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고스에서 시작한 평평한 메세타 지역을 원래는 5일 또는 6일 정도에 주파할 생각이었다. 길이 황량해서 별로 볼 것도 없고, 지형은 평평해 상대적으로 속도를 낼 수 있고, 부르고스에서 하루 쉬기도 했고, 나름 이제 걷는거에도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메세타 이틀만에 큰코를 다치고 보니 그건 그저 애송이같은 생각이었다.
어제 물집으로 고생을 하며 오래 걸어서일까 그동안 가끔 뻐근했던 왼쪽 발목 종아리부위가 본격적으로 아프기 시작했다. 굉장히 타이트하고 뻣뻣한 느낌이고 살짝 부은것도 같다. 물집을 손보고 나니 이제 의외의 곳이 출현하는구만.
오늘 가야할 곳은 까리온 데 로스 꼰데스, 원래대로라면 약 24킬로정도의 무난한 코스다. 동키를 부치는게 맞는것도 같은데 뭐 일단 배낭을 매고 꼰대처럼 캐리온 해보기로 했다. (놀랍게도 영국 아저씨들도 캐리온Carry on 투to 까리온Carrion 이라고 똑같이 아재개그를 해대고 있었다. 역시 아재들의 유우머 유니버스는 만국 공통인가?)
길은 그저 평평한 고원, 이정도면 아침에 날씨 좋을때는 룰루랄라 흥겹게 걷는 코슨데 오늘은 신중하게 한발 한발 내딛어야 한다. 길에서 마주치는 작은 예배당을 들러 살짝 에둘러가는 것도 마음의 부담이 된다.
아픈 부위에 부하가 덜 가고 물집이 아직 아물지 않은 발바닥에도 충격이 없도록 젠틀하고 소프트하게. 이렇게 걷다보면 내 다리 어느쪽이 더 무게중심이 쏠리는지, 어떻게 해야 특정 부위에 충격이 몰리지 않고 바르게 걸을 수 있는지를 계속 생각하게 된다. 잠깐 사이에 몸은 또 균형이 살짝 무너지거나 자세가 구부정해지고, 그걸 고치는 미세조정을 걷는 내내 자주 해야 한다.
자기도 모르는 어느새 밸런스는 쉽게 무너지게 되어있고, 그러기 전에 수시로 확인하고 다잡아야 하는 것. 까미노는 참 우리 생활과도 비슷하고 여러모로 삶의 압축판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게 왼발 오른발 최대한 부드럽고 균등하게 걸으려 애를 쓰며, 마지막 한시간 정도는 꽤나 힘들고도 느리게, 목적지 까리온까지 왔다. 다행히 오늘은 적당한 시간에 도착을 했다.
역시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고 메세타 고원은 빠르게 지나갈수 없었고 그저 차근차근 무사히 지나가야 하는 것이었더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