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리온에서 묵었던 알베르게는 Albergue parroquial de Santa María라는 곳인데 수녀님들이 운영하시는 곳이다. 수녀님들이 노래를 불러주시는 곳으로 유명한 곳이라고 한다. 이런 곳들은 시설은 낡았지만 보통 가격도 저렴하고 주방 사용도 편하고 카미노 순례자들의 공동체의식(?) 같은 것도 좀 느끼게 된다. 간만에 주방을 쓸 수 있는 김에 마트에서 재료를 좀 사다가 토마토 계란 볶음을 해먹었다.
주방에서 남은 계란을 삶다 보니 뒤뜰에 사람들이 삥 둘러 앉아 있다. 기웃거려보니 매일 6시쯤 숙소 뒤뜰에서 다같이 둘러앉아 자기소개를 하고 함께 노래를 부르는 시간이라고 한다. 각국의 언어로 여러 노래가 적힌 A4용지를 나눠주고 수녀님들과 함께 조용히 노래를 부른다. 각 나라의 언어로 노래를 한 곡씩 부르면서 다양한 문화를 나누고순례길의 의미를 되돌아보는 프로그램인듯 했다.
종이에는 아쉽게도 한국어 노래는 없었는데,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수녀님들이 아리랑을 아냐고 물어본다. 물론 알지요 모를수가 없지요. 인자한 수녀님의 미소와 함께 갑자기 사방에서 훅 들어오는 기대에 찬 시선. 한국인은 나 말고도 한분이 더 계셨다. 우리는 갑자기 무반주로 20여명의 생소한 사람들 앞에서 아리랑을 불러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대체 이 메세타 한가운데 아리랑은 언제부터 전파된걸까)
뭐 아까 낮에 이미 전후방 1키로 정도 아무도 없는 길에서 셀프 순례길 풀성량 노래도 잔뜩 했겠다 K아재에게 아리랑 정도는 크게 수줍지는 않다. 다른 한국인분께 시작할까요? 하고 눈길을 보낸 뒤 노래를 시작했다.
하지만 적막속에 아리랑을 시작하자니 내 목소리의 떨림이 너무 잘 느껴진다. 다른 한국인분은 많이 수줍으신지 노래는 거의 나 혼자 했고 무반주 와중에 노래 구절 사이 사이 생길 수 밖에 없는 잠깐의 고요한 공백은 견디기 매우 힘들었다. 그래서 그 부분을 빨리 넘어가다보니 이제 숨이좀 딸렸다.점점 얼굴이 뜨거워지는걸 느끼며 어찌어찌 노래는 마쳤다.
노래가 끝나니 따스한 박수가 나왔지만 뭔가 분위기가 살짝 숙연해진 듯도 하다. 빨리 다음 노래 해주세요 수녀님 제발. 의도치 않게 고요한 뒤뜰이 더 적막해진 것 같아 부끄러웠다.
생각해보니 처음에 키를 좀 낮게 잡은듯 해서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부분의 애절함을 담기에는 음높이도 좀 모자랐다. 흠 역시 키는 중요하군. 혹시 언젠가 또 부르게되면 구절 사이의 공백을 두려워하지 않고 여유있게 넘긴 뒤, 키도 좀 높여서 케이 민요의 아름다움을 더 잘 보여줘야겠다. 근데 애초에 내가 가창력이 없는게 더 문제인거 같지만 기분탓이겠지?
수녀님들이 운영하는 이 알베르게는 3월부터 10월까지 운영되는데, 누구든 언제든 자원봉사하러 오는건 대 환영이라고 한다. 실제로 프랑스에서 봉사오신 분이 한분 계셨다. 나도 이번 카미노를 다 걷고 나서 언젠가 한번쯤 봉사하러 오는것도 참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래의 시간이 끝난 직후 7시에는 마을의 성당에서 미사가 있었다. 순례자들만을 위한 미사는 아닌데 말미에 순례자들을 앞으로 나오라고 한 뒤 안전한 길을 기원하는 축복을 해주었다. 순례길 마을에 있는 성당들은 이렇게 매일 저녁 미사에 순례자를 위한 기도 시간이 있는 경우가 많은가보다. 순례자들이 앞으로 나와서 서있으면 신부님과 수녀님이 순례자들 한명 한명 돌아가며 머리를 만져주면서 아이 블레스 유 같은 말로 안녕을 기원해 주었다.
비록 알아들을 수 없는 스페인어였지만 위로받는 것 같고 감동적이다.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쪼금 눈물이 날것 같은 기분이었다. 옆에 계신 스페인 아저씨 아줌마는 이미 울고 계셨다. 다른 숙소에 묵고있지만 성당 같이가서 저쪽편에 서있는 마커스를 흘깃 쳐다보았다. 냉철한 독일갬성이라 그런가 세상 일상적인 표정이다. 덕분에 감흥이 급속도로 사라지며 나도 금새 평정심을 찾을 수 있었다. 수녀님들은 순례길의 축복을 해 주면서 아이들이 그린것 같은 다윗의 별 종이도 하나씩 나눠줘서 핸드폰 커버에 껴놨다.
미사가 끝나고 마커스랑 제니랑 동네 바에서 한잔 한 뒤 숙소로 돌아오니 1층 거실 공간에서 멋쟁이 이태리 친구 하나가 기타를 치며 모두에게 노래를 불러주고 있었다. 아픈 다리에 마커스에게 얻어온 근육 크림을 바르던 나는 라이브 음악을 들으면서 잠시 그 친구의 팬이 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