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이승철이 매스컴에 자주 등장한다. 돌싱포맨에도 나오고, 개그맨 김대희의 유튜브 채널, 박명수가 진행하는 라디오에도 출연했다. 데뷔한 지 38년 된 베테랑, 명색이 라이브의 황제도, 걱정이 이만저만 아닌 듯하다. 절친한 후배 싸이와 성시경의 공연은, 별다른 홍보 없이도 티켓 오픈과 동시에 매진이라던데, 10년 차가 크긴 큰가 보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1986년 그가 처음 그룹 부활의 보컬로 데뷔했을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내가 벌써 마흔 중반을 넘어가니, 여전히 활약 중인그의 꾸준함이 새삼 대단하다는 생각이다. 몇 년 만에 다시 시작하는 콘서트 티켓이 안 팔릴까 봐, 직접 이곳저곳 출연을 요청한다는 그의 너스레도, 실은 자신감의 표현이 아닐까 싶다.
과거의 영광에 사로잡혀, 허구한 날 옛날의 인기, 지난 히트곡, 세월의 야속함만 얘기하고 다녀봐야 무슨 소용 있겠는가. 이제 콘서트가 아니라, 디너쇼를 할 나이 아니냐는 우스갯소리, 아니 뼈 있는 농담에도, 그는 저녁 7시에 콘서트장에서 노래 부르면, 그게 바로 디너쇼 아니겠냐는 대답으로, 여전한 패기, 자신감을 드러낸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른 자연스러운 가창 기량의 퇴색, 인간 이승철에 대한 극단적인 평가, 티켓 파워의 하락 등을 그가 스스로 모를 리 만무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0대 후반의 이승철은, 계속 신곡을 발표하고, 콘서트를 연다.
그가 동년배인 신승훈, 김건모처럼 한 시대를 풍미한 적은 없다. 이문세처럼 만인이 좋아하는 국민가수라고 하기도 애매하다. 작곡, 악기연주 등에 능한 전천후 뮤지션 또는 싱어송라이터라고 부르기도 어렵다.
하지만, 지금도 그는 서른 살 어린 악동 뮤지션 찬혁에게 먼저 찾아가 곡을 부탁하고, 원곡자의 가창 지시를 받아 노래 부른다. 그런 모습이 어색하지도 않다. 이러쿵저러쿵 말은 많아도, 38년 차 가수 이승철은 현재 진행형이다. 그가 라이벌들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다.
한 번도 최고였던 적 없는데, 38년을 계속하니, 최고가 됐다. 꾸준함이 최고의 덕목이다.
지금까지 총 2,000번이 넘는 공연을 해 온 이승철 콘서트의 백미(白眉)는, 뭐니 뭐니 해도 2010년 6월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열린, 데뷔 25주년 기념콘서트 <오케스트 樂>이다. 이 공연은 그 해 추석 MBC에서 특별편성으로 실황을 방송할 만큼 기념비적이었다. 총 5만 명 정도의 관객을 동원했다고 하니, 가수 이승철의 경력에 있어 하이라이트라 할 만하다.
2002년 재결합한 부활이 해체한 이후에도, 그는 2004년 발표한 정규 7집 <긴 하루>, 드라마 불새의 OST <인연>, 영화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의 OST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 2006년 정규 8집 앨범 <소리쳐>로 연이어 큰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세상은 '영원한 가왕' 같은 고정불변의 (남사스러운) 수식어를 허락하지 않는다. 인기는 거품 같고, 시류는 계속 변하기 마련이다. 2007년 발표한 정규 9집 <색깔 속의 비밀 2>, 10집 <뮤토피아>, 2010년 초 발표한 25주년 기념앨범 등은 예전만큼 호응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는 호기롭게 데뷔 25주년 콘서트를 강행해 잠실주경기장을 관객으로 가득 메웠다. 당시 공연은 60인조의 오케스트라, 약 200명의 스태프와 3D 무대 특수효과 등 규모와 음향 면에서 이승철 공연 사상 최대 규모로 펼쳐졌다.
공연은 화려하고, 웅장하면서도, 섬세하고, 감동적이었다. 먼 좌석의 관객들까지 고려한 사운드 덕분에 시종일관 멋진 음악을 즐길 수 있었다. 어린아이부터 장년층까지 고른 연령층의 관객들이 한데 어우러진 것도 특별한 경험이었다.
그의 공연은 게스트가 없는 것으로 유명하다. 조용필의 콘서트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라 했다. 단 한 명의 가수가 오롯이 2시간 이상을 이끌어 간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처음 공연을 관람하는 사람이 많기에 대중적인 히트곡이 많아야 함은 물론이고, 지치지 않는 체력과 흔들림 없는 가창력 등도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무엇보다도, 혼자서 스포트라이트를 감당해 낼 수 있는 자신감이 필요하다. 애초, 그 큰 잠실벌을 공연장으로 선택한 것은 일종의 모험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 달리 생각해 보면 그런 대규모 공연을 추진한다는 것 자체가 자신감의 표현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는 확실히 자기 인생의 주인공으로 살아간다. 공연에서도 수십억의 제작비가 오로지 한 명의 가수만을 보고 투여됐다. 200명이 넘는 공연 스태프들도 오직 한 사람에게 의지한 채 열정을 불사른다. 공연 진행에 따른 수익 배분 구조가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가수 본인이 누구보다 큰 부담감과 책임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일 터였다.
지금껏 살면서. 특별히 모험이라 할 만한 걸 해 본 적이 없다. 지금도 누군가 내게 10억 원을 투자할 터이니, 신규 프로젝트를 진행해 보라 한다면, 그 자리에서 거절할 가능성이 크다. 겁이 나서 피해 다닐지도 모른다.
일상의 단조로움을 벗어나고 싶다는 욕구가 생기다가도, 막상 어떤 기회가 오거나 과감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오면,우린 대부분 일상 속으로 다시 숨어버리고 만다. 결국, 그저 똑같은 것만 반복하면서 살 수밖에 없게 된다.
용기를 내고, 규칙에서 벗어나 다른 방식의 삶을 적극적으로 생각해 보아야 한다.
프랑스의 지성 자크 아탈리는 저서 <언제나 당신이 옳다>에서 '자기 자신되기'의 중요성을 언급하면서, 지금 당장 인생의 주인이 되라고 주장했다. 순응적인 태도와 이념과 윤리 등 모든 종류의 결정론에서 해방되어,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행동할 용기를 가지라고 조언한다.
좋은 삶이란 끊임없이 자신의 참모습을 찾고, 계속해서 자기의 참된 모습을 발견하는 것이다. 자크 아탈리는 구체적인 자기 자신되기의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안한다.
실업자라면 구인 공고를 기다리고 있지만 말고 직접 창업하기, 따분하게 자신을 소외시키고 있는 월급쟁이라면 일을 더 재미있고 창의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궁리해 보거나, 자신의 회사 창업하기를 제안한다.취미생활을 직업으로 발전시키는 것도 좋다.
이 세상에는 체념하고, 요구만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자발적으로 행동하고, 체념하지 않는 사람들의 수가 많아져야 세상이 진보한다. 사회적으로도 더 많은 에너지가 방출되어야, 부가가치도 창출되고 경제가 활력을 되찾을 것이다.
우리 스스로가 용기를 내고, 자기 인생의 주인공이 되려는 노력을 다할 때 체념의 분위기가 팽배한 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기댈 곳은 자기 자신뿐이다. 너무 늦은 시작이라는 것도 없다.
5만 명의 관객들에게 아프리카 우물 짓기 프로젝트를 설명하고, 동참을 호소할 수 있는 것은 용기다. 가끔은 맨발로도 무대에 오르고, 진하게 스모키 화장하고도 노래 부를 수 있는 것도, 결국은 자기가 인생의 주인공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25주년 오케스트樂 공연이 오랜 세월이 흘러도 뇌리에 계속 남아있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