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길 위의 자그마한 경쟁심

20일차, 칼자디야

by 걷는수달


산티아고 카미노는 야고보 성인의 성지를 향해 가는 순례길이지만 한편으로는 장거리를 두 다리만으로 주파하는 일종의 레저스포츠 길이기도 하다. 그래서 알듯 말듯 순례자들 사이에는 약간의 경쟁심이 생기고는 한다.


먼저 하루의 경쟁심이 있는데, 보통 출발지가 같으면 목표지도 같은 경우가 많다보니 (특히 초반에 많이 그렇다) 빨리 도착하고 싶은 경쟁심이 조금 생긴다. 빨리 도착하면 실제로 좋은게, 공립 등 인기 있는 알베르게를 먼저 잡을 수 있고 체크인도 먼저 할 수 있다. 도미토리 2층 침대의 아래층이라든지 비교적 좀더 좋은 침대 위치도 보통 먼저 차지할 수 있다. 만약에 가장 먼저 도착하는 그룹이 된다면 체크인하느라 줄서서 기다리는 시간도 없기 때문에 그만큼 시간도 더 절약된다.

더불어 사람들이 한창 많은 계절에 예약 없이 늦게 도착하면 마을의 숙소 차버려 어쩔수 없이 다음 마을까지 가야만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보통 1시 전후 목적지에 도착하면 가장 빠른 축에 속한다. 체크인을 재빨리 하고 샤워랑 빨래도 해치우면 대략 2시. 여유있게 동네 구경을 한다든지 장을 본다든지 좀 쉰다든지 할 수 있는 시간이 넉넉히 생기기 때문에 나도 항상 2시 이전에 도착하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 도착이 늦으면 실제로 그날 더 많은 시간을 (더불어 무더운 오후 시간대를) 길에서 보내는거라 체력적으로 힘들어진다.


전체적으로는 완주 일자의 경쟁심도 있다. 만나면 국적과 상관없이 너는 어디서 언제 출발했냐는 질문을 나누는데, 사실 모두 내가 얼마나 빠른지 또는 보통은 되는지 조금씩 궁금하다. 나는 9월 18일에 생장에서 출발했는데, 대부분의 같은 날짜 출발자들보다 이틀 정도 뒤쳐져 있지 않나 싶다. 보통 한국 순례자들은 총 30~35일에 프랑스길을 걷는 일정을 많이 잡는다.


전체적인 속도가 너무 뒤쳐지면 좀 아쉬운 것이, 초반에 만난 친구들을 다시 보기 어려워진다. 프랑스길의 시작점인 생장이나 론세스바예스, 팜플로나 등 초반에 만나 함께 걸은 순례자들과는 나이를 떠나 일종의 같은반 친구 또는 동기같은 감성이 생기는데 길을 걷다보면 함께 걷다가 또 잠시 흩어졌다가 다시 만났다가 하게 된다. 차이가 너무 많이 나면 이제 초반의 동기들을 만날 찬스는 점점 적어진다.

(더불어 동기들은 저만큼 앞서가고있는데 나는 여기서 뒤쳐져있나 하는 멍충한 조바심도 약간?!)


근데 결국 이런 경쟁심이나 조바심이 큰 의미는 없는 것이, 여정 초반에 엄청 잘걸어서 한참을 앞서갈거라 생각했던 뉴질랜드 친구를 의외로 부르고스에서 만났는데 그 친구는 다리가 아파져서 며칠 쉬다가 레온으로 버스타고 점프한다고 했다. 또 초반에 마주쳐 한참 늦게 오시겠구나 생각했던 한국 분은 까리온에서 아침 출발길에 우연히 또 만났는데 다리 아픈 나보다 훨씬 잘 가셨다.


군대를 갖 제대한 체력이라든가 독일이나 북유럽쪽 친구들처럼 평소에 하이킹으로 단련되어서 스틱을 규칙적으로 잘 쓰면서 빠른 페이스로 하루 40키로 걸을수 있는 폼이 아니라면 (이런 친구들은 정말 굉장하게 걷는다) 이 정도의 장거리 여정 길의 페이스는 장기적으로 대부분 대동소이하고, 앞서거니 뒤따라오거니 하면서 결국 비스무리하게 가게 되는 것 같다.


비교하지 않고 자신의 페이스대로 가는 것,

목표에 집착하지 않고 여정 자체를 온전히 즐기는 것,

그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일말의 경쟁심도 갖지 않겠다는 고고한 마음도 꽤 오만하다. 이미 매일 레귤러하게 7시 전에 출발해서 1시쯤 빠르게 도착하고 싶잖아?! 그래서 나의 현재 인격 레벨로는 적절한 경쟁심을 억지로 밀어내지는 않되 뾰족하게 집착하지 않고, 승자가 되리라는 기대보다는 즐거운 여정에 포커싱하자는 정도로 절충하기로 했다.


10월 7일 금요일 칼자디야 데 라 케자


PS. 이 글은 꽤 초반부터 맘속으로 묵혔다가 이제야 쓰게 되었는데 얄궂게도 경쟁심과 여기 메세타 벌판과 다리통증의 나는 매우 어울리지 않는 상황이 되어버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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