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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우 Sep 13. 2024

더 이상 묻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갱년기-

아내와 갱년기

<Poem_Story>


수영구 도서관에서 신문을 보다가 '현대인의 우울증'에 대한 일간지 칼럼이 눈에 띈다.

산후우울증, 갱년기 우울증 등 우울장애라고도 한단다. 현대인에 있어서 우울증은 늘 우리 옆자리에 같이 있다.

기대가 컸던 일들의 실패로 인한 자기 비하, 꼬박꼬박 어렵게 모은 돈과 레버리지를 이용하여 주식이나 코인, 부동산 매수에 올인하였다가 털린 후 상실감과 기약 없는 재정 상태에 대한 실망, 큰 수술을 통해 발생되는 신체적 장애, 폐경 등 호르몬 변화 등을 통한 갱년기의 신체적 변화, 해낼 수 없다는 무기력감 등 그 원인도 각양각색이다. 

정신과 전문의는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나 관련 서적 등을 통해 신체나 정신적 리듬의 변화를 미리 준비해 둘 필요가 있다거나, 무언가 정신이 팔릴 정도로 자신의 몸을 힘들게 하는 운동이나 취미를 배우라고 하고, 정도가 심하면 반드시 정신과 상담을 통해 약물이나 전자식 치료받기를 권유한다.


50대 중반을 넘어가는 아내는 밤새 자주 잠을 깬다. 덥다며 에어컨의 온도를 low로 내렸다가 조금 후 춥다며 에어컨을 꺼버린다. 평소 서울 말투에서 쇳소리가 섞인 경상도 말투로 옥타브가 오른다. 식사 준비도 하기 싫어 자주 외식을 하자고 한다. 연속극을 보면서 비운의 주인공을 닮아가는 듯 우아하게 훌쩍거리는 횟수도 잦다. 그 과정을 나도 경험해 봤기에 묻거나 건드리지 않고 조금 떨어져 지켜만 본다.


퇴근길 아파트 주차장 먼발치에서 아내가 어깨 쪽이 늘어난 원피스에 헝클어진 머리 상태로, 오른손에 꽉꽉 눌러 채운 20리터짜리 푸른색 쓰레기봉투를, 왼손에 음식물 쓰레기봉투를 들고 리사이클링장으로 가는 것을 본다. 아는 체를 하면 금방 울어버릴 것 같다. 숨죽이며 뒤따른다. 아내는 귀뚜라미 소리 간간이 들리는 아파트 마당을 심호흡 크게 몇 번씩 반복하며 오래동안 걸었다. 바람은 열을 내려서는 키 큰 나무와 키 작은 나무사이로 불어준다. 질끈 맨 머리밴드 사이로 삐져나온 아내의 머리카락이 뜨겁게 날린다. 한참 동안 그녀를 부르지 않았다.

"그래 더 이상 당신에게 왜라며 묻지 않는 게 좋겠다"  시간이 지나면 돌아올 것을 믿기에...   





<더 이상 묻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질끈 묶은 머리카락 일부가 삐져나왔네요

가득찬 20리터 쓰레기봉투를 든 어깨도 축 처졌네요

말수도 적어지고, 한숨은 자주 쉽니다.

 "힘들지"

삶에 쟁여둔 고단한 냄새가 뭉게뭉게 탄로 납니다.


묻다 보더 숨차하고 빠지면 헤어나기 어려울 것 같아

소리 지르는 것도 고의로 잊어버린 당신일 겁니다.

괜찮나고 묻는 말도 위로가 되지 않기에 말없이 멀어져 봅니다.


약해지고 더 힘들어질 테지만  

그 늪에서 욕하고 고래고래 외치다 보면,

길가에 낙엽이 쌓이고, 온도 내린 바람이 서서히 여름을 지워내면  

버텨낼 힘이 단단해지는 삶의 비밀을 경험했기에

나약하고 더 울부짖고 소파 구석이 되어가는 모습만 지켜봅니다.


해줄 수 있는 건 동백섬, 해파랑길 묵언하며 함께 걷고,

전망 좋은 카페 들러 따뜻한 아메리카노 함께 마시고,

빽빽한 편백나무 숲에 홀로 두면,

여기까지 문제없이 살아왔기에

여러 날 펑펑 울고는 익숙하게 돌아올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더 이상 캐묻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동아일보 오피니언-누구나 우울증이 많다는 칼럼을 읽으며-갱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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