다. 내가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광장에서 탄핵의 에너지가 힘껏 치솟았다. 어제는 절망의 파도가 미친 듯이 날뛰었지만, 오늘은 희망의 여명이 뻔쩍였다.
광장에 어둠이 조용히 깔렸다. 김건희 특검법이 2표 차이로 부결되자 탄식이 터졌다. 시위는 절정으로 치달았다. 탄핵 투표 절차가 진행되자 시민들의 구호는 어둠의 하늘을 뚫고 힘껏 솟구쳤다. 여당 국회의원이 한 명이 투표장으로 들어오자 함성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K-pop 노래가 광장을 회오리치듯이 휘감았다. 노래에 따라 야광 응원봉을 흔들며 떼창을 하고, 목청껏 구호도 외쳤다. 그 주인공은 2030여성들이었다. 그녀들은 막막한 슬픔에 아랑곳하지 않고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였다.나는 슬며시 인도로 빗겨 섰다. 시위는 엄중하면서도 흥겨운 축제였다. 시대의 역사 소명은 무거웠지만 주눅들지 않았고 우뢰같은 분노가 여의도 광장을 짓눌렀다. 그랬다. 이젠 위정자들이 가소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