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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융한삶 Jun 28. 2024

2015 자전거 국토종주_닷새



방이 훈훈해서 더 늦잠을 자고 싶었지만,

일어나 출발할 채비를 했다.


옷은 덜 말라 있었다.


아침 일곱 시.


인사를 하고 떠나려 하자

보살님이 아침을 먹고 가라고 하셨다.


시래기 국과 건강한 나물 반찬으로 

발우를 비웠다.


감사 인사를 드리고

무심사를 나왔다.





젖은 산 냄새가 좋았다.


동상을 마주보며 스트레칭을 하고,

핸드폰으로 버스를 예약했다.


오후 10시 20분 버스.

시간이 충분히 여유로웠다.


오늘만큼은 전투가 아니라,

여행을 하고 싶었다.


마지막의 시작이 좋았다.





합천 창녕보에 도착했다.

본격적인 출발지였다.


앞으로 약 150km.





안장통은 진화했다.


욱신거리는 통증에

따가운 통증이 더해졌다.


땀띠가 난 것 같았다.





적포교에 도착했다.

인터넷에서 얻은 지도를 보고 길을 찾아갔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이 지도가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게 기억이 난다.


이정표가 없으니 거리 개념이 잘 잡히지 않았다.

잘 찾아가고 있는지 불안했다.


멈추기도 하고 돌아가기도 하며 길을 헤맸다.

그래도 이 지도가 없었다면 훨씬 헤맸을 것 같다.


5km는 결코 짧은 거리가 아니었다.


다행히 남지대교를 찾았고, 

다시 종주 이정표가 눈에 보였다.


날씨가 좋았고 길도 좋았다.


빨리 도착해

여유롭게 터미널에서 쉬고 싶었다.


친구들과 전화하며 즐겁게 달렸다.





이제 100km도 남지 않았다.





창녕 함안보에 도착했다.


근처에 식당이 없었다.

편의점에서 찰바와 맥주 한 캔으로 간단히 점심을 때웠다.





밀양에 도착했다.

부산에 있다는 게 감격스러웠다.





점점 해가 진해지고 바람이 많아졌다.

길도 좋고 날도 좋았다.


무릎 통증이 서서히 일어났다.

앉아 쉬면서 통증을 달랬다.


무리 할 필요가 없었다.

시간은 아직 많았다.





역풍이 점점 강해졌다.

앞으로 나아가기가 힘들었다.


바람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었는데.

매우 뜻밖의 복병에 당황스러웠다.


들인 노력에 비해

내가 간 거리는 너무도 적었다.


바다 근처에 왔다는 신호인 것 같았다.


날이 더워졌다.

옷을 벗으면 춥고 입으면 더웠다.


무릎에 힘이 빠지는 게 느껴졌다.

무릎통 때문에 자주 안장 높이를 손 봤다.


사소한 것들이

야금야금 시간을 갉아 먹고 있었다.


어느새 네 시가 되었다.





점심을 시원찮게 먹어서

금방 힘이 빠졌다.


시야의 초점이 흐릿하게 잡히지 않았고,

눈을 감을 때 피곤이 깊이 느껴졌다.


근처에 횟집이 하나 보였다.

더 이상 배가 고파서 안되겠다 싶어 들어갔다.


붕어 매운탕을 시켜서

배가 터지게 먹었다.


푸짐한 살과 커다란 알과

시원한 국물까지 싹.


공기밥도 추가해서 다 먹었다.


후식으로 주신 고구마도 가방에 챙겼다.


다시 출발했다.

어느새 거의 다섯 시였다.





해가 지면서

그림자가 조금씩 길어지고 있었다.


시간이 촉박촉박 지나갔다.


그래도 예쁜 풍경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무릎통은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20km밖에 안남았다.

하지만 0.5km를 줄이는 게 너무 힘들었다.





왼쪽 바깥 무릎의 시린 통증과

오른쪽 안쪽 무릎의 쑤시는 통증이

동시에 심해졌다.


무릎통 때문에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았다.


게다가 길을 잘못 들었다.


진입 금지 비포장 도로라고 써있었지만,

왠지 그 길로 달리고 있었다.


이십 분쯤 달렸을 때 이상함을 느꼈고,

지도를 봤을 때는 이미 늦었다.


넉넉했던 시간은 부족해졌고,

무엇보다 무릎을 많이 손해 봤다.


몇 분 전보다도 훨씬 어두워졌다.


곧 바른 길을 찾았고,

전력을 다해 밟았다.


아파도 할 수가 없었다.





산책로같은 코스에 도착했다.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옆에는 전철과 아파트 단지가 보였다.


왼쪽 무릎이 끔찍하게 아팠다.

무릎에 힘을 줘 페달을 밟을 수가 없었다.


살이 뼈에

달랑달랑하게 매달려만 있는 느낌.


가느다란 실로

아슬아슬하게 꿰매져 있는 듯한 느낌.


무릎 안에 사는 난쟁이가

고문을 당하며 소름 끼치는 비명을 지르는 듯한 느낌.


조금 더 힘을 주면 툭 끊어져

영영 쓸 수가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문제는 오른쪽도 마찬가지였다.

아픔의 종류가 달랐다.


뼈가 깨진 자리를

망치로 계속 때려 뼛속까지 멍이 든 느낌.


무릎을 들 수는 있었지만

페달을 밟아 힘 줄 때 불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앞에 가는 사람 자전거에 줄을 매달고

끌어달라고 부탁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결국 내려서 걸었다.

걸으며 생각했다.


이만큼 했으면 잘한 거 아닐까.

완주했다고 쳐도 괜찮지 않을까.


그래도 계속 걸었다.

어쨌든 앞으로 나아갔다.





내 생에 가장 긴 10km였다.

걸어서는 두 시간정도 되는 거리였다.


생각해보니 목적지에 도착한다고 끝이 아니었다.

버스를 타기 위해서는 역까지 가야했다.


그러려면 지하철도 타야했다.


너무 많은 것을 간과하고 있었다.


별 수 없이 꾸역꾸역 나아갔다.

어쨌든 곧 목적지가 있었다.






4km정도 남았을 때 한계였다.

붕대를 꽉 조여봐도 소용 없었다.


이러다 무릎이

무릎 밖으로 튀어나올까 걱정이 됐다.


오른쪽 손으로만 핸들을 잡고

오른쪽 발로만 페달을 밟았다.


왼쪽 손으로는

왼쪽 다리를 들었다.


훨씬 나았다.

앞으로 갈 수 있었다.

가능성이 보였다.





종혁이에게 전화가 왔다.

도착했냐고 물었다.


나는 거의 울먹이면서 웃으며 씁쓸하게 대답했다.

아직이라고. 너무 아프다고.


그래도 걱정말라고 했다.

이따 열 시 이십 분 차를 타고 집에 갈 거라고 했다.


술이나 먹게 기다리고 있으라 했다.

종혁이는 그러겠다고 했다.


2와 1의 차이는 너무나도 컸다.

2km는 어렵게 느껴졌지만 1km는 서럽게 느껴졌다.


어쨌든 이제 진짜 거의 다 왔다.





0.8km를 목전에 두고

긴 다리 하나를 건너면 도착이었다.


그래서 이걸 찍을 여유가 잠깐 있었나 보다.





완주했다.

마지막엔 한 팔과 한 다리로.


인증부스에서 마지막 도장을 찍고,

주소를 쓰고, 수첩함에 수첩을 넣었다.


끝났다.






여느 사람들처럼 자전거를 들고

웃는 모습을 찍을 수가 없었다.


대신 환하게 웃고 있는,

때 묻은 녀석을 정성스레 찍어줬다.


아빠에게 전화했다. 완주했다고.

내일은 집에 가겠다고.


아빠는 말하셨다.

고생했다고.


네가 자랑스럽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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