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 하굿둑.
종주는 끝났다.
하지만 여행은 끝나지 않았다.
하단역을 찾아가야 했다.
종주가 끝났다고
무릎 통증이 갑자기 사라지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여전히 한 팔 한 다리였다.
하지만 적어도 이제는 웃을 수 있었다.
입김 나오는
2월의 겨울 저녁.
반바지에 파스 투성이에
더러워진 붕대를 칭칭 감고
자전거를 타는 꾀죄죄한 몰골을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봤다.
웃음이 나왔다.
속으로 생각했다.
'당신들은 이런 걸 경험해 봤나요?'
표를 끊고 전철에 탔다.
열 시가 지났다.
부산역까지 7분정도.
가서 버스를 타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종혁이에게 카톡을 했다.
곧 부산역에서 내려서 버스를 탈 수 있다고.
종혁이는 말했다.
부산역이 아니라 남포역으로 가야한다고.
거리 검색을 하자
남포역까지는 지금부터 17분이었다.
10시 20분 차를 타야 하는데.
다시 초조해졌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남포역에 도착했다.
자전거를 들고 계단을 오르기가 힘들었다.
무겁고 무릎이 아팠다.
뛰었다.
예약한 표를 발급 받고,
일층으로 내려가 버스를 찾았다.
다행히 늦지 않았다.
버스에 탄 많은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봤다.
그 눈빛들은
꽤 오래 기억될 것 같다.
자리에 앉아 잠시 눈을 감았다.
추워서 눈을 떴다.
3시간이 지나 있었다.
터미널에 도착했다.
1시 30분의 새벽은
많이 추웠다.
항상 보던 거리가 낯설었다.
긴바지를 꺼낼 힘이 없어
그냥 반바지로 걸었다.
자전거를 탈 힘이 없어
그냥 끌고 걸었다.
술 먹자던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녀석들은 이미 취해 있었다.
씻고 나간다고 말하려다가
오늘은 그냥 쉰다고 말했다.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고
다른 친구 녀석도 전화를 했다.
할 얘기가 참 많았지만
걔네 집은 너무 멀었다.
다음에 보자고 했다.
치킨이 먹고 싶었다.
오늘은 사치를 부리고 싶었다.
그치만
일요일 새벽 두 시에 여는 치킨집은 없었던 것 같다.
그래도 치킨을 포기할 수는 없어서
미니스탑에서 캔맥주와
점보 닭다리 두 개를 샀다.
올 겨울
처음으로 보일러를 틀었다.
모든 옷을 벗고
모든 짐을 풀었다.
정리는 내일 하기로 했다.
가방 안에는
횟집에서 챙긴 고구마가 나왔다.
으깨진 고구마.
모든 게
꿈처럼 느껴졌다.
"그건 참 놀라운 일일 겁니다. 언제고 만약 내가 여행을 하게 되면, 출발하기 전에 내 성격을 가장 사소한 점들까지도 기록해두고 싶어질 것입니다. 돌아왔을 때, 전에 내가 어떠했으며, 그 후에 어떻게 변했는가를 비교할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책에서 읽은 이야기지만 어떤 여행자들은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정신은 물론 육체도 몹시 변해서 그들의 가장 가까운 친척들도 그들을 알아보지 못했답니다."
장 폴 사르트르. 구토 中
모든 것이 그대로지만,
모든 것이 변했다.
이 문장이
숨처럼 가깝게 느껴졌다.
너무나 친근한 내 방, 내 옷, 내 책, 내 물건들은 모두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지만,
너무나도 낯설고, 너무나도 신비하고, 너무나도 고마웠다.
일주일도 지나지 않았지만,
일 년만에 보는 듯 새로웠다.
'고생했다'는 말이 듣고 싶었다.
인정 받으려고,
누가 알아주길 원해서 떠났던 여행은 아니었지만,
지금 고생했다는 말을 듣는다면
그 목소리를 건네준 사람은
오래오래 못 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누군가
고된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다면,
반드시 그날
고생했다고 말해주리라 마음 먹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여행 중에 많은 생각을 하고 싶었는데,
거의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오직 달리는 것과 방향, 통증만 생각했고,
다른 생각이 끼어들 겨를이 없었다.
하지만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생각들이 저절로 정리되어 있음을 깨달았다.
한 달이 지났다.
개강을 했고, 학교를 다니고 있다.
무릎과 아킬레스건의 후유증은
아직도 조금 남아있다.
여전히 게으르고,
여전히 바보같고,
여전히 후회도 하며 살지만,
조금 더 성실해졌고,
조금 더 여유로워졌고,
조금 더 행복해졌다.
나라를 구한 거대한 경험은 아니었지만,
나를 구한 고마운 경험이었다.
[에필로그]
5년만에 국토종주의 경험을 되새기니
또 다시 여행을 하고 온 기분이다.
5년 전과 지금은 긍정적인 의미로
정말 많은 것이 달라져 있다.
나는 그 전환점이
국토종주였다고 확신한다.
지금 읽어 보니 참 안쓰럽다.
심각했고, 절박했고, 여유가 없었다.
무모하고, 어리석고, 유연하지 못했다.
물질적·정신적으로 촉박함을 강박하며,
과정을 즐기지 못하고 결과에만 집착했다.
뭐가 그리 심각했을까.
훗날 다시 같은 여정을 떠나게 된다면,
반드시 '종주'가 아니라 '여행'을 해야겠다.
하루하루 순간순간의 과정을
감사히 여기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